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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vie review

<여행>배창호 감독이 보았던, 그리고 보여주고 싶었던 제주도의 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5. 17.


배창호 감독이 본 제주도의 이야기 <여행>

'영화, 한국을 만나다' 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개봉작은 배창호 감독의 <여행>. 앞 선 개봉 작품들은 서울, 춘천, 인천, 부산을 다루었는데, 마지막 작품 <여행>은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을 담는다는 프로젝트 성격 상 빠질 수 없는 곳인 제주도를 다루었다.

<여행>을 보기 전에 난  두 가지 포인트에 관심을 두었다. 하나는 제주도이고, 다른 하나는 배창호 감독. 국내에서 관광지로 가장 유명한 제주도를 다루는 영화이니 당연히 궁금했던 것은 배창호 감독은 제주도의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영화, 한국을 만나다'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추측했던 바로는 제작적인 면에서 몇 가지 기본 요건만 충족시킨다면(도시의 아름다움을 담는다 든가 도시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식) 창작적인 면에서 자유도를 주었을 거라고 짐작했었다. 마치 일본의 로망포르노와 같이 말이다. 그런 자유도를 생각해본다면 배창호 감독 정도의 위치가 되는 분은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놓을 거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이런 두 가지 포인트를 가지고 만나러 간 <여행>. 영화는 배창호 감독의 창작적인 욕심이 물씬 나는 작품이었다. 3개의 이야기를 넣은 147분이라는 조금은 긴 옴니버스 영화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여행>, <방학>, <외출> 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

<여행>에서 다루는  세 개의 에피소드는 다양한 형식과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 살아가는 자와 떠난 자, 방문자의 모습이 있으며, 풍경과 일상이 있다. 그 속에서 영화가 보는 것은 제주도란 공간 속에서 사람이 만들어 내는 일상적인 감정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표출하는 감정의 움직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이야기를 통해 일상을 만들어 낸다. 감독은 그 이야기들의 포인트를 짚고, 배치를 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조절하지만, 인위적으로 이야기를 연결시키거나 구별시키는 방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저 바다가 흘러가 듯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내려 노력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 <여행>은 청춘의 이야기다. 공모전 준비를 위해 함께 제주도에 온 대학동기인 준형과 경미.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짐작하지만, 확인하지는 못하고 망설인다. 마지막 한 걸음만 더 나아가 고백을 하면 되지만 그러지는 못하는 두 사람 제주도 자전거 여행은 마지막 한 걸음을 위한 여행이다. 이들의 여행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자, 곁에 있다는 존재의 중요성과 챙겨준다는 배려의 소중함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 <방학>은 사춘기 소녀의 방황을 담는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15살 소녀 수연은 여름방학이 되자 어릴 적 집을 나간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사라져버린 엄마와의 단절되었던 시간의 아픔을 담아낸 이야기 속에는 제주도에서 바라보는 육지에 대한 동경이 있으며,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세 번째 에피소드 <외출>은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온 중년여성 은희의 일상의 탈출을 다룬다. 제주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모습을 통해 일상에 지친 중년의 단상을 담았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제주도, 사람, 사랑의 이야기

분명 영화 <여행>이 다루는 중요한 테마는 '제주도'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영화를 들여다보면 그 안의 중심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결국 사랑의 이야기라는 감독의 표현. 그것이 자신에 대한 사랑이든, 타인에 대한 사랑이든 대상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필연적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충분히 주었던 사랑이든, 부족한 사랑이든 그 무게와 상관없이 사랑을 준 사람은 그 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다. 영화는 고백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 제 자리에 없는 것에 대한 모습, 울타리에 갇혀 살아 온 모습 등을 통해 사랑과 아쉬움을 담아낸다.

제주도와 사랑을 담은 <여행>에는 다양한 모습을 다룬 점과 시각의 깊이가 보인다. 배창호 감독은 영화에서 다룬 세대를 겪은, 겪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다양한 체험적인 면들이 영화 속에 녹아 들면서 다양성과 꽤 괜찮은 결합을 한다. 그리고 살아온 연륜의 깊이 역시 영화에서 느껴진다. 특히 세 번째 에피소드 <외출>은 그 자신이 현재 살아가는 연령대이다 보니 가장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연륜에서 나온 깊이가 마음에 든 점이라면, 아쉬웠던 점은 길이의 배분이다. 147분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균등하게 배분하여 이야기를 만들었으나. 두 번째 에피소드 <방학>은 그 길이가 아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야기가 너무 서둘러 봉합되며 마무리 된다. 앞과 뒤의 에피소드에선 조금 필요 이상으로 길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들도 눈에 보였는데, 그런 부분들을 조금 편집하고 <방학>에 할애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주도의 아름다움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괜찮은 영화

<여행>을 통해 감독이 본 것과 보여주려 한 것을 제대로 전달했는지에 대해서 내가 단언하기는 무리다. 다만 난 <여행>에서 보여준 배창호 감독의 시각과 표현이 마음에 든다. 일상을 포착한 필체가 요즘의 감각과는 다른 클래식한 느낌이 들지만 말이다.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방문하는,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인 <여행>은 제주도의 아름다움과 그 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괜찮은 영화라 생각한다. 이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고 싶은 분은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다만 이 영화를 만나러 가는 것이 다소 힘겨운 과정이라는 점이 무척 아쉽다. 내가 알기로는 '영화, 한국을 말하다' 프로젝트로 개봉하는 작품들이 전국에서 2개관에서만 상영되는 걸로 아는데, 이런 영화들을 보기 위해서 힘겹게 찾아가야 하는 현실이 너무 아쉽다.

요즘은 주춤한 배창호 감독이 더욱 좋은 작품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길 기대해 보며, 다음에는 조금 더 우리가 찾아가기 쉬운 여건에서 영화가 개봉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2010년5월2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