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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vie review

<심야의 FM>이야기가 아닌, 영상과 조명으로만 만든 스릴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0. 8.



*스포일러가 다수 있습니다.

소재의 매력이 있는 영화 <심야의 FM>

 흑백으로 채색된 야경과 도시, 라디오에서 들리는 DJ의 음성, 이어지는 살인 장면. <심야의 FM>의 첫 시작은 포스터 디자이너, 미술감독,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김상만 감독이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지점이다. 감각적인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공간(도시)과 시간(심야), 그리고 소재(라디오)와 인물의 성격 방향('택시 드라이버'열쇠고리) 등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남은 것은 이것들을 어떻게 활용하여 이야기를 잘 만드는가의 문제. 

 <심야의 FM>의 소재는 라디오 생방송이다. DJ는 범인이 시키는 대로 방송을 해야 하고, 멈추어서도 누구에게 알려서도 안 되는 상황. 상당히 관객의 구미를 당길만한 소재다. 그러나 소재가 발한 빛은 여기까지일 뿐, 영화의 빛으로 발하진 못 했다. <심야의 FM>은 소재가 아이디어적으로 좋지만 이야기의 구조로 나아가기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었던 사례였다.


가장 손 쉬운 방법으로만 풀어가는 이야기

 <심야의 FM>은 범인의 정체를 숨기지 않는다. 오프닝 이후에 주인공 고선영(수애)에 대한 약간의 설정 장면(고선영의 현재 상황과 영화와 연결되는 생각의 일부분)을 보여준 후, 바로 정체불명의 범인 한동수(유지태)가 바로 등장한다. 그가 고선영의 가족을 납치하는 장면으로 본격적인 영화의 게임이 시작한다. 이것은 예상외 인물이 범인으로 등장하는 반전을 포기한다는, 정공법의 의한 전개를 하겠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스릴러 장르에서 극을 이끄는 힘은 범인이 누구인지, 왜 그러는지(이유), 어떻게 할 것인지(방법) 다. <심야의 FM>은 앞서 말한 대로 '누구'를 포기했다. 남은 것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이유를 다룸에는 설정의 힘이 있어야 한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확실하게 구축하면서 동기 부여를 해야한다. 지금 벌어지는 사건은 우연이 아니기에. 방법을 다룸에는 치밀함이 있어야 한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무리스러움이 없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하는 반전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등장에도 무리스러움이 없는 철저함이 있어야 한다. 이렇듯 스릴러 영화는 철저히 계산된 물리적 영역 안에서 설명 가능한 이유와 방법을 보여주어야 한다.

 <심야의 FM>은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한다. 영화 시작 후 바로 범인을 알려준다면 남은 영화의 시간을 이끄는 것은 이유의 무게감과 방법의 과격함이다. 그런데 이유와 방법의 기준을 적용시키면 <심야의 FM>은 스릴러의 장르로서 너무나 엉성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대로 끝내서는 안 되요. 시작을 같이 했으면 끝도 같이 해요"라고 외치는 범인 한동수. 후임 DJ를 죽이고, 고선영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그녀를 협박하며 방송에 개입하는 그가 하는 행동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구구절절 말하지만 결국 싸이코패스다. 주인공과 연결된 정교한 설정 같은 건 없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로 삼고자 하는 것은 다른 영화적 힘이 없는 상태에서 이유를 너무나 쉽게 사용하는 방법으로 잡은 점이다.

 '이유'의 무게감이 없다면 남은 것은 방법이다. 영화의 초 중반은 이 힘이 일정 부분 있다. 생방송 중인 고선영에게 계속적으로 미션을 주는 한동수. 미션의 실패는 가족의 희생으로 이어지기에 고선영은 모든 것을 걸고 미션 풀기에 나선다. 미션은 언제 방송했던 음악을 기억하느냐, 언제 방송했던 멘트를 기억하느냐. 이 문제들은 한동수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과 연결된다.

 여기에서도 영화는 치열한 머리 싸움을 하기 보다는 쉬운 방법들을 찾는다. 방송의 모든 곡과 멘트를 기억하고 있는 스토커에 가까운 청취자가 조력한다는 식. 영화는 이런 인물의 활용을 일회용으로만 쓰긴 아쉬웠는지 영화 전개의 핵심 포인트마다 우연에 가깝게 개입시킨다. 미션을 푸는데 조력을 주고, 범인과의 첫 만남에서 그가 시간을 끌어주며(그 덕에 카체이스 장면이 나오는), 마지막 장소에서도 그는 나타나서 고선영을 도와준다. 이런 인물에게 어떻게 그 장소에 있는지를 묻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그는 이유를 불문하고 당연히 거기 있어야 하는 존재다.

 사실 <심야의 FM>은 고선영이 스튜디오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스릴러로서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 한동수가 방송을 원하며 제시한 선곡표는 인물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며 범인과의 만남으로 다가가는 문이기에, <심야의 FM>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이다. 그러나 영화가 스튜디오를 벗어남은 이런 선곡표나 미션 등의 치열한 설정의 게임이 아닌, 쫓고 쫓기는 속도의 게임으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렇게 속도의 게임을 전개한다. 그래도 앞에서 제시한 라디오 진행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생방송이라는 상황적 설정은 무시할 수는 없기에 그때 그때 영화적 상황에 맞게 맞추어 가기는 한다. 이런 엉성한 각본의 스릴러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과잉스러운 배우들의 연기와 비명, 그리고 추격전.


이야기가 아닌, 영상과 조명으로만 만든 스릴러 

 <심야의 FM>은 복선이 없는,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달리는 것을 즐기면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심야의 FM>은 액션 영화가 아닌 스릴러다. 사건이라는 걸 풀어가는 과정을 다루는 스릴러이기에 다른 장르보다 각본이 치밀해야 한다. 우연의 개입. <심야의 FM>은 제한된 범위에서 이것을 너무나 빈번하게 사용한다. 머리를 쓸 생각이 없다. 일어나는 사건을 시간대 순으로 맞추어도(영화의 물리적 시간영역은 약 2시간 30분 정도다. 그 안에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배치시키면 답이 나온다) 논리적으로 무리가 따를 정도다(<심야의 FM>은 논리를 거슬러도 될 정도의 장르에 속한 영화는 아니지 않는가?).

 이야기가 만들어가는 스릴러를 거부하고, 영상과 조명으로 스릴러를 만들려고 한 <심야의 FM>. 과잉된 에너지로 충만한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감독의 연출적 능력이나 각본적인 완성도를 따진다면 절대적으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김상만 감독은 자신이 잘하는 분야만 잘했을 뿐이다. 다만 이걸 구경하기엔 100분이란 시간은 참으로 길다.

★☆

*2010년10월1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