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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vie review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010, 이준익)_'꿈'은 때론 위험하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5. 24.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감독 : 이준익
주연 : 황정민, 차승원, 백성현, 한지혜

1592년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임진왜란의 기운이 조선의 숨통을 조여 오고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가던 선조 25년. 정여립, 황정학(황정민 분), 이몽학(차승원 분)은 평등 세상을 꿈꾸며 ‘대동계’를 만들어 관군을 대신해 왜구와 싸우지만 조정은 이들을 역모로 몰아 대동계를 해체시킨다.

 대동계의 새로운 수장이 된 이몽학은 썩어빠진 세상을 뒤엎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키우고 친구는 물론 오랜 연인인 백지(한지혜 분)마저 미련 없이 버린 채, 세도가 한신균 일가의 몰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반란의 칼을 뽑아 든다. 한때 동지였던 이몽학에 의해 친구를 잃은 전설의 맹인 검객 황정학은 그를 쫓기로 결심하고, 이몽학의 칼을 맞고 겨우 목숨을 건진 한신균의 서자 견자(백성현 분)와 함께 그를 추격한다.

 15만 왜구는 순식간에 한양까지 쳐들어 오고, 왕조차 나라를 버리고 궁을 떠나려는 절체 절명의 순간. 이몽학의 칼 끝은 궁을 향하고, 황정학 일행 역시 이몽학을 쫓아 궁으로 향한다. 포화가 가득한 텅 빈 궁에서 마주친 이들은 운명을 건 마지막 대결을 시작하는데… 전쟁과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상 끝까지 달려간 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요즘엔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이 조금 달라졌다. 개인적으로 내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도록 하는 영화가 잘 만든 영화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 생겼다. 그런데 이 영화 묘하게 경계에 걸쳐져 있다.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보았던. 감독이 생각한 바가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나 세련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가끔은 정말 무릎을 탁 칠 만한 명대사들이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었던.

황정민의 연기야 역시 나무랄 데가 없고.. 차승원은 교정 중이신지 발음이 조금 안 좋다. 한지혜는 현대극 드라마에서보다는 훨씬 사극에 어울리는 모습이었고 마지막으로 백성현은.. 이 영화는 결국 백성현을 위한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비중이 절대적이다. 발성은 여전히 아쉽지만 그래도 충실했다.

정겹게 그려지는 견자와 황정학의 사제 형성 단계.

우륵도사와 머털이 같은.



이 영화가 말하는 '꿈'에 관해

동인과 서인을 통한 여야 대립의 은유, 그리고 이 나라에는 충신이 없냐며 시국 탓, 신하들 탓만 하고 우유부단한 정치를 이어가는 무능한 왕. 외세에 맞서고자 혁명을 꿈꾸었으나 결국은 권력을 탐낸 개인의 지나친 욕심으로 동료들의 피만 부르고서 허망하게 끝나버린 대동계. 모든 것이 오늘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나친 진보는 진득한 보수보다 나을 게 없다. 나라를 위해 꾸었던 꿈이 변질되는 순간 그것은 꿈을 꾸었던 자들 뿐만 아니라 영문도 모르는 백성들까지 위험으로 몰아간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견자의 아버지 한신균(송영창)은 서자인 견자(백성현)에게 '꿈도 없이 그렇게 살거냐'며 혀를 끌끌 차고, 이몽학의 여자인 백지(한지혜)는 견자에게 '넌 꿈이 없고 이몽학은 꿈이 있기 때문에 넌 그를 이기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말해지는 '꿈'은 한낱 백일몽에 불과하다. 이루어져서는 안 될, 꿈꾸지 않는 것만 못한 환상으로 그려진다. 꿈꾸는 자였던 이몽학(차승원)-이름조차 夢학이다-은 자기 정당화의 오류에 빠진 살인자에 불과해져 버렸고, 앞을 보지 못해 달이 뜨는지 해가 뜨는지도 구분할 수 없는 맹인 황정학(황정민)만이 현실을 바로 판단하는 현안을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 남았다. 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이가 갖는 꿈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동인과 서인이 꾸는 꿈이 각각 달랐고, 그들이 꾸는 꿈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다. 꿈은 꾸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정당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는 사람을 칭송하는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인데 영화 속 '꿈'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백지(한지혜)의 '꿈'

