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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vie review

<이웃집 좀비>여러 가지가 뒤섞인 코리아좀비판타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2. 5.


대한민국에서 좀비물을 시도하다

<이웃집 좀비>란 작품에 대한 접근을 좀비물이라는 장르 중 어느 위치에 서있는가로 출발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분명 <이웃집 좀비>는 좀비를 소재로 삼은 영화며,좀비는 공포물 중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소재다.좀비라는 소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적인 성격을 가질 정도로 그 성격은 특이하며,그 장르 안에서도 다양한 접근과 해석이 이루어지는 흥미로운 소재,좀비.

먼저 좀비물을 내 나름대로 세 가지로 분류해 본다면,하나는 좀비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로메로가 만든 시체시리즈의 좀비들이다.조지 로메로의 좀비물은 가족적,사회적 시각을 가진 좀비물이며,좀비는 공포적인 소재라기 보다는 감독 자신의 주제에 대한 하나의 표현방법이었다.이런 표현이 현대적인 블록버스터적인 접근을 이루어 변주된 작품은 시체시리즈 2편을 리메이크한 잭 스나이더의 <새벽의 저주>다.

둘째는 공포적인 소재로 극대화된 시리즈다.<바이오하자드>라는 게임을 원작으로 한 <레지던트이블>시리즈나 <데몬스>시리즈 등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좀비는 그 자체로 공포적인 대상이며 쫓고 쫓기는 스릴감 추구를 목표로 한다.

셋째는 <나는 전설이다> 소설 등에서 제시된 새로운 인류적 접근이다.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는 이 형태에서 조금 궤를 달리하긴 했지만,<오메가맨>은 소설의 궤를 일정 수용했다.새롭게 나타나는 종족으로의 해석과 그 대결 국면이 다루어 진다.


좀비물로 본 <이웃집 좀비>의 위치

이런 기준들에서 좀비물의 장르적인 흥미요소를 추출해본다면 내 주위 가족,친구,동료 누구나가 적이 되어 공격한다는 부분(이 부분은 늑대인간이나 흡혈귀와는 성격이 다르다),정치적-사회적 이념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부분,그리고 그 존재 만으로도 공포의 대상이라는 점 등이다.쉬지도,멈추지도,두려워하지도,변하지도 않고 끊임없이 굶주림을 해결하려고 하는 무한에너지 적인 존재.거기에 내 주위 사람 하나를 잃으면 그도 좀비가 되어 나를 공격한다는 점 등은 그 상상만으로도 두려움을 준다.

사실 내가 장르전문가도 아니지만,임의로 이런 해석을 해 본 것은 내 나름대로 <이웃집 좀비>를 파악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처음의 가정으로 돌아가 <이웃집 좀비>의 위치를 다시 따져본다면,<이웃집 좀비>는 조지로메로식 정치-사회적 시각을 바탕으로 한 블랙코미디로 밑그림을 그린 후,공포적인 소재의 구현으로 색칠한 작품 정도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다르게 표현해본다는 좀비바이러스를 제작비 되는 한도 내에서 가볍게 비틀어 본 장르실험물로 하고 싶다.이 실험물이 꽤나 흥미를 끄는 건 한국에서는 거의 시도되지 않는 좀비를 다루었기 때문이다.생각해보라,우리나라 안에서,우리나라 사람들이,우리나라 말을 하다가 좀비가 되는 코리아좀비판타지.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좀비판타지는 그 시도만으로도 좀비장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유쾌한 흥미요소를 던지는 떡밥이 아닌가!


2천만 원의 예산,카메라 1대로 제작

하지만 <이웃집 좀비>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 작품이다.까놓고 말해 2천만 원으로 만든 영화인데 무슨 큰 욕심을 가져야 하겠는가?<이웃집 좀비>를 만든 사람들에게 <이블데드>의 샘 레이미 같은 천재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해야 할까?그것은 무리다.영화사적으로 하나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란 찬사를 듣는 작품 수준으로 저예산공포물을 만들라고 하는 건 과욕이다.

오영두,류훈,홍영근,장윤정,이 네 명으로 뭉쳐진 <이웃집 좀비> 창작집단은 분명 샘 레이미는 아니었다.하지만 이들은 열정으로 2천만 원의 제작비와 카메라 1대 만으로 영화를 출발시켰고,소재는 좀비물에 구성도 좀비물로는 신선한 디저트까지 곁들여진 5+1  옴니버스형 구성을 했다.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현역 프로들이 돈은 모자라지만 스스로 해결한다는 정신으로 돌파하며,장소가 없으면 집에서 찍고,우리끼리 재미있게 한번 찍어보자는 마음으로 찍은 영화가 <이웃집 좀비>다.이렇게 만들어진 <이웃집 좀비>는 영화가 관객에서 재미있게 받아들여 질것이냐 인데,난 일단 이 부분에 의문부호를 하나 찍어보고 싶다.나는 샘레이미 의 걸작을 요구한 건 아니지만,재미 자체를 버린 것은 아니니까.


