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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래자랑>

k-movie review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6. 2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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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엔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으나 미애(류현경 분)와 결혼한 후에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꿈을 접었던 봉남(김인권 분). 경상남도 김해에 머물면서 낮엔 미애가 운영하는 미용실의 보조로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열심히 살지만, 여전히 봉남의 마음 한편엔 가수의 꿈이 자리한다. 


어느 날, 김해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포기했던 가수의 꿈을 조금이나마 이루고자 참가하는 봉남. 그리고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회사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참가하는 현자(이초희 분), 할아버지(오현경 분)와 단둘이 살다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헤어지게 된 손녀 보리(김환희 분) 등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여든다.


영화로 무대를 옮긴 <전국노래자랑>의 명암


요즘은 열기가 다소 식었으나 오디션 프로그램은 여전히 TV 프로그램의 인기 아이템이다. 실시간으로 점수가 매겨지며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시청자는 자신이 응원하는 자에게 감정 이입을 하거나, 또는 경쟁 자체를 즐긴다. 가수가 '나는 가수다'라고 굳이 증명해야 하고, 인기를 끌었다가 사라진 가수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명분 아래 '내 생애 마지막'이란 경쟁 게임에 열광하는 모습이 최근 오디션 프로의 자화상이다.


1980년 11월 9일 첫 방송 된 이래, 무려 33년째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정다운 실로폰 멜로디를 들려주며 문을 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은 앞서 언급한 생존 게임과는 거리가 멀다.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이 경쟁을  중요한 미덕으로 여기는 데 비해, '전국노래자랑'의 '딩동댕'과 '땡'은 큰 의미가 없다. '전국노래자랑'은 노래 잘하는 사람도 보여주지만, 그보다 더 애정을 담아 비추는 것은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그들의 얼굴엔 사연이 깃들어있고, 그 사연은 노래로 들려진다. '전국노래자랑'은 그들을 위한 무대다.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영화로 옮긴 <전국노래자랑>은 실제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참가자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영화는 봉남을 통해 잃어버린 꿈을 조명하고, 현자에게선 수줍은 첫사랑을 끄집어낸다. 보리는 가족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전국노래자랑>에서 다루어지는 요소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보편적인 삶의 단편이다.


영화는 봉남, 현자, 보리의 삶을 밝게 그렸지만, 아쉽게도 애써 가린 그늘이 눈에 더 들어온다. 자신의 꿈이 소중한 만큼 아내의 꿈도 소중하나 봉남은 외면한다. 월세를 올려달라는 전화를 빼앗아 도리어 큰소리치는 봉남에겐 무책임한 가장의 허세만이 보인다. 현자는 전국노래자랑의 무대를 통해 사랑 고백에 성공하지만, 애초에 그녀가 무대에 올라서는 것은 회사 사장의 강압적인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회사는 어떤 배려도 그녀에게 하지 않는다. 오로지 강요만이 존재한다.


할아버지에게 맡겨졌던 보리를 어머니(신은경 분)가 데리고 가는 모습도 당황스럽다. 평소에 딸의 양육을 맡긴 채로 전화 정도만 걸던 어머니가 이제 여유가 되었으니 딸을 데리고 외국으로 가겠다는 상황에서 그녀를 좋은 어머니며, 딸로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전국노래자랑>은 각자의 사연은 만들었으나 효과적으로 이어가진 못한다. 벌어진 상황을 노래자랑 무대로 서둘러 봉합할 뿐이다.


이경규가 송해에게 바치는 헌정 같은 영화


<전국노래자랑>은 봉남, 현자, 보리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결국은 봉남의 영화로 보아도 무방하다.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꿈을 버렸던 봉남이 '전국노래자랑' 무대에서 '챔피언'을 신나게 열창하는 모습에서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와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2007)의 인물들이 떠오른다. IMF 이후의 중년 남성들의 상실감과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음악을 접었던 친구들은 끝내 음악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반면에 <즐거운 인생>에서 음악을 접었던 중년남성들은 잃어버린 꿈을 찾아 다시금 밴드를 결성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선 꿈을 찾을 엄두도 못 내던 남성들은 몇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즐거운 인생>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중년 남성들의 모습은 <전국노래자랑>에서도 이어진다. 이렇듯 우울한 시대의 색채는 점점 밝게 채색되고 있다.


다시금 꿈을 꾸는 남성의 모습은 제작자 이경규의 모습이기도 하다. 영화 감독의 꿈을 위해 만들었던 <복수혈전>은 지금까지 웃음의 소재로 활용될 정도로 그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러나 <복수혈전> 이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제작자로 나선 <복면달호>로 그는 제작자가 지녀야 할 능력을 입증했다. <복면달호>의 "노래엔 상하가 없다"는 대사는 어쩌면 그가 싸워왔던 편견에 대한 자전적 고백일지도 모른다.


<전국노래자랑>을 오랜 시간 동안 TV라는 매체에서 활동한 이경규가 바치는 이상적인 TV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어린 헌정으로 본다면 무리일까? <전국노래자랑>엔 긴 세월 동안 따뜻한 TV 프로그램을 만들어 온 송해를 닮고 싶어하는 희망이 겹쳐진다.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장 와닿았던 것은 앞으로도 따뜻한 웃음를 만들고 싶다는 이경규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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