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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vie review

<하녀>원작의 요소들이 완벽하게 거세된 전혀 다른 작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5. 4.


故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리메이크 한 작품

1960년에 만들어진 故 김기영 감독의 <하녀>. 난 이걸 작년에 처음 접했다. 본 이유는 역시 주위에서 칭찬을 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마틴 스콜세지의 지원으로 디지털 복원이 되어 칸 국제 영화제에서 특별 상영이 되었다는 사실이 컸다. 세계적 거장이 복원에 주목할 만큼 무엇인가가 있었던 건 가란 호기심. 실제 접한 1960년 작품 <하녀>는 그 유명세가 단순히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 흥미로운 영화였다.

그래서인지 <하녀>의 리메이크 소식을 처음 접했을 적에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원작이 가진 아우라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임상수 감독이 작품을 맡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던 것. 임상수 감독은 작품의 완성도 문제를 떠나 화제성이란 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이 아닌가. 그런데 <하녀>의 리메이크라니. 게다가 지금은 '하녀'라는 소재 자체가 먹힐 만한 사회적 분위기도 아닌데 말이다. 영화적 해석에 집중되는 것이 아닌 외적인 무엇, 즉 에로틱한 코드나 부각되는 그런 분위기로 흘러 가는 게 아닌가 우려가 들었다.

1960년 <하녀>는 하녀가 집에 들어오면서 일어나는 불륜의 파국에 대해 다루지만, 그 속에 담긴 디테일 한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단순히 계급적인 면에서의 주인과 하녀의 관계도 외에 영화에서 다룬 요소 중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집, 피아노, 쥐약 등이 가진 상징성이었다. 충돌의 공간인 집, 권위의 상징인 피아노, 공포의 대상인 쥐약.

1960년 <하녀>는 집, 피아노, 쥐약 등의 상징적인 소재를 통해 인간 생활의 기본적인 구성인 의, 식, 주 에서 식과 주의 공포감을 극대화 하면서 독특한 흐름으로 전개한다. 대사나 제작 기법이 다소 문제가 있다고는 해도 그것은 단지 시대적인 눈높이의 문제일 뿐, 영화 자체가 가진 재미는 지금 보아도 훌륭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임상수 감독은 원작에서 어떤 점을 보았고, 리메이크를 통해 어떤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새롭게 해석 가능한 면을 보았다면 성공적이겠지만, 단순히 하녀라는 존재의 에로티시즘에만 주목했다면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갈 거라 예상했었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충돌

<하녀>의 스토리는 은이(전도연)가 상류층 대저택의 하녀로 들어가면서 시작한다. 완벽한 남자 훈(이정재), 부러울 것 없는 부인 해라(서우), 여섯 살 난 나미(안서현). 그리고 집안 일을 총괄하는 하녀 병식(윤여정). 그들이 사는 공간으로 들어간 은이는 낯설지만 즐거운 생활을 하게 된다. 훈과의 은밀한 관계가 있기 전까지는.

<하녀>는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충돌이 기본적인 갈등요소다. 이 점은 1960년도 작품과도 동일한 요소다. 그런데 영화는 리메이크 과정을 통해 조금 단순화된 접근을 시도한다. 가정을 지키려고 몸부림 치던 남자의 요소를 제거하면서, 대저택에 사는 가족 자체를 하나의 거대화된 권력으로 다룬 것. 속물근성에 찌든, 권력의 독점에 취한 자들의 모습으로 다루며, 껍데기만 남은 자들이 움켜 쥔 허영에 대해 조롱을 한다. 기억의 고통과 순수의 존재를 잊은 채, 돈과 권력에 취해 사는 자들의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임상수 감독은 그 가치에 대해 비웃음을 날린다. 진정 세상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잊은 채로 살아가는 당신들이야말로 하녀라는 비웃음.