5개의 에피소드와 하나의 부록

<이웃집 좀비>의 구성은 좀비바이러스의 확산 단계별 소재를 시간 순서대로 구성했다.<틈 사이>는 좀비바이러스의 국내 최초 유입경로,<도망가자>는 좀비바이러스에 걸린 자들이 좀비화 직전에 겪는 방황과 갈등,<뼈를 깎는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된 이후에도 그 사람을 포기 못 하는 사람의 이야기,<백신의 시대>는 새로운 희망이 되는 백신과 그 백신을 둘러싼 암투,<그 이후...미안해요>는 좀비바이러스 극복 후 새로운 출발을 하는 사람들이 치유과정의 아픔,마지막으로 <폐인킬러>는 영화 전체를 장난스럽게 섞은 디저트다.

86분의 러닝타임 동안 6개의 에피소드이니 편당 14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가정해 본다면,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진지한 이야기를 펼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그러다 보니 영화는 큰 틀의 바이러스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개별적인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며,그 인물들에게서 진지함보다는 가벼운 행동 등을 통한 역설적인 상황 유추를 시도했다.

어쩌면 이것은 2천만 원대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옴니버스로 구성할 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큰 이야기 구조를 가지다 보면 당연히 이야기 자체의 형식이 갖추어져야 하며 이야기의 당위성과 일관된 영화적 흐름이 필요하다.그리고 필연적으로 제작비와 인력으로 연결된다.이야기를 잘게 부수어 버리는 방향은 이들에게 더 효과적이며 현실적인 대안이 되었을 것이다.잘게 부수어 버린 영화들 속에 모자란 제작비는 재치와 감각으로 극복하는 형식으로 영화는 우회 돌파를 했다.


전체적인 색깔이 필요했던 영화

현실적 여건에 따라 잘게 부수어 버리고,재치와 감각을 통해 우회 돌파를 시도한 영화 <이웃집 좀비>.그러나 영화는 솔직히 흥미를 느끼기보단 아쉬움이 더욱 든다.각 에피소드 간의 유기적인 연결고리가 너무 없다.압축적인 전개가 좋긴 했지만,조금 일관성을 가지고 작품 전체를 조율했다면 관객이 물 흐르듯 조금 편하게 좀비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웃집 좀비> 창작집단이 처음에 구상한 영화의 재미와 상상력이 얼마나 영화로 만족할 만큼 구현이 되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다만 스크린으로 만난 영화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앞서 말한 대로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 조율이 필요했고,더욱 필요했던 건 영화 전체의 색깔이었다.맨 처음 내가 제시한 여러 좀비의 장르적인 접근들처럼,<이웃집 좀비>는 공포 그 자체를 추구하던지,아니면 정치-사회 풍자를 하는 블랙코미디 노선을 가던지 결정을 했어야 했다.


성취와 가능성,그리고 아쉬움

사실 비판적인 글을 적다 보니 내가 무안해지기도 한다.독립영화의 힘든 여건과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영화를 이렇네,저렇네 까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다.그러나 나는 <이웃집 좀비>가 더 높은 완성도를 가질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고 생각하며,그것을 성취하지 못 한 점에 대한 아쉬움을 적고 싶었을 뿐이다.

<이웃집 좀비>는 분명 흥미로운 독립영화이며,장르적 시도물이며,좀비 소재 영화다.당신이 좀비물을 좋아하고,독립영화 소재영역의 확장을 보고 싶다면 필히 극장에 가서 보아야 한다.2천만 원으로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해낼지 궁금한 사람도 가서 보아야 한다.다만 좀비물이라는 장르에 너무 큰 기대를 하신다면 그 기대를 낮추시고 가시길 바란다.영화는 명과 암이 뚜렸한데,가내수공업같이 일한 창작집단의 영화완성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명으로 본다면,좀비물의 퇴색은 암이다.그 점은 분명하다.

더욱 분명한 것은 <이웃집 좀비>는 독립영화의 신선한 바람을 관객에게 좀 더 쉽게 전해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 점이다.좀비라는 장르물적인 성과는 아쉽지만,영화 자체의 흥미와 신선도는 유효하니까.

*2010년2월1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