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명 학도병의 감동실화 | 6월, 그들을 기억하라!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 전쟁이 시작된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무장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진격을 거듭하고, 남한군의 패색은 짙어져만 간다. 전 세계가 제 3차대전의 공포에 휩싸이자 UN은 엄청난 수의 연합군을 대한민국에 파병할 것을 결정한다. 이미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남측은 연합군의 도착을 기다리며 낙동강 사수에 모든 것을 내걸고 남은 전력을 그곳으로 총집결 시킨다.
포항을 지키던 강석대(김승우)의 부대도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이제 전선의 최전방이 되어버린 포항을 비워둘 수는 없는 상황. 강석대는 어쩔 수 없이 총 한 번 제대로 잡아 본 적 없는 71명의 학도병을 그곳에 남겨두고 떠난다. 유일하게 전투에 따라가 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장범(T.O.P.)이 중대장으로 임명되지만, 소년원에 끌려가는 대신 전쟁터에 자원한 갑조(권상우) 무리는 대놓고 장범을 무시한다. 총알 한 발씩을 쏴보는 것으로 사격 훈련을 마친 71명의 소년들은 피난민도 군인들도 모두 떠난 텅 빈 포항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 채 석대의 부대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영덕시를 초토화 시킨 북한군 진격대장 박무랑(차승원)이 이끄는 인민군 766 유격대는 낙동강으로 향하라는 당의 지시를 무시하고 비밀리에 포항으로 방향을 튼다. 영덕에서 포항을 거쳐 최단 시간 내에 최후의 목적지인 부산을 함락시키겠다는 전략. 박무랑의 부대는 삽시간에 포항에 입성하고, 국군사령부가 있던 포항여중에 남아있던 71명의 소년들은 한밤중 암흑 속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깬다. 고요함이 감돌던 포항에는 이제 거대한 전운이 덮쳐 오고,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강석대 대위는 학도병들을 걱정할 틈도 없이 시시각각 모여드는 인민군 부대와 맞서야 하는데…
기획의도가 정확하게 들여다 보이는 영화
올해는 6.25 발발 60주년 되는 해란다. 뭐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이런 전쟁영화 하나쯤 나올 때도 됐다 싶었다. 실감나는 전투씬을 연출하기 위해 거액의 제작비가 들어가고, 투자 회수를 위해서는 흥행을 담보할 수 있는 톱스타 캐스팅이 필수적이다. 이러저러한 계획들은 들어맞았다. 더욱 참혹하고 거대한 전쟁통을 보여주는 데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인물의 성격이 잘 살아났으며 배우들은 자신들의 기량을 모두 보여준 듯 하다. 유머도 적절히 있고 부모 자식 간 사랑, 친구 간 우정, 형제 간 우애 등... 남녀 사랑만 빼고는 다 보여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한 마디로 있을 건 다 있는 블록버스터인 거다.
이 영화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처절한 전투씬도 그렇지만 역시 캐릭터의 구성이다. 학도병 구성원들 개개인에게는 전쟁터에 나오게 된 각자의 사연들이 부여되어 있다. 홀어머니를 떠나온 과묵한 외동아들 장범(탑), 소년원 대신 전쟁터에 굴러들어온 갑조(권상우), 나란히 들어왔지만 결국 형이 동생을 제 손으로 묻어야만 했던 형제의 이야기, 혼자 살려고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지만 결국 장렬히 희생하는 아무개(이름 모르겠다;) 등등... 하지만 혼란스럽고 급박한 전쟁터 안에서 그 사연들은 미처 공유될 틈이 없으며 무조건적으로 서로에 대한 의지와 신뢰로만 버티어 나가게 된다. 목전에 다가온 죽음을 직감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 사이에 싹튼 연대는 그 어떤 공포나 절망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갈등관계에 있었던 장범(탑)과 갑조(권상우) 역시 결국 끝까지 남아 싸우는 최후의 2인이 되고 말았던 단 며칠 동안에 벌어졌을 71명의 학도병 이야기는 그래서 지금까지 보아왔던 전쟁영화들과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어쨌든 이런 아쉬운 점들을 차치하고서라도 <포화 속으로>는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른 전쟁영화를 만드는 데에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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