자신의 것을 지키지 못하고 빼앗긴 여자

영화는 파격적인 인물간의 접근이 중심적 흐름일 것이란 예상을 깨고, 냉소적인 시각과 조롱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이 조롱의 무대에서 노는 인물들에겐 단순함과 복잡함이 뒤섞여있으며, 그들은 순수함과 타락함의 경계영역에서 서로를 마주 본다. 집이라는 공간 속 경계영역에서.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적인 물건으로 보는 훈과 주인의 것을 조금씩 얻어먹으며 살아가는 하녀 근성의 병식은 타락의 완성체이다. 그에 비해 감정적이며 본능적인 해라는 어떤 면에선 타락한 인물이지만, 다른 시각에서는 백치 같은 은이와 유사점이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녀에겐 권력이 있다는 점.

그들에 비해 은이는 아무 생각이나 의도를 가지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다. 그녀에겐 마치 첫 사랑에 빠진 여자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 보이며, 바보 같은 행동과 말을 하는 순진함이 엿보인다. 그러기에 은이는 나미와 대화가 통한다. 저택에서 가장 순수함을 유지한 존재이자, 욕망적인 행동에서 벗어난 존재 나미. 외부와 차단된 공간인 저택에서 상황을 가장 순수한 시각으로 지켜보는 인물인 나미는 위의 권력과 아래의 권력이 충돌하는 것을 보며, 왕국의 권력에 도전하는 자의 최후를 목도한다. 자신의 것을 지키지 못하고 빼앗긴 여자의 마지막을.


원작의 요소들을 완벽하게 거세

임상수 감독이 만든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작품과는 비교를 하기 힘들 정도로 원작의 요소들이 완벽하게 거세되었다. 어쩌면 원작에서 남긴 것은 하녀가 집에 들어온다는 설정 자체일 정도. 느슨한 설정 차용은 화법의 방식의 변화도 불러 왔는데, 세태에 대한 풍자를 은유적으로 했던 원작에 비해 이번 <하녀>는 그 화법이 직설적이다.

캐릭터의 움직임 역시 능동과 수동을 바꾸어 권력의 거대함을 부각시켰으며, 원작이 가졌던 상징적인 매개체를 다른 매개체로 치환함으로 다른 느낌의 감성을 불러왔다. 원작과는 다른 포도주와 욕탕, 그리고 샹들리에의 상징성은 원작의 집, 피아노, 쥐약과는 또 다른 맛을 전해 준다.


흥미로운 심리 스릴러지만 기억에 남을 수준은 아니다

예고편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에로틱 스릴러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인물의 감정선과 심리선에 주목한 영화 <하녀>는 꽤 흥미로운 심리 스릴러다. 어떤 말과 행동이 이어질 지 알기 힘든 미묘한 분위기 속에 전개되는 이야기는 분명 보는 내내 지루함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녀>는 나에게 배고픈 영화다. 이 배고픔은 바로 원작과의 비교에서 오는 공복감이다. 원작을 제외하고 본다면 분명 흥미롭지만, 원작의 안경을 끼고 보면 허전함이 느껴진다. 이 허전함 때문인지, 영화는 재미는 줄 지는 몰라도 기억에 남지는 않을 듯 하다.

어쩌면 이 허전함은 너무나 잔잔했기에 오는 걸 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파격적이고, 도발적이고, 격정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들과는 거리가 먼 고요함에 대한 당황스러움. 이 조용함이 당황스럽다. 임상수는 좀 더 공격적인 게 어울리는데 말이다. 거친 공격을 기대했는데 아쉽다.

*개인적으로 <하녀>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중도에 그만 둔 김수현 작가의 <하녀>시나리오를 한번 보고 싶어졌다. 김수현 작가는 어떤 <하녀>를 그렸을지 궁금하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1960년 <하녀>와 가장 대조적인 면이 하나 보인다. 그것은 옷, 즉 '의'에 주목한다는 점. 옷과 집이 만들어내는 화면의 아름다움이나 분위기 조성 등은 상당한 편이니, 극장에서 유심히 지켜보시기 바란다.

★★☆

*2010년5월1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