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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 속으로 (2010, 이재한)_같으면서도 다른 전쟁영화의 정공법

k-movie review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6. 2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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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명 학도병의 감동실화 | 6월, 그들을 기억하라!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 전쟁이 시작된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무장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진격을 거듭하고, 남한군의 패색은 짙어져만 간다. 전 세계가 제 3차대전의 공포에 휩싸이자 UN은 엄청난 수의 연합군을 대한민국에 파병할 것을 결정한다. 이미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남측은 연합군의 도착을 기다리며 낙동강 사수에 모든 것을 내걸고 남은 전력을 그곳으로 총집결 시킨다.

 포항을 지키던 강석대(김승우)의 부대도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이제 전선의 최전방이 되어버린 포항을 비워둘 수는 없는 상황. 강석대는 어쩔 수 없이 총 한 번 제대로 잡아 본 적 없는 71명의 학도병을 그곳에 남겨두고 떠난다. 유일하게 전투에 따라가 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장범(T.O.P.)이 중대장으로 임명되지만, 소년원에 끌려가는 대신 전쟁터에 자원한 갑조(권상우) 무리는 대놓고 장범을 무시한다. 총알 한 발씩을 쏴보는 것으로 사격 훈련을 마친 71명의 소년들은 피난민도 군인들도 모두 떠난 텅 빈 포항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 채 석대의 부대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영덕시를 초토화 시킨 북한군 진격대장 박무랑(차승원)이 이끄는 인민군 766 유격대는 낙동강으로 향하라는 당의 지시를 무시하고 비밀리에 포항으로 방향을 튼다. 영덕에서 포항을 거쳐 최단 시간 내에 최후의 목적지인 부산을 함락시키겠다는 전략. 박무랑의 부대는 삽시간에 포항에 입성하고, 국군사령부가 있던 포항여중에 남아있던 71명의 소년들은 한밤중 암흑 속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깬다. 고요함이 감돌던 포항에는 이제 거대한 전운이 덮쳐 오고,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강석대 대위는 학도병들을 걱정할 틈도 없이 시시각각 모여드는 인민군 부대와 맞서야 하는데…

기획의도가 정확하게 들여다 보이는 영화

올해는 6.25 발발 60주년 되는 해란다. 뭐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이런 전쟁영화 하나쯤 나올 때도 됐다 싶었다. 실감나는 전투씬을 연출하기 위해 거액의 제작비가 들어가고, 투자 회수를 위해서는 흥행을 담보할 수 있는 톱스타 캐스팅이 필수적이다. 이러저러한 계획들은 들어맞았다. 더욱 참혹하고 거대한 전쟁통을 보여주는 데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인물의 성격이 잘 살아났으며 배우들은 자신들의 기량을 모두 보여준 듯 하다. 유머도 적절히 있고 부모 자식 간 사랑, 친구 간 우정, 형제 간 우애 등... 남녀 사랑만 빼고는 다 보여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한 마디로 있을 건 다 있는 블록버스터인 거다.

이 영화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처절한 전투씬도 그렇지만 역시 캐릭터의 구성이다. 학도병 구성원들 개개인에게는 전쟁터에 나오게 된 각자의 사연들이 부여되어 있다. 홀어머니를 떠나온 과묵한 외동아들 장범(탑), 소년원 대신 전쟁터에 굴러들어온 갑조(권상우), 나란히 들어왔지만 결국 형이 동생을 제 손으로 묻어야만 했던 형제의 이야기, 혼자 살려고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지만 결국 장렬히 희생하는 아무개(이름 모르겠다;) 등등... 하지만 혼란스럽고 급박한 전쟁터 안에서 그 사연들은 미처 공유될 틈이 없으며 무조건적으로 서로에 대한 의지와 신뢰로만 버티어 나가게 된다. 목전에 다가온 죽음을 직감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 사이에 싹튼 연대는 그 어떤 공포나 절망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갈등관계에 있었던 장범(탑)과 갑조(권상우) 역시 결국 끝까지 남아 싸우는 최후의 2인이 되고 말았던 단 며칠 동안에 벌어졌을 71명의 학도병 이야기는 그래서 지금까지 보아왔던 전쟁영화들과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만약 카메라가 학도병 71명만을 비추었다면 아마 <파리대왕>의 6.25 버전에 그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에는 남북군에 각각 무게를 실어주는 묵직한 배우 두 명이 출연해 균형을 잡는다. 카리스마 넘치는 기럭지(!)로 심리전을 펴 나가는 인민군 진격대장 박무락(차승원-그가 화면에 등장하는 몇몇 장면은 흡사 서부영화의 주인공을 보여주는 듯 하다)이 그렇고 뚝심있고 의리있는 전형적인 국군 아저씨 스타일의 '강석대'로 김승우가 거기에 맞선다. 사실 학도병 중대장으로 출연한 탑이나 껄렁한 양아치로 나오는 권상우에 비해 나오는 장면이 훨씬 적지만 역시 캐스팅이란 대사나 출연 분량이 많고 적으냐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아우라를 지닌 배우를 얼마나 잘 섭외하느냐에 따라 그 비중이 결정되는 듯. 그래서 존재감 면에서는 4명의 배우가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영화 초반에 간호사로 특별출연한 박진희는 희생양? 아무리 특별출연이었다 하더라도 탑의 이모뻘로 보이는 박진희보다는 최소한 '전쟁통만 아니었더라면 저들은 아름다운 한 쌍의 커플이 되었겠지...'라는 안타까움을 심어줄 수 있을 만한 연령대의 여배우가 나왔더라면 더 애틋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펜 대신 총대를 멘 학생들이 있었다

