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영화 리뷰

<예언자>인간에서 야수로 변해가는 공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11.


두 번 접한 영화 <예언자>

같은 영화를 두 번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나는 <예언자>를 두 번 보았다. 물론 며칠 사이에 본 것은 아닌, 몇 달의 공백을 두고 보았다. 한 번은 2009 메가박스 유럽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했을 적에 보았고, 다른 한 번은 시사회를 통해서 보았다. 내가 두 번 본 이유가 <예언자>가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걸작이라 보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단지 한 걸음 더 <예언자>라는 영화에 접근하고 싶었던 개인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보지 못한, 찾지 못한 무엇인가를 위한 한 걸음.

처음에 <예언자>를 접했을 적에 사전에 아는 정보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이란 점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얼마나 대단한 영화냐 따지듯 본 점도 있었다. 그렇게 보았던 <예언자>는 당시 영화가 좋긴 하지만 약간 당황스럽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제목과 내용의 괴리감이었던 것 같다.

이후 종종 곱씹으면서 생각을 하던 이 작품을 시사회를 통해 다시 접하고 생각을 정리를 해보았다. 그리고 처음과는 내가 시각적으로 어떤 차이점을 두고 보았나 정리를 해보니 교육을 받으며 환경에 적응하는 자의 모습을 유심히 보았던 시각에서 주인공을 교육시키던 주위 사람을 좀 더 유심히 보았다는 차이점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 사람을 바꾸었나 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보던 흐름을 '무엇'에 좀 더 시각적 중심을 두게 되었던 것이다.


한 마리의 야수로 길러지는 공간

<예언자>는 한 남자의 성장담이자 성공기이다. 성장이나 성공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분야에서 나오지만, <예언자>는 아주 색다른 접근을 한다. 바로 교도소에서 성장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다룬 것. 낭만적인 모습이나 여유가 보이지 않는, 아주 차가운 시각으로 지켜본 어둡고, 탁한 교도소 공간 속 한 남자의 모습이다.

6년 형을 선고 받은 19살의 말리크(타하 라힘). 그는 소년원에서 교도소로 이동하고,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바뀐 공간에 들어온 그에겐 낡은 운동화 한 벌 대신 새로운 운동화가 쥐어진다. 하지만 새로 받은 운동화를 빼앗기며 그는 약육강식과 힘의 규칙이 지배하는 새로운 공간의 의미를 서서히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공간의 논리를 배우고, 충실히 수행한다.

냉혹한 힘의 논리, 학습을 통한 강자가 되는 방법, 사업과 조직 운영 등, 작은 사회인 교도소 안에서 그는 하나씩 배워나간다. 생존이 목적이며 자의든, 타의든간에 그는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다. 그리고 하나씩 배워감에 따라 그는 점점 강해지고, 그에 따른 부수적인 결과물들을 취해간다. 교화를 통해 사회에 다시 나오게 하는 목적의 교도소에서 그는 인간에서 짐승으로 만들어진다. 너무나도 잘 만들어진 한 명의 범죄자로.


예언자, 그리고 환영

1인칭과 관찰자의 시점을 오가며 냉정하게 지켜보던 영화 <예언자>. 이 영화는 성선설과 성악설, 그리고 성부선악설을 이야기하는 도덕적 질문에 대한 영화일까?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다.<예언자>는 인간과 환경을 던져주고 지켜보는 영화이니까. 하지만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볼 수도 있다. 바로 제목 <예언자>의 '예언자'라는 키워드를 통해 보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예언자의 의미는 간단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아주 중요한 요소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예언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의 해석은 스스로 성장을 통해 자신의 삶을 대비, 방어하는 자세, 그리고 공격하는 자세를 통해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개척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이것을 뒤집어 해석하면 말리크에게 영향을 주었던, 가르침을 주었던 자들이 말한 미래를 말리크는 충실히 만들어 낸다.

다르게 접근해 본다면 부분적으로 삽입이 되었던 환영과 연결이 되는데, 그 환영은 미래의 투영이기도 하며, 그의 자아 속 순수함과 죄책감의 발현이기도 하다. 그 환영이 사라졌을 때, 말리크는 어떤 내면적 갈등도 없는 하나의 완성된 범죄자가 된다. 그 내면의 잔류물이자 잔해 같았던 감정의 환영들이 사라진, 완벽한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범죄자. 그는 내면을 극복하고 운명을 개척한 예언자가 된 것이다.


사회가 원하는 인간은 이런 걸까 라는 의문이 든다

나는 이 작품이 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는지, 그리고 평론집단에서 왜 열렬한 지지를 받는지에 대한 깊은 의미는 모르겠다. 나의 영화적 지식과 시각의 부족때문에 말이다. 단지 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사회의 축소판으로 다루어진 교도소, 교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교도소가 한 남자를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지켜본 관찰의 시각이 마음에 들었다. 들어올 적과 나갈 적에 그의 소지품은 그대로이나, 너무나 달라져있는 말리크의 정신과 육체. 그리고 그는 다시 사회로 돌아온다. 한 명의 성장한 범죄자로서.

한 남자의 흥미로운 성장담 <예언자>. 수상이나 평론집단의 찬사 등을 떠나서 극장에서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154분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엔 힘이 있다.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이야기의 힘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극장문을 나서며 너무나 변해버린 한 남자의 모습에 허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사회가 원하는 인간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본다. 사회가 원하는 모습이 어쩌면 인간보다는 야수일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그런 결과물을 교도소에서 너무나 충실하게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교육이란 것을 통해서 말이다. 인간의 학습능력은 대단한 것이다를 새삼 보여준 영화다.

*2010년3월1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