아무리 잘해도 아쉬운 '여성' 캐릭터

여인, 백지가 말하는 '꿈'은 또 다른 지향점에 있다. '꿈'이 있는 남자를 사랑했던 그녀는 그 남자의 '꿈' 때문에 결국 버림 받았고 '당신이 꾸는 꿈 속에는 내가 없냐'며 끝까지 꿈타령을 하다가 죽음을 당했다. 그녀의 꿈은 오로지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이었을 뿐, 그녀가 보여주는 곧은 성품이나 도도한 몸가짐 같은 것은 남자들의 거국적인 '꿈'에 가 닿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황정학의 대사에 의해 '남자들의 짐'으로 전락하며 결국 견자로 하여금 길을 떠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황정학의 죽음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여성이 이렇게 무능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은 이준익 감독의 대부분 영화 속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인 듯 하다. (수애 주연의 <님은 먼 곳에>를 아직 못 봐서 하는 소리일지도.;) 그의 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극히 소극적인 역할만을 수행한다. 한지혜는 요사이 만들어 졌던 사극 속의 여느 여성 캐릭터들처럼 당차고 용감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듯 하지만 한 성격 하는 매력녀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자신의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꿈을 가진 사내의 여자가 되는 꿈을 가졌던 여성의 모습. 이것이 정치, 나라를 위한 꿈을 이야기하는 남자들이 바라보는 여성에 대한 관점은 아닐는지... 생각하면 깝깝해 진다.

원대한 '꿈'은 홀로 꿀 수 없다

견자(백성현)는 스스로 '꿈도 없는 개새끼'라고 부른다. 하지만 가장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주는, 소위 성장하는 캐릭터로서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유일한 인물이다. 서자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 있는 집안의 골칫덩이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응집해 터뜨렸을 때 가장 화려한 활약을 보여준다. 그는 먼 미래를 바라보지 않고 눈앞의 현실에 급급해 쉽게 흥분하고 감정에 충실하며 정에 약한 모습을 지닌 평범한 오늘날 젊은이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꿈도 비전도 없고, 반항심으로 가득 차 있지만 때에 따라선 전세대에 대한 의리와 충성심을 가장 잘 수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무모함은 결코 큰 일을 이루어낼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 휘영청 뜬 달을 향해 뛰어오르는 견자의 모습에서 카메라는 멈춘다. 마치 <왕의 남자>에서 장생(감우성)이 외줄 위에서 부채를 던지며 공중에 뛰어오르던 그 순간처럼. 견자는 힘차게 도약하지만 이 도약의 바로 뒤에는 왜의 총에 바로 죽게 될 모습이 기다리고 있다. 어지러운 시국, 열강의 침입, 권력다툼과 신분제도의 부조리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한 젊은이의 뒤늦은 깨달음 따위는 절대 꽃피우지 못하고 만다. 이것이 영화가 보여주는 비극이다. 우리는 장기적이고도 건설적인 (결코 '꿈'이 아닌) 비전을 가져야만 한다. 전세대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고 진정한 혁명을 이루려면. 이것이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려던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두 '학'의 대결


마무리

전반적으로 영화는 아기자기, 오밀조밀한 맛이 있다. 대장간이나 한신균의 집 안에서 일어나는 액션씬은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하여 스릴있고 잘 짜여진 액션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지만 오히려 넓디 넓은 궁의 뜰에서 일어나는 액션씬은 공간의 스케일을 잘 살리지 못한 느낌이 들어 긴장감이 떨어진다. 광활한 공간이 비장한 느낌이 아니라 너무 넓어서 허전하고 적막한 느낌이 드는.. 아, 그런 걸 의도한 걸까? ;;;

에필로그가 마지막으로 선사한 간지러움은 이준익감독이 참 착하신 분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차승원은 서늘한 기럭지와 갸름한 턱선 때문에 정말 악당 같은 느낌을 제대로 살려준다는. 그리고 영화 도중에 쏟아져 나오는 명대사들은 받아 적고 싶었을 정도. 후반부로 갈수록 꽤 재밌게 봤지만 전체적으로 뭔가 아쉬운 영화.

오랜만에 영화 리뷰 쓰려니.. 정리가 잘 안 된다. 역시 오래 쉬면 좋지 않아...;;;

'서편제'의 롱테이크를 떠올리게 했던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