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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vie review

<평행이론>현재진행형인 한국형스릴러의 재앙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2. 18.


30년 전 사건의 반복

'누군가의 삶이 내게 반복되고 있다'는 평행이론.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운명인가? <평행이론>은 링컨-케네디,나폴레옹-히틀러 등의 역사적 인물이 시차를 두고 같은 운명을 반복했다는 흥미로운 소재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소재는 영화 속 인물 석현(지진희)를 통해 그려진다.

최연소 부장판사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석현(지진희). 어느 날 그의 아내 윤경이 변사체로 발견된다. 수사는 진행되고 한 명의 용의자가 범인으로 잡힌다. 그러나 사건담당 여기자는 석현에게 충격적인 사실 알려주는데, 석현이 30년 전 인물 한상준 판사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상준 판사에게 일어난 30년 전 사건의 반복이라면 다음 죽음은 예견된 것이다. 16일 후 석현과 아이가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 예견된 운명인가, 아니면 조작된 음모인가? 석현은 그 진실로 접근해 간다는 것이 <평행이론>의 주요 줄거리다.


한국형스릴러의 재앙

<평행이론>이 작년과 올해 유행처럼 번지면서 개봉한 한국형스릴러들과 비교해 좋은 점은 딱 한 가지, 소재만 좋다는 것이다. 단지 소재만 좋다 뿐이며, 다른 모든 것은 거의 한국형스릴러의 단점들을 모두 모아놓은 마스터피스급 재앙이다.

분명 '같은 운명을 가지고 평행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이란 설정은 멋진 소재다. 하지만 이 소재는 장단점을 뚜렷이 가진 소재다. 평행이론을 그대로 접목시켜 간다면 초자연적 현상이 스릴러영화에 개입을 해버리는 것이고, 뒤집으면 누군가 엄청난 음모를 꾸민 결과이다. 어느 정도 결과가 보이는 진행을 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소재이다 보니 영화는 몇 가지 다른 수단을 설치한다. 상황을 계속 뒤집으며 범인이 누군지 모르게 하기 위해 겹겹이 복선을 깐다. 그러나 여기서 한국형스릴러의 문제점은 나온다. 이런 장치들이 무리수라는 점이다. 그 무리수는 '뜬금없는 스릴러'와 '반전의 강박관념'.

'뜬금없는 스릴러'라고 붙여본 것은 무엇인가 상황을 급박하게 바꾸기 위해 영화 속 상황을 마구 뒤틀어 버리는 점이다. 물론 이런 점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디테일한 설정이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구성들로 마구 변하는 상황들. 도리어 배우들이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화면에 보이고 관객은 도리어 차분해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거기에 '반전의 강박관념'은 이제는 한국형스릴러의 필수요소인 듯 하다. 반전은 분명 스릴러적으로 좋은 요소지만 반전에 집착하다 보니 이제는 처음에 나온 사람 몇 명을 유심히 보면 결과가 보일 정도이다. 마치 반전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만드니 그 속이 뻔히 보인다는 사실.


재미를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지만, 도리어 그 점 때문에 재미가 없다

<평행이론>의 핵심적인 흥미 포인트는 석현의 운명이 예견된 것인가, 아니면 조작된 음모인가 하는 점이다. 이 포인트가 영화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보니, 영화는 이 포인트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앞서 지적한 대로 겹겹이 복선을 깔고 상황에 변화를 주어 범인이 누구인지 혼란을 주려 한다. 하지만 문제점은 이런 혼란스러움이 지나쳐 영화 자체가 재미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영화가 스릴러로서 궤도를 너무 이탈한다는 것. 상황을 자꾸 뒤집는 게 아주 섬세한 설정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 마구잡이 식으로 바꾼다는 느낌이 들게 되면서 재미를 잃는다. 그리고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 영화는 거침없이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우연이든, 초자연적 현상이든 상관없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영화는 상황을 뒤집으며 범인이 누굴까 하면서 흥미를 주려 하지만, 관객은 이미 지쳐있는 상태이다. 이미 관객 머리 속에는 "저게 뭐 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드는데 영화가 아무리 노력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쩌면 이 모든 희생들은 마치 소재인 평행이론을 위한 희생일지도 모른다. 소재를 위해서는 모든 출혈을 감수하는 영화적 노력, 실로 애처로울 지경이다.

분명 <평행이론>은 영화에서 시나리오적인 면만 떼어놓고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면이 많았다. 하지만 영화는 재미없다. 가장 큰 문제점은 감독의 역량 부족일 것이다. 권호영 감독은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채워야 할 부분들을 채우지 못 했다. 나름대로 시도한 카메라 기술은 쓸데없이 사용한 미국드라마의 아류적 표현이라는 생각만 든다. 정작 더 중요하게 신경 써야 했던 편집은 호흡이 거칠다.

거기에 감독의 역량을 떠나 영화에서 제일 안 좋은 점은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안 좋다는 점이다. 특히 지진희의 경우는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이며 중요한 인물로 혼란스러움을 잘 표현해야 할 배우인데 완전히 겉도는 모습이다. <평행이론>은 그 어떤 영화보다 주인공의 역량이 중요한 작품이었으나, 믿기 힘든 사실을 눈 앞에서 보게 되며 큰 혼란에 쌓인 캐릭터를 연기하기엔 지진희의 연기는 너무나 그 맥이 안 맞아 보였다. 큰 혼란에 쌓인 사람이 그 현실 앞에서 너무나 차분한 점이 도리어 인상적일 정도다. 더욱 당황스러운 점은 다른 배우들에게서 나타났는데, 배우의 연기로 인해 범인이 더 잘 보인다는 점이다. 영화의 복선을 너무나 능숙하게 미리 알려주는 배우의 연기, 실로 놀랍지 않은가!

이렇듯 <평행이론>은 그 동안 나온 한국형스릴러를 집대성한 마스터피스다. 이 보다 더 망가질 순 없는 마스터피스.


현재진행형인 한국형스릴러의 재앙

2009년부터 이어지는 한국형스릴러의 재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만 알려준 영화 <평행이론>. 영화는 긴장감도 박진감도 눈물도 없다.그저 평행이론이라는 소재만 새로울 뿐이다. 그러나 이런 새로움은 TV프로그램에서나 보여줄 부분이지 영화가 가져야 할 부분은 절대 아니다. 스릴러 영화로서 기준미달인 영화 <평행이론>을 보노라면 2010년에도 이 재앙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가 더 궁금해진다. 한국형스릴러의 재앙이야말로 평행이론인 것인가?

*2010년2월1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