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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k-movie review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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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걸그룹 '카라'는 이젠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 잡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계형 아이돌'이란 별명으로 유명했었다. 그녀들이 본의 아니게 '생계형'으로 불렸던 이유는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했던 흔적들이 팬들에게 조금은 재미있는 모습으로 비춰진 때문이기도 했고, 동시에 살아남고자 하는 그녀들의 근성이 내포된 상징이기도 했다. 


이후로도 '생계형'은 여러 형태로 등장했었다. 그런데 영화 <간첩>은 '생계형' 간첩이란 이색적인 소재로 허를 찌른다. 대한민국에 잠입한 <간첩>속의 간첩들은 우리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는 간첩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공작을 해야 하는 간첩의 신분이지만 북한에서 보내오는 공작금은 예전에 끊어진 상태. 어떻게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기에 그들은 발바닥에 땀나도록 열심히 뛰어다닌다. 


비아그라를 밀수해서 파는 이나 소를 키우며 살아가는 이도 있고, 부동산 중개인으로 자리 잡은 이도 있다. 간첩으로서 정체성을 찾을만한 지령도 오랜 시간동안 없다. 먹고 사는 생계에 우선하다 보니 그들은 간첩의 상징인 '총'마저 어디에 두었는지 까먹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북한은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외무성부상을 암살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대한민국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간첩들은 어쩔 수 없이 암살 작전에 가담하게 되면서 그들의 운명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암살 작전이 진행되기까지의 <간첩>은 올해 흥행한 <도둑들>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 속한 '강탈 장르'(케이퍼 무비)의 범주에 있다. 영화는 가벼운 코미디로 인물과 주변을 소개하고, 그들이 모여 작전과 동시에 음모를 도모하는 구성까진 경쾌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간첩>은 거의 웃기질 않는 '진지한' 영화로 변모한다. 도심 속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은 무대만 달라졌을 뿐 북한을 다루었던 일련의 전쟁 영화들의 장면을 차갑게 재현시킨다. 


북한 소재의 <간첩>, 이데올로기 넘어 가족을 말했다


1980년대 이전의 한국 영화에서 다루어진 북한이란 소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었다. 대한민국의 체제우월성 정당성에 근거한 반공주의 시각 아니면, 한국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스스로의 죄책감과 슬픔을 인간애로 극복한다는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었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북한 관련 영화는 보다 전향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재검토하는 단계를 밟은 것이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단초가 되었다. 오로지 영화적인 재미와 장르적 형식에 우선했던 이들 영화는 이후에 북한을 다루는 영화들의 방향계로 작용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간첩>도 이런 방향계에 반응하고, 그 울타리에 속해있는 영화다. 온도차가 제법 심하게 느껴지리만치 코미디 요소와 전쟁 요소가 어지럽게 섞여있고, 사회적인 이슈들을 별 고민 없이 쉽사리 영화에 접붙였기에 민감하게 지적할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간첩>이 보여주고자 했던 '가족'에 대한 시각은 따뜻하게 다가온다. 우민호 감독은 전작 <파괴된 사나이>에서도 '가족'을 통해 파괴가 다시금 복원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파괴된 사나이>에선 지나치게 어두운 현실에 머무르며 가족을 이야기했었다면, <간첩>은 코믹한 요소를 통해 밝은 분위기를 다소 더했다.  


비록 <간첩>이 시대를 제대로 반영하지도,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넘어서지도 못했더라도 가족을 생각하는 감독의 목소리만큼은 의미 있게 볼 필요성이 있다. 어떤 종류의 치열한 생존 현장을 헤쳐 가는 자일지라도 선택의 최우선적인 기준은 결국은 가족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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