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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vie review

이끼 (2010, 강우석)_긴장감없는 스릴러, 배우마저 없었더라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7. 23.

<이끼> 21010
연출 : 강우석
출연 : 박해일 / 정재영 / 유해진 / 유선


이 곳 이 사람들 도대체 무엇인가?!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왔던 해국(박해일 분)은 20년간 의절한 채 지내온 아버지 유목형(허준호 분)의 부고 소식에 아버지가 거처해 온 시골 마을을 찾는다. 그런데 오늘 처음 해국을 본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해국을 이유 없이 경계하고 불편한 눈빛을 던지는데...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마련된 저녁식사 자리. 마치 해국이 떠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것 같은 마을사람들에게 해국은 `서울로 떠나지 않고 이 곳에 남아 살겠노라` 선언을 한다. 순간,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감돌고, 이들 중심에 묵묵히 있던 이장(정재영 분)은 그러라며 해국의 정착을 허한다.

 이장 천용덕의 말 한마디에 금세 태도가 돌변하는 마을사람들. 겉보기에는 평범한 시골 노인 같지만, 섬뜩한 카리스마로 마을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이장과 그를 신처럼 따르는 마을 사람들. 해국은 이곳 이 사람들이 모두 의심스럽기만 한데...


원작보단 영화를 먼저 보는 게 예의

원작이 워낙 유명하다길래 웹툰을 먼저 볼까 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몇 회쯤 보니까 이거이거 제대로 붙잡으면 밤 새겠다 싶었다. 그리고 웹툰을 보고 나서 영화를 보면 실망할 확률 왠지 100%일거라는 느낌이 왔다. 과감하게 인터넷을 끄고, 정말 그야말로 온전히 영화 그 자체로 순수한 마음으로 감상하기 위해 참고 극장부터 찾았다.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현매를 했는데 가까스로 좌석을 확보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주말 오후긴 했지만 극장 안 객석을 꽉꽉 채우는 영화 분명 흔치
않을텐데 역시 강우석 파워, 박해일+정재영의 스타파워가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 강우석 감독은 '우직+충직+직설적' 영화의 대가이시다. 내가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장르가 엄연히 스릴러이고 스포일러가 될 생각 없기 때문에 내터리브를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2시간 40분에 육박하는 엄청난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영화는 휘몰아친다. 박해일, 정재영, 유해진 등 배우들이 내뿜는 카리스마만 해도 영화는 충분히 집중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것은 당최 결말이 궁금하지가 않은 거다. 무언가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한데 그 정체가 그 어떤 것이든 놀랍지 않을 것만 같은 예감을 풍기더니 내가 보기엔 반전이라고 내세운 듯한 결말 장면도 그저 심드렁할 뿐. 영화는 <극락도살인사건>이나 (역시 박해일이 출연했던 스릴러 영화. 폐쇄적인 섬에서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사건들과 반전이 볼만했던) 잘 하면 <도그빌> 정도를 연상시키는 설정을 따르지만 긴장감이나 기발함의 요소들을 모두 피해가는 기묘한 연출을 따르고 있었다. 배우들의 대사나 지나치게 친절한 회상장면을 통해 모든 사건을 일일이 설명하고 이끌어 가는 방식도 고루하고 신선도가 떨어졌다. 이 영화가 90년대 쯤 나왔더라면 엄청나게 재밌게 봤을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영화의 주제만큼은 원작에서 빌어온만큼 거대한 철학적 물음을 함께 던지고 있는 듯 하다. 범죄자를 갱생시켜 새로운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영화 속 인물들이 꿈꾸던 희망이었다. 하지만 악한 본성을 지닌 인간에게 '참회'와 '새사람되기'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결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폭력근성은 유전적이기도,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들의 폭력성은 일시적인 트레이닝을 통해 뒤집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실험이 성공했더라면 정말 좋았겠지만 이미 자라난 폭력근성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은 낭만적인 발상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릇된 희망과 현실이 벌인 전쟁에서 패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 포기할 것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일이라 하더라도 결과가 성공적이지 못하다면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든 복수를 꿈꾸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은 다른 인간의 의지와 마음으로 다스려질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시끄러운 학생 체벌 문제를 연상케도 한다. 도대체 체벌을 전면 금지해서 요즘 애들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인지... 철없는 낭만주의자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현실을 모르고 외면할수가.)

어쨌든 권력은 '선(善)'과 절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 인간의 폭력성과 음흉함이 얼마나 큰 비극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낱낱이 고하고 있는 이 영화는 우울하고 가슴아프다. 그래서일까 영화 전반에 드리운 어둠의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강우석 감독은 무리한 유머를 곳곳에서 터뜨리는 장치를 사용하는데 이런 정도의 유머라도 없었으면 도대체 어쨌을 뻔 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영화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느낌은 지우기가 힘들었다. '이것봐, 강우석 감독의 영화에는 '코미디'도 있다구~'라는 사실을 관객에게 끊임없이 주입시키려는 듯이 유머는 영화와 현실을 겉돈다.

배우들이 연기가 그나마 받쳐준다

모두가 칭찬하는 배우들의 연기력도 나는 잘 모르겠다. 울분을 토하며 눈뒤집고 넘어가는 유해진의 연기만큼은 명불허전이었으나 정재영은 분장값이 반을 차지하고, 박해일은 시종일관 연극을 하는듯 딱딱한 지나친 도시남자스러운 대사톤을 유지해 별로 영화 자체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독은 아니어도 배우들한테 거는 기대가 무의식중 엄청 컸었나보다. 그 정도 연기는 그들한텐 항상 해오던 거잖아요. 안 그래요?) 유선은 음울하고 사연많아 보이는 여자 캐릭터에 잘 어울렸지만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새치 하나 나지 않은 미모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비현실적이었고. 그나마 가장 자연스럽고 딱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준 것이 유준상. (그는 언제나 넘치치도 모자라지도 않는 연기력으로 영화 속 캐릭터를 정확하게 구현한다.) 정재영은 기가 막히는 노인분장에 걸음걸이 하나하나까지 연기에 충실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코믹한 이미지의 영향이 컸기 때문일까, 천용석 이장의 무시무시한 악마적 카리스마를 열 씬 보여주다가 딱 한 컷에서 날린 유머 한 방으로 모두 날아가버렸다는...



유해국(박해일)의 과거는?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는 도대체 주인공 유해국(박해일)은 왜 가해자로 몰렸으며 박검사와 묘한 우정&적대 관계를 형성하게 된건지 그들의 관계를 전혀 설명해 주지 않고 있는데 2시간 40분 동안 그 중요한 문제 하나 설명해 줄 여력이 없었던 건가, 아니면 그런 문제는 웹툰을 찾아 보고 알아서 궁금증을 해결하라는 건가. 내가 보기에 (물론 사전 정보가 없다는 가정 하에) 이 영화에서 유선생의 죽음에 있어서 가장 의심스러운 존재는 유해국이었어야 했단 말이다. 도대체 누가 혐의를 가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게 아니라 초반부터 유해국이 절대선의 입장에 세워두고 언제 어떻게 이장의 비밀이 밝혀질까를 2시간 넘게 쫓다 보니 지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 
훗, 이쯤 되니 모든 질시와 비교와 더 깊은 성찰은 웹툰이나 보고 나서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건가.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극장가에서 뚜렷한 라이벌을 만나지 못해 벌써 300만을 넘겼다고 하니 이 기세로라면 500만은 거뜬히 넘게 생겼다. 500만 넘을 가치가 없다고 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시금털털 찝찌름한 기분은 지울 수가 없다는.


웹툰 속 마을을 완벽하게 재현한 셋트는 정말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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