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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vie review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세 번째 이야기는 안 나올 거라 믿는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7. 24.



1999년 <여고괴담>, 2004년 <쏘우>, 그리고 2008년 <고사 - 피의 중간고사>

 근래 10여 년 사이에 개봉한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국 영화를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쉬리>를 꼽고 싶다. 1999년에 개봉한 <쉬리>는 <쉬리> 이전과 이후로 구별될 정도로 큰 영향력을 준 영화다. 한국 영화의 경쟁력이란 부분, 간단히 말해서 자신감을 주었던 작품. 그것은 헐리우드와는 다른 우리 만의 무엇을 보여줄 수 있고, 그것이 관객들에게 먹혀들 수 있다라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그럼 범위를 좁혀 보겠다. 공포 영화에서 중요한 영화는 무엇이 있을까? 두 말 할 필요 없이 <여고괴담>이다. 과거 일정 숫자의 작품이 나왔었지만 90년대 명맥이 끊겨 버린(중간에 <구미호>가 나오긴 했지만 그건 기술적으로 접근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한국 공포 영화. 이런 암흑기에 일본 소재의 차용 이란 태생의 문제점을 갖고는 있었지만, 관객의 반향을 불러 일으켜서 공포 영화의 부흥을 일으킨 점에서 평가를 해야 할 작품이 <여고괴담>이다. <여고괴담>은 <여고괴담>의 시리즈화를 가능하게 했었던 시작이자, 다양한 한국 공포 영화의 제작을 가능하게 한 토대였다. 이후 호황세의 한국 공포 영화 시장에서 외국영화지만 중요한 의미를 지닌 영화가 20040년에 등장한다. 바로 <쏘우>다.

 <여고괴담>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쏘우>를 등장시킨 이유가 뭐냐고 궁금한 분들이 있을 것인데, <쏘우>를 거론한 이유는 바로 소재 때문이다. 두뇌 싸움을 가장한 살인의 게임이란 특이한 소재. 정통적인 귀신 등의 소재를 다룬 공포 영화가 아닌, 복수를 집행 하는 살인 게임 <쏘우>의 등장은 관객에게 살인을 놀이동산의 게임처럼 간접 체험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살인의 게임을 집행하는 자는 <나이트 메어>나 <13일의 금요일>의 인물들과는 달랐다. 과거의 살인마들이 단순한 유형이었다면, <쏘우>의 직쏘는 법의 사각지대가 가진 모순을 파헤치며, 나름의 논리와 정의를 집행하면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 해석하기 쉽지 않은 복잡한 유형의 인물이었다. 

 <쏘우>의 등장은 공포 영화 트렌드의 변화를 의미했던 걸까? 묘하게도 <쏘우>의 시작은 <여고괴담>의 끝과 맞닿아 있다(<쏘우> 시리즈가 2004년 시작했었고, 한동안 <여고괴담>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처럼 여겨졌던 <여고괴담 4 -목소리>는 2005년 개봉했었다). 그리고 2008년, <쏘우>와 <여고괴담>의 피를 적당히 이어받은, 살인의 게임을 추구하는 학원 공포물의 형태를 가진 <고사 - 피의 중간고사>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고사 - 피의 중간고사>는 전국 180만이라는 흥행 성적 말고도 다른 각도에서 흥미로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작적인 면에서 단타성 기획과 제작사 소속의 배우들을 적극적으로 캐스팅하여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쏘우>와 <여고괴담>의 적당한 차용이 관객에게 통했다는 점이다. 분명 <고사 - 피의 중간고사>는 공포 영화의 장르적인 재미도 떨어지고 억지스러운 전개로 실망스러웠지만, 제작적인 면에서는 기획적인 면과 대폭적으로 줄인 제작비 등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 면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영화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여고괴담>이 소프트웨어적으로 중요한 영화였다면, <고사 - 피의 중간고사>는 하드웨어적으로 중요한 영화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1편의 플롯을 복제한 2편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은 1편에서 사용했던 단타성 기획이나 단기 제작에 맞춘 제작사 소속의 스타 시스템 활용 같은 제작 장점을 이번에도 십분 활용했다. 그리고 2편은 다른 의미의 제작적인 걸음을 한 걸음 더 나아갔다. 1편의 플롯을 스스로 자기 복제를 했다는 점이다. 복제의 틀은 1편에서 사용한 <쏘우>와 <여고괴담>의 변형물. 1편의 복제 답게 영화는 1편과 마찬가지로 <여고괴담>이 제시했던 학원물의 색깔(학생간의 관계)을 사용했으며, <쏘우>식의 복수 스타일 역시 그대로 사용했다. 심지어 중심인물(특히 범인)의 포지션까지 사용할 정도. 

