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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멸망보고서>단평

k-movie review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4. 5.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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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멸망보고서>에는 자신이 탐구해온 주제에 장르를 포섭한 김지운 감독과 자기가 찍고 싶었던 소재를 장르를 비틀어내며 구현해낸 임필성 감독이 묘하게 공존한다. 먼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 왔던 김지운 감독. 그와 SF의 만남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항상 결과물로 놀라게 만들었던 감독이 김지운 아니었던가? <천상의 피조물>에서 김지운은 로봇의 (컴퓨터로 만들어진) 정신과 (기계로 제작된) 육체를 통해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탈리아 영화평론가 알렉산드로 바라티는 김지운의 영화들을 분석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절대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감독'이라 평가했다. 그의 평가는 이번에도 유효했다. 즉, <천상의 피조물>로 김지운의 역량을 쉽사리 계량화하기 보단 김지운의 다른 영화들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며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임필성 감독은 예상할 수 있는 부류에 속한 감독이 아니라는 걸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만든 두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멋진 신세계>는 무척 진부했다. 정치적인 은유에서 출발한 조지 로메로의 좀비 영화를 충실히 계승하여 한국 사회를 풍자한 좀비 영화로 접목시키는 시도 외에 어떤 점도 긍정할 구석이 없다. 그러나 다른 에피소드 <해피 버스데이>는 독특하다. 일반적인 상상의 범주에선 나올 수 없는 장난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어느 누가 '8번 당구공'과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어떤 캐릭터'로 지구 종말을 만들 생각을 했겠는가? 이런 점이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 <남극일기>나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헨젤과 그레텔>에서 보여주었던 임필성 만의 예측불허다. 임필성이야말로 한국에서 <환상특급>류의 이야기를 가장 잘 다루는 감독이 아닌가 싶다. 그의 희소성을 (아직까지는) 지지한다.

 

*2012년 4월 1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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