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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건달>

k-movie review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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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후반에 시작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밑거름으로 2000년대엔 다양한 감독들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올드보이>의 박찬욱, <괴물>의 봉준호, <장화, 홍련>의 김지운 등은 상업 영화 안에서 작가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홍상수와 김기덕은 계속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갔다. 반면 <타짜>의 최동훈, <과속스캔들>의 강형철, <국가대표>의 김용화 등은 철저하게 계산된 상업 영화의 모범을 제시했다. 2000년대 한국 영화는 이들로 풍요로웠다.


그런데 2000년대 한국 영화엔 특이한 경향이 있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장르인 '조폭 코미디'가 엄청난 인기를 끈 것이다. 그런데 한국산 토종 장르인 조폭 코미디의 기원은 상당히 높이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1970년대에 많은 인기를 끌었던 한국 액션 영화부터 '깡패'는 중심에 있었다. 당시의 깡패 영화는 '도시의 그늘'이란 설정 정도만 할리우드 갱스터 장르에서 가져다가, 일본 협객 영화의 전통과 항일 주먹 같은 인물상을 연결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엔 간헐적으로만 만들어지던 깡패 영화는 1990년 <장군의 아들>이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면서 다시금 대중이 주목하는 장르가 된다. 이후 <게임의 법칙>, <비트>, <넘버 3> 등으로 이어지던 깡패 영화는 2001년 <친구>가 나타나면서 또 한 번 도약한다.


<친구>의 흥행에는 IMF가 만들어낸 시대의 정서가 서려 있다.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강한 힘을 가진 남성상 등의 코드는 당시 관객들을 자극했다. 여기서 변형하여 <친구>가 끌어낸 조폭 인물상과 현실과 완전히 괴리된 설정을 결합하여 만든 황당무계한 웃음으로 무장한 장르가 조폭 코미디다. 조진규 감독의 <조폭 마누라>는 그 시작이었다.


<신라의 달밤>, <가문의 영광> 시리즈, <달마야 놀자> 시리즈, <조폭 마누라> 시리즈, <두사부일체> 시리즈 등으로 이어지던 조폭 코미디는 2009년 <유감스러운 도시>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소멸하는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2011년 <가문의 영광 4 : 가문의 수난>이 의외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조폭 코미디는 다시 부활했고, 2012년 <가문의 영광 5 : 가문의 귀환>과 <박수건달>로 이어졌다.



깡패 조직의 이인자로서 승승장구하던 광호(박신양 분)는 자신의 자리를 노리던 태주(김정태 분)가 휘두른 칼을 손으로 막다가 손에 상처가 나면서 운명선이 바뀌게 된다. 신내림으로 인해 무당이 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광호. 계속 무당의 운명을 피하던 광호는 무당이 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낮에는 박수무당, 밤에는 건달이란 순탄치 않은 광호의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조폭 마누라>로 조폭 코미디 장르의 시작을 열었던 조진규 감독과 조폭 코미디의 흥행작 <달마야 놀자>의 주인공이었던 박신양이 뭉친 <박수건달>은 조폭 코미디의 문법에 충실하다. 앞선 조폭 코미디들이 학원(두사부일체), 종교(달마야 놀자), 결혼 제도(가문의 영광) 등 조폭과 함께 연상키 어려운 상황을 연결시켰던 것처럼 <박수건달>은 무속과 관계를 맺는다.


귀신이 보인다거나, 귀신들이 광호에게 한을 풀기 위해 매달린다는 설정은 차태현이 주연했던 <헬로우 고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귀신이란 소재를 재빠르게 차용한 <박수건달>은 여기에 웃음의 장치를 설치하고, 비교적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주는 배우들을 배치했다. 이들 요소가 꽤 효율적으로 기능하기에 <박수건달>은 여타 코미디 영화들이 주는 정도의 무난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박수건달>은 이전 조폭 코미디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한계를 노출한다. 귀신의 사연 등이 만들어낸 감동을 포장시켜 놓았지만 결국은 좋은 조폭과 나쁜 조폭으로 구별하는 이분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현실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조직인 조폭은 여전히 미화되었고, 그들을 희화시킴으로써 현실 세계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근래에 등장한 두 편의 조폭 코미디 영화 <가문의 영광 5 : 가문의 귀환>과 <박수건달>에서 조폭이 자신의 조직을 버리고 합법적인 제도권으로 들어온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사법제도가 가하는 처벌로 구현한 권선징악을 조금이나마 보여준 사실도 발전이라 생각한다.


깡패 영화에서 가장 고무적인 현상은 2012년에 등장한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 대중이 반응했다는 사실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한국 사회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은 채로 의도적으로 회피만 하던 조폭 코미디 장르와 다른 시각을 취하고 있다.


시대와 조응하는 자세를 지닌 <범죄와의 전쟁>은 할리우드 갱스터 장르의 마지막처럼 깡패 최형배(하정우 분)를 처단하면서, 헐리우드 갱스터 장르와는 다르게 권력에 붙어서 살아남는 다른 깡패 최익현(최민식 분)의 모습으로 우리 현대사의 얼룩을 조명했다. <친구> 이후 당연히 나아갔어야 하는 깡패와 한국 현대사의 연결이 10여 년의 유보를 거쳐 이제야 시작했다.


물론 <범죄와의 전쟁>이 성공했다고 해서 조폭 코미디가 바로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가문의 영광 5 : 가문의 귀환>도 어쨌든 백만 명 이상의 관객에게 선택을 받았다. 여기에 <박수건달>의 흥행 여부에 따라 조폭 코미디의 수명은 어느 정도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앞으로 조폭 코미디가 언제 죽을지, 혹은 얼마나 살아남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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