학사모를 쓰고 더러 교복을 입기도 한 남한의 학도병들이 '학교'라는 건물을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자못 상징적이다. 늑대처럼 생긴 줄 알았던 공산당이 미친 듯한 승부욕으로 인해전술을 구사하며 달려들 때 학생들은 인민군에 비해 훨씬 적은 숫자였지만 건물의 구조나 도구, 무기 제조법 등 지식과 기술을 최대한 이용해서 그들의 공격을 막아낸다. 학도병들은  군인이기 이전에 학생이었고 우리나라의 미래였으며 누군가로부터 아직은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들이었다.그들은 전쟁에 임하는 군인으로서의 사명감이라기보다는 태극기를 머리에 두르고 '이러다 우리나라 뺏기는 거 아냐?'라고 걱정하는1차원적 애국심으로(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무장을 한 아이들이었고 그러면서도 상대적으로도 절대적으로도 불리한 고지에 서서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은 용맹한 전사들이었다. 그런 존재들이 탱크를 맨몸으로 막아 자폭하고 친구 대신 총을 맞으며 적과 협상하지 않고 그야말로 정신력으로 버텨내어 국군을 돕는 데 성공했다는 그 지점에서 관객은 무한 감동하게 된다. 학생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6.25의 처절함, 전쟁이라는 이념적 물리적 갈등의 근본에 대한 물음과 고뇌, 아직 벗어버리지 못한 치기와 자존심 이 모든 것이 기존의 전쟁영화들과 <포화 속으로>를 다른 지점에 위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탑(T.O.P.)'이 있었다;;

아.. 저 종잇장을 태워버릴 듯한 기세의 눈빛.;;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언급, 바로 대형 주연급 배우 '탑'의 발견! 딱 굳어 있는, 변치 않는 단 하나의 표정을 가지고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단 하나의 표정에서 그토록 다양한 느낌을 우려낼 수 있는지.. (설마 나만 그런 거..?;;) 초반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터에선 기가 질린 소심한 소년병이었다가, 자신을 간보는 미모의 여간호사 앞에선 한없이 시크한 남동생이었다가, 전장에서도 어머님께 편지를 쓰는 의젓한 아들이었다가, 결국 학도병을 이끄는 믿음직스런 중대장이었다가, 버디 액션 무비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한 아드레날린 분비 폭발로 장렬히 산화하는 남자 ...(아아...이 문장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하지.. 어떻게 끝 맺어도 이미 우스워졌다.)
암튼 탑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수많은 누나 영화팬들을 양산했을 그 연기, 눈빛. (좀더 내면이 복잡한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졌더라면 훨씬 생동감 있었겠지만 주인공이 4명 등장하는 전쟁 영화에서 입체적인 성격의 인물을 바라는 건 좀 무리인 듯;;)
외람되지만 이 영화는 (어쩌면) '탑'의 영화였다.;;


아쉬운 점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면서 아주 불현듯 지루해 지는 순간들이 있긴 하다. 예를 들어 '어머니, 전쟁은 왜 하는 걸까요' 라는 초등학교 '생활의 길잡이' 교과서에서나 던질 법한 물음을 되새긴다거나.. 늑대로 묘사된 공산당이 그려진 그림을 찢는다든지, 어린 인민군의 죽음을 놓고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모범생(탑)과 양아치(권상우)의 대치 장면이랄지... 구석구석에서 발견되는 '진부함'과 '구태의연함'은 이 영화를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명작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좋은 소재였고 최고의 배우들이 있었는데 좀더 세련되게 만들어 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들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더라는.

또한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고 전쟁과 이념에 희생된 청춘들의 시각에서 질문을 던지되 그 답을 내리고 있지는 않다. 전쟁은 이미 벌어져 있으며 밀리지 않고 사수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설정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영화 안에서 전쟁 혹은 평화, 이념, 동포애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인민군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에 불타오르고 있으며 그들은 '적' 이전에 아무 것도 아니다. 한참 공부해야 할 자신과 친구들이 왜 전쟁터에 나가야 하는지도 궁금해 하지 않으며('국가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라는 반발심 따위 실제로도 아무도 갖지 않았다고? 정말?) 그들의 부모들도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아무 것도 모르고 참전한 학생들의 순수함은 숭고하게 승화되지만 그 원인이나 책임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국군과 인민군은 하나같이 맹목적이며 짐승같은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그래도 영화에서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접근을(형식적으로나마) 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런 아쉬운 점들을 차치하고서라도 <포화 속으로>는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른 전쟁영화를 만드는 데에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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