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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2010, 이창동)_미자의 시, 그리고 이창동의 영화 (스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6. 4.
 

내 인생 가장 뜨거운 순간 (시)

한강을 끼고 있는 경기도의 어느 작은 도시, 낡은 서민 아파트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미자. 그녀는 꽃 장식 모자부터 화사한 의상까지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은 엉뚱한 캐릭터다

 미자는 어느 날 동네 문화원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되며 난생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된다. 시상을 찾기 위해 그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을 주시하며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는 미자. 지금까지 봐왔던 모든 것들이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아 소녀처럼 설레 인다. 그러나,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찾아오면서 세상이 자신의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영화 <시
>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이창동의 작품세계가 정점에 달했다는 평론가스러운 입장과 무슨 이야기인지 너무나 심오하여 당최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반응, 또는 그냥 슬펐다는 반응 등 제각각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창동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시대의 피해자와 장애인 등 비주류의 인물들, 종교에 대한 물음과 회의 등을 거쳐 문학과 인생의 노년에 가 닿았다는 점일 것이다. 가장 압축미가 살아있는 문학 장르인 '시'를 쓰고자 하는 환갑 넘은 할머니 미자의 영화 속 며칠은 그랬다. 시를 쓰고자 하는 그 며칠 안에 미자의 모든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 압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진 후 그 자리에는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아녜스의 노래'라는 시 한 조각만이 남았다. 아, 그리고 꽃다발과 함께 그녀의 향기가.  

시와 인생

'시'는 모든 문학이 가 닿는 마지막에 있다(고들 한다). 꽃을 좋아하고 엉뚱한 소리를 잘 하는 할머니 미자의 인생 말미를 장식하게 될 것은 아마도 그녀가 '시'를 택하지만 않았더라면 알츠하이머라는 병마였을 것이다. 모든 기억을 잃게 되기 전에 그녀는 마지막으로 행할 수 있는 모든 구원과 용서를 행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구하게 된다. 손자의 죄를 대신해 갚고 슬픔을 감당하며 김노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등 그녀는 인생을 통해 깨달았던 모든 배움을 온통 쏟아놓는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놓지 않았던 것은 '시는 어떻게 해야 쓸 수 있어요?'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흡사 '인생이란 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요?'라는 물음과도 같게 들린다. 거기에 대한 시인의 대답은 바로 '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고 내가 시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요구하는 현답이 또 있을까. '시는 어디에나 있다'고.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란 건 어디에나 있지만 내가 부르고 찾고 구하기 전엔 먼저 나에게 와주지 않는다고.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 그것의 해답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을 기울여 봤을까? 설거지통 안에서도, 사과 한 쪽에서도 시와 인생을 발견할수 있는데 우리는 그 가치들을 도대체 어디에서 찾고 위안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미자와 그녀의 손자

미자가 노년의 깨달음을 몸소 보여주는 캐릭터라면 그녀의 딸과 철없는 손자는 그것에 무지하며 무관심하다는 것이 우리의 먹먹함을 더한다. 절대 악한 존재들이 아니고 최소한의 도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미자의 딸(영화의 말미에 아주 잠깐 등장한다)과 손자(이다윗)는 할머니의 고뇌에 전혀 동참하지 않는다. 아들을 늙은 어미에게 맡겨 놓고 지방에서 살고 있는 딸이나, 친구들과 몰려 다니며 엄한 짓이나 늘어놓고 과자 부셔 먹으며 TV보거나 동네 꼬마들과 훌라후프를 돌리며 히죽거리는 미자의 손자는 그녀의 질문에 관심이 없다. 살기에 급급해서, 혹은 아직 어려서 자신이 인생에 있어 어떠한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몰라서 그렇다는 건 그다지 근사한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미자가 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단지 잔소리로 가 닿는다. 그게 수많은 일상이 압축되어 나오는 '시'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손자의 귀를 열기 위해 미자는 무던히 애를 쓰지만 그녀의 손자는 '무지'의 상태다. 惡보다 더 무서운 無知.


미자를 둘러싼 세상

아이들의 불장난 때문에 긴급히 소집된 학부모들의 모임에서도 미자의 돌출 행동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아이들의 미래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서둘러 급한 불을 끄는 것이다. 돈을 마련해 합의를 보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이라고 믿는 그들에게 자식에 대한 분노나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데에 대한 죄책감,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 한 어린 소녀의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측은지심 따위의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다. 아니, 암묵적 묵인 아래 그 본질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그래서 미자는 그들과도 소통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작 미자를 당황하게 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육체의 배신이었다. 희생당한 소녀의 어머니를 만나러 간 미자는 길바닥에 떨어져 있던 살구를 보고 난 후 얼토당토 않은 화제로 소녀의 어머니에게 말을 걸고 뒤돌아 오고 만다. 더이상 의지대로 되지 않는 육체 때문에 미자는 더욱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김노인의 육체적 욕망에 너그러워졌던 이유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 바로 '시'라는 생각에 더욱더 마음이 급해졌을 것이다. 시를 쓰거나, 소통을 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명사'를 잃어버리고 난 후 그녀는 '동사'까지 잊어버리는 그 날이 오기 전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되었을 것이다.

윤정희와 이창동

배우 윤정희의 출연작을 본 건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소녀같은 말투와 몸짓, 그러면서도 고요하고 점잖은 눈빛 그대로가 바로 '미자'였다. 미자가 남긴 시와 윤정희, 이창동이 함께 만든 영화가 바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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