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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vie review

<폐가>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장르의 조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8. 17.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걸작 <블레어 윗치> 

 <폐가>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먼저 <블레어 윗치>를, 그보다 앞서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이야기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진실을 추구해야 할 다큐멘터리의 속성을 역 발상으로 접근하여, 허구 같은 사실로 관객을 공략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적 만족은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짧은 시간이나마 사실적 느낌으로 공유하고픈 욕구의 충족이다. 

 최초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라고 알려진 피터 왓킨슨의 <워 게임>부터 계보적으로 논하기는 사실 어렵다. 대부분의 작품들을 알기도, 보기도 힘든 현실에서 이런 영화가 있었다 같은 이야기는 학문적인 접근을 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일이므로, 나는 논의의 출발을 1999년 <블레어 윗치>에 해놓고 싶다.

 <블레어 윗치> 그리고 1999년. 얼마 전 모 신문에 기고된 글을 보니 1999년은 한국 장르 영화의 르네상스였다고 적은 바 있던데 완벽하게 동의한다. 근래 들어 가장 독창적이고, 대중적이며, 실험적인 한국 영화들이 많이 개봉된 시간대임은 틀림없는 사실. 그러나 헐리우드 영화도 주목할 만한 영화 몇 편이 있었는데, 우리가 눈 여겨 볼 작품은 <블레어 윗치>다. 제작비 35만 달러(순수 제작비 6만 달러)로 만들어진 <블레어 윗치>는 선댄스 영화제 소개를 시작으로, 배급의 규모가 점점 커지더니 결국 1999년 전미 박스오피스 10위(북미 기준 흥행 1억5천만 달러)를 거두어 들였던 초유의 히트 작품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제작비 대비 340배의 흥행을 올린 점만이 아니다. 인터넷을 통한 페이크 홍보 전략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실이 더 흥미롭다. 거짓 정보를 통해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전략. 이것은 새로운 도전으로 평가받아야 할 점이다. 여러모로 <블레어 윗치>는 대중적으로나, 영화적으로나 평가 받아야 할 작품임에 분명하다.

 이후에 등장한 <REC>나 <클로버 필드>, <디스트릭트 9>, <파라노말 액티비티>등의 영화들은 상당한 부분이든, 적은 부분이든 <블레어 윗치>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적어도 <블레어 윗치>가 조성한 장르적인 대중적 관심에 기대고 있으니까. 또 이들의 성공은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장르적 생명력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성공에 기대며, <블레어 윗치>에 충실한 <폐가>

 몇 편의 영화 외엔 TV, 케이블 등에서나 활용되던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을 다시 스크린으로 시도한 <폐가>.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성공에 신선한 자극을 받았던 걸까? <폐가>는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조성한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성공을 노골적으로 바란 모습으로, 장르의 성공작들에 직접적이며, 노골적으로 구애한다. 시장의 분위기를 <파라노말 액티비티>에 기대했다면, 구성의 모습은 <블레어 윗치>의 한국판이라고 할 정도로 유사하다. 

 <폐가>가 다룬 소재는 제목처럼 최근 TV 등을 통해 많은 주목을 받는 폐가. 인터넷의 보급 이후 수 없이 만들어진 동호회, 커뮤니티. 그 중엔 폐가 체험을 통해 호기심과 공포를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동호회 등에서 모여 함께 폐가를 체험하고, 인증 사진 등을 올리며 폐가 방문 행위를 즐긴다. 그들에게 폐가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놀이 문화이며, 공통의 관심사일 뿐이다.

 영화 <폐가>는 이것에 주목했으며, 이런 유행적 흐름을 적절히 소재로 차용했다. 폐가 동호회 회원 3명과 방송 팀 3명이 폐가에 대한 영상물을 만들다가 실종되었다는 내용. 실종된 그 날 그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촬영된 영상을 통해 재구성하는 형식이다.