 2편이 1편과 동일한 플롯을 다시 사용했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여타의 공포 영화 시리즈를 노골적으로 닮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선언의 결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방향성과 반복성이다. 반복적인 플롯의 활용은 전편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일정 수의 관객, 즉 안정적인 흥행을 가장 먼저 생각하겠다는 것으로, 장점만을 생각하고 취하려는 행동이다. 그에 반해 반복성은 부정적 의미로, 관객이 너무나 반복적이고 뻔한 이야기로 식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관객이 호응을 해주느냐의 문제다. 안주에 대한 호응이냐, 답습에 대한 외면이냐의 선택.


너무나 충실하게 복제하여 평행우주를 보는 착각이 들 정도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은 전편과 같은 이야기로, '학교가 갇힌 공간이 되었고, 하나씩 죽어간다'는 설정이다. 전편을 본 사람이거나 보통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추리를 할 것이다. 몇 사람이 얽힌 원인이 되는 사건이 존재할 것이고, 현재 같이 있는 사람 중 누군가가 범인일 것이라고.

 영화는 이런 추리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간다. 영화는 친절하게도 관객이 추리하는데 편의성을 주려는 듯, 1편과 마찬가지로 귀신 등을 개입시키지는 않는다. 그렇다 보니 영화 초반이 지나면 범인은 딱 보일 정도. 그나마 초반부의 구성은 전편에 비해 발전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폐쇄공간의 설정에 나름대로 타탕성을 주려 했고, 살인 게임에서의 유희적인 강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초반뿐이다. 중반부터는 놀라운 수준의 자기 복제 능력을 보여주면서, 마치 전편의 평행우주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끔 한다. 애초부터 전편과 다르게 만들고픈 생각이 없었던 모습이기에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에서 스토리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렇다면 영화 내용 상의 흥미요소인 범인이 누군가란 축이 무너졌다면, 남은 것은 다른 한 축인 범행 동기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가 다른 것들은 열심히 전편을 복제했던 반면에, 범행 동기는 복제하는 걸 잊었던 듯 하다. 나름대로의 창작으로 나온 범행 동기라는 것이 너무나 민망하며 조악하다. 이 조악한 범행 동기가 그래서 더욱 공포스럽기도 하다. 그 뻔뻔함 때문에 말이다.

 이야기적인 면이 빈약했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살인의 방법이 주는 새로움과 세기가 주는 쾌감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마저도 배신을 했다. 살인 게임의 장면들은 식상스러울 뿐이며(특히 마지막 강당 장면은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쓸쓸히 들려오는 괴성은 이 영화의 죽음을 알려주는 단말마의 비명이다.


3편은 안 나올거라 믿는다

 내용도 엉망, 배우들의 연기도 엉망. 그리고 장르적인 재미도 엉망인 난맥상의 결과물인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2편을 보고 나면 <고사 - 피의 중간고사>의 지적 수준이 높았다는 역설적 생각이 들 정도다. 전작도 수준 높지 않은 마당에, 그것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속편을 보고 난 후 마음 속에 남는 감정은 후크송 스타일 영화에 샘플링 마냥 사용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메멘토 모리>에 대한 미안함과 은근슬쩍 양념처럼 다루어지는 학원문제, 가족문제, 사회문제 등에 대한 측은함이다.

 또 하나 느낌이 있다면 엔딩크레딧을 장난스럽게 사용하는 모습이 주는 불쾌감이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엔딩크레딧의 장난은 이번에도 이어졌다. 무슨 의도로 넣었나 의심이 드는, 영화 엔딩의 흐름과 너무나 동떨어진 제작 장면이 들어간 엔딩 크레딧. 엔딩 크레딧 보다 불쾌한 기분이 드는 건 정말 드문 일인데, 전편에 이어 이번에도 그러다니 어떤 면에선 그 일관된 고집이 대단하기 까지 하다. 도대체 누구의 생각인지 정말 궁금할 정도다.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에서 그나마 존재 의미를 찾는다면 숙제를 던져준 점이다. 한국 공포 영화의 앞날에 대한 고민이라는 숙제. 한국 공포 영화는 선택과 집중의 시기가 아닌가 싶다. 단순하게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든가, 아니면 스토리적인 공감대를 얻든가. 그리고 선택한 것에 집중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이것 저것 다루는 복합멀티플렉스 스타일의 장르물은 이제는 정말 아니라고는 생각한다. 이야기로 공포를 주든, 시각으로 공포를 주든 무엇이라도 하나만 제대로 헸으면 한다. 관객이 영화에서 공포감을 느끼는 게 아닌, 찾아야 하는 괴로움을 이제는 제발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 그렇다고 이 숙제를 스스로 해결한답시고 세 번째 이야기를 만드는 우를 범하지는 않길 바란다. 진심이다.



*2010년7월2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