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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k-movie review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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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국내 극장가에서 종교 영화를 만난다는 게 그리 낯선 일은 아니다. 아마도 기점은 2009년이었을 것이다. 그해 개봉한 카르투지오 수도원 수도사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위대한 침묵>은 서울에서 단관 개봉만으로 7만 4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놀라운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소명>은 전국 관객 9만 7천여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들 종교 영화의 성공은 '종교 영화는 흥행이 힘들다'는 기존의 관념을 깨면서 이후 <사랑의 침묵> 같은 다큐멘터리, <믿음의 승부>나 <파이어 프루프-사랑의 도전> 같은 드라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회복>이나 <울지마 톤즈> 등의 많은 종교 영화가 개봉할 수 있는 물꼬를 터주었다.


이원식 감독의 영화 <누나>는 서울기독교영화제 사전제작지원에 당선되었던 작품이며, 2009년 개최된 서울기독교영화제 폐막작이었다. 종교 영화의 범주에서 찾는다면 드라마로 구성되었던 <믿음의 승부>와 유사한 성격의 영화다.


태생은 종교 영화지만 <누나>는 노골적으로 설교를 하지 않는다. 분명 종교의 상징물이 나오고, 종교적인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색채가 대단히 옅다. 그보다 <누나>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을 섬세하게 다루는, 자신과의 싸움에 대한 영화다.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어린 남동생이 물에 빠진 누나를 구하려다 함께 죽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이원식 감독은 "만약 동생은 죽고 누나만 살아남았다면, 그 누나는 아마 평생 죄책감에 힘들어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 <누나>는 감독의 이런 상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어린 시절 강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다 죽은 동생 때문에 죄책감을 안고 사는 윤희(성유리 분). 그때의 상처 탓에 여전히 비를 무서워한다. 윤희 때문에 아들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는 원망을 폭력으로 풀고, 그녀는 그것을 당연한 죗값이라 여기며 산다.


어느 날, 윤희 앞에 나타난 불량 학생 진호(이주승 분)는 그녀에게서 지갑과 선글라스를 빼앗는다. 지갑엔 윤희가 동생과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고, 선글라스는 아버지로부터 맞은 상처를 가리는 물건이다. 윤희의 지갑과 선글라스는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상처를 상징한다. 


진호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자식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어머니의 치료비가 간절하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정상적인 가족을 이루지 못하는 진호의 처지를 윤희는 알게 된다.


윤희와 진호는 삶의 생채기로 아프지만 어떤 내색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은 쓸모없는 존재라 생각할 뿐이다. 그런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가 닮았음을 깨닫는다. 모든 것에 냉소적이기만 했던 진호는 아버지에게 맞는 윤희를 도와주기 위해 그녀의 집에 뛰어든다. 그리고 살인으로 세상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진호를 말리기 위해 윤희는 그토록 무서워하던 비를 뚫고 힘겹게 나아간다. 그렇게 두 사람은 누나로서, 동생으로서 손을 내민다.


내면의 죄의식을 다룬 영화는 무수히 많다. <클리프행어>의 케이블 월커(실베스터 스탤론 분)는 동료의 애인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사선에서>의 대통령 경호원 프랭크 호리건(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은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막지 못했다는 후회로 괴로워한다. <인셉션>의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의 악몽을 이겨내기 위해선 다시금 예전과 같은 악몽과 마주해야 한다. 예전과 동일한 상황을 이겨냄으로써 자기 속의 어두운 자아를 넘어서야 한다. 앞서 언급한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죄의식을 물리쳤다.


<누나>의 극복 방식도 이들과 마찬가지다. 물론 <누나>는 다른 죄의식을 이겨내는 영화들과 다른, 종교적인 색채가 묻어있는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신의 도움에만 의존한 채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영화는 아니다. <누나>의 윤희는 자신의 힘으로 전진할 수 있을 만큼은 전진하고, 자신의 힘을 넘어선 영역에 대하여 기도한다. 


<누나>를 굳이 종교 영화의 틀에 묶기보단 서로의 상처를 극복하고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는 과정을 다룬 힐링 영화로 두고 싶다. <누나>는 비종교인이나, 타 종교인이 보기에 부담을 느낄 만한 수위의 종교 영화가 절대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치유에 충실한, 새해에 보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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