 <블레어 윗치>와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형식을 빌려온 <폐가>는 앞 선 작품들의 형식에 충실하다. 실종된 사람들, 입수된 영상, 복원 작업, 사건의 증거물이라고 강조하거나, 여러 설명을 넣은 자막 등. 영화는 계속적으로 진짜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관객의 몰입하도록 최면을 건다. "이것은 진짜야, 믿어!"라고.


몰입하기엔 너무나 엉성한 시점의 문제

 그러나 <폐가>는 몰입하기엔 구성의 결정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시점의 문제다. 보통의 영화가 사건 전체를 한눈에 보는 전지적 시점을 주로 사용하는데 비해,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 <폐가>는 1인칭 시점이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들고 찍는 카메라의 시점이 곧 영화의 시점. <폐가>는 등장인물 6명을 차례대로 희생시키는 구성을 취했는데, 여기서 구성적인 문제점이 발생한다. 위기상황에서 카메라를 찍는 여유란 것이 존재하는 것 인가란 의문. 물론 이것은 다른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들도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소재 확장과 연결 등을 통해 슬기롭게 보완했다. <블레어 윗치>는 한방에 터뜨리는 방식을 취했으며, <클로버 필드>는 영화에서 계속적으로 기록물을 남기겠다는 한 사람의 시점으로 전개한다. 하지만 <폐가>는 설명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저 6명의 인물을 희생시키는데 누군가 찍고 있는 형식이다. 마치 또 다른 카메라맨이 따라다니는 느낌이 든다.

 이런 느낌 때문인지 <폐가>는 초 중반의 몰입과 후반부의 몰입에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인물들이 희생될 수록 영화는 산만하며, 비현실적이란 느낌이 든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특징인 내가 사건현장을 함께 본다는 느낌에 이입하지 못하고 이탈하는 상황. 게다가 영화는 마지막엔 영화적 시점까지 도입하고 만다. 도대체 이 영화의 시점은 무엇인가? 진실 같은 허구가 아닌, 허구 같은 허구만이 남은 <폐가>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찍은 이유가 불분명한 장르의 조난이며, 망각이다.


한국판 <블레어 윗치>가 되기엔 너무나 부족한 작품

 물론 <폐가>도 칭찬받을 만한 면이 있는 작품이다. 일본 등의 공포물의 답습 같은 모습도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기존의 한국 공포물들과 차별화한 무엇을 보여주려 한 노력을 한 흔적들이 있다. 여러 가지 구성적인 섬세함도 종종 보인다. 그리고 신인 연기자들의 연기도 무난한 편이다.

 그러나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대한 기본적인 공식에 대한 외면이 불러온 부족함이 너무나 크다. 과욕이었을까, 아니면 과신이었을까? 이 정도는 넘어가도 될 것이라 여긴 선. 하지만 그 선이 가장 중요했던 부분이다. 차라리 페이크 다큐멘터리 자체에 더욱 탐닉하며, 실험적이고 상상적인 기법을 도입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한방에 죽이는 구성 또는 소리 만으로 자극하는 방식처럼 말이다. <폐가>에게 바란 것은 전형적인 공포가 아닌, 신선한 공포였으니까.

 한국판 <블레어 위치>를 표방하며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되고 싶었던 <폐가>.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한국적 결과물에 대해 궁금한 분이라면 보아야 할 작품이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 초점을 맞춘 분에겐 더 없이 실망스러운 작품이 될 것이다. 관객에게 <폐가>의 간접체험을 줄지언정, 그 현장에서 벌어진 사건의 공포를 주기엔 너무나 썰렁한 영화다. 누구에게나 만족스러운 것은 '폐가' 그 자체로 영화 속 폐가에 대해선 GOOD 을 주고 싶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시각적인 피로감을 거의 안 느끼는 나도 <폐가>의 카메라 흔들림은 피곤스러울 정도였다. 적당히 흔들었어야 했다.

★☆

*2010년8월1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