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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자>묻지마 진행의 진수를 보여준 어이없는 영화

지난영화 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16.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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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화나게 만든 영화

화가 날 지경이다. 포스터의 촌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건만, 이건 수준을 논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엉망이다. 도대체 뭘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완성도 역시 놀라우리만치 한심한 수준이다. 왜 이런 감정을 느꼈는지 분노의 자판질로 이야기 해보겠다.


여러 군데서 차용한 소재, 그것을 엉망으로 연결한 구조

먼저 가정을 하나 해보겠다. '묻지마 살인'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 어떻게 구성을 해볼까 고민하다 '묻지마 살인'에 당한 희생자가 세상을 향한 분노의 복수극을 하는 이야기로 가보는 식으로 결정했다. 먼저 A와 B를 연결시켜준 동기사건의 모티브는 지존파 사건에서 가져온다. 그리고 A와 B를 이별시키게 만드는 사건은 이태원 버거킹 살인사건에서 가져온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복수에 불타는 남자는 <모범시민>에서 가져오고, 복수의 방식은 <쏘우>의 직쏘식 게임으로 가져온다.

이런 가정을 말한 이유는 <무법자>가 바로 이런 구조를 가진 영화이기 때문이다. 여러 모티브에서 소재를 가져온 게 뭐가 잘못이냐고? 맞다, 그건 잘못이 없다. 문제는 가져온 소재들을 엉망으로 연결을 시키기 때문이다. 밑도 끝도 없는 사건 전개에, 어이없는 연결 구조. 그간 실망을 던져준 한국형스릴러와는 조금은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줄 거란 기대감을 조금이나마 가졌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게 만들어주었다. 실망스러운 한국형스릴러의 연장선만 길게 이어준 작품이며, 그 연장선은 그 어느 것보다 굵고 질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최악으로 치닫는 이야기

부녀자들을 납치, 참혹하게 살해하던 '묻지마 살인'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맡은 강력반 형사 오정수(감우성)은 아무런 범행동기도 없고, 죄책감도 없는 범인들을 대하며 충격과 분노를 받는다. 사건 피해자 중 유일하게 생존한 여자 지현(이승민)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 오형사는 지현과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지현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7년 후, 지현을 기다리며 범죄와 싸우던 오형사에게 지현이 연락을 한다. 약속장소로 가던 오형사 앞에는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법과 정의는 범인들을 심판하지 못한다. 오형사는 그만의 심판을 시작한다.

앞서 말한 대로 <무법자>는 지존파 사건, 버거킹 살인사건, <모범시민>, <쏘우>가 연결된 영화다. 그러나 연결구조는 산만하고, 캐릭터들은 엉망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거론하거나, 사건에 분노하는 오형사를 다룰 때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영화는 이상하게 흘러간다.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관객에게 주거나, '묻지마 살인'에 대한 사법적 처벌에 대해 논하는 수준으로 보기엔 영화의 논의수준이 너무나 평면적이다. 그저 사건이 벌어질 뿐이고, 복수가 이루어질 뿐이다. 어떤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노력을 할 생각도 안 보인다. 영화는 진행될수록 내용을 위해 캐릭터들을 희생시키기만 할 뿐이다. 그 방법 역시 너무나 나쁘다. 인간에 대한 가치와 존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화가, 캐릭터를 대하는 방식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예의나 상식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지현을 다루는 방식은 비정상의 정점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몰입이 아닌, 과연 어디까지 가나 지켜보게 된다. 더 당황스러운 점은 코드의 변화다. 잔혹한 사건에 희생과 처벌을 논하던 중반부까지는 슬픔과 분노의 코드가 그나마 유지한다. 하지만 후반부에 스스로 처단을 내리는 무법자 모드로 들어가면서부터, 이야기는 어이없는 전개에 웃음이 나온다. 앞과는 너무 다른 장르적 변화를 취한다. 이런 진행에 관객은 과연 어디까지 캐릭터를 망가뜨리나 지켜보게 되며, 이야기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얼마나 최악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


대책이 없다

<무법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도 의문이며, 장르적으로도 모호하다. 표현방식도 촌스럽다. 특히 후반부에 나오는 화면분할과 편집은 수준 미달이며, 영화 앞부분과 뒷부분이 다를 정도로 느껴진다. 이야기 역시 복잡하게 꼬아서 발단을 만들었지만, 대단히 간단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해 버린다.

살인사건을 노모자이크로 생중계하는 TV, 그 현장에서 느긋하게 대기하는 경찰들(심지어 나가서 농담도 한다), 증거물 하나로 범인을 바로 추측한다거나 그걸 시인하는 범인 등의 영화 곳곳 요소들은 황당함을 던져주며,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 실소를 하게 해준다. 조연들은 병풍캐릭터 이거나 말도 안 되는 진행을 위한 역할일 뿐이다. 그 와중에 음악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깔려준다. 말 그대로 영화는 총체적인 '묻지마 진행'을 할 뿐이다. 이 모든 상황을 짊어진 캐릭터 오형사가 안타까웠으나, 그 역시 마지막 살인게임에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주는 설교를 남발하며 자신이 직쏘 박사인양 무리를 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그냥 대강 끝나버려라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한국영화를 응원해주고 싶지만 이건 아니다

<무법자>를 보고 나면 <모범시민>이나 <쏘우>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돌아보게 된다. 그 작품들이 명작이어서가 아니라, <무법자>의 완성도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 이하라 그런 것이다. <무법자>는 어려운 주제에 대해 힘있고 과감한 전개를 한 게 아닌, 욕심만 내다 헛발질만 한 영화다. 더욱 안쓰러운 건 이 영화가 <셔터 아일랜드>와 같은 주 개봉한다는 점이다. 무게감 있는 스릴러와 무게감 없는 스릴러가 한 주에 개봉하는 참담한 상황.

정말 웬만하면 한국영화는 응원해주고 싶은데, <무법자>는 정말 아니올시다 이다. 장점을 찾고 싶으나, 정말 한 가지도 안 보인다. 이 영화는 자격미달이다. 그 자격미달을 직접 스크린으로 확인하고픈 사람이라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런 용기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본다면 스스로에게 분노하게 될 것이다.

*난 올해의 한국영화 워스트를 <주문진>에서 <무법자>로 바꾼 상태이다. 사실 비슷한 클래스이지만, <주문진>은 그나마 풍경이라도 좋았다는 점에 점수를 준다. 이런 비교를 하는 것도 우습긴 하다. 오십 보 백 보인데 뭘 비교를 하는지.

*<무법자>의 흥미로운 점은 김철한-신재혁 감독 두 사람이 공동연출이란 점이다. 물론 네이버 소개에는 그렇게 나오고 다음에는 김철한 감독만 나온다. 보도자료에 감독소개도 없고, 포스터에 감독 이름도 안 나온 특이한 상황이다. 이 상황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실로 궁금하다.

*2010년3월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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