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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작가>훌륭한 각색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스릴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6. 1.


로버트 해리스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로만 폴란스키 감독

내가 <유령 작가>의 원작소설을 접했던 것은 재작년 즈음이 아닌가 싶다. 무엇을 볼까 기웃거리던 도서관 한 구석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고스트 라이터>(※<유령작가>는 출판사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2007년 <고스트 라이터>라는 제목으로 먼저 출판이 되었다). 작가 로버트 해리스의 유명세를 모르던 내가 그 책을 집었던 이유는 제목의 흥미로움 때문이었다.

소설을 원작을 한 <유령 작가>는 원작을 가진 다른 작품들처럼 두 가지 분류의 접근이 이루어 진다. 원작을 모른 채 순수하게 로만 폴란스키라는 거장 감독의 영화로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원작 소설과 비교를 통한 접근을 할 것 인가란 두 가지 접근. 로만 폴란스키의 필모를 전체적으로 논하면서 분석하기엔 내 자신의 영화적 지식이나 생각이 너무나 얕기에 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작품세계를 이야기 하지는 않으려 한다. 나 같은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작품을 비교하며 논하기엔 로만 폴란스키의 위치는 너무나 높다.

그래서 난 원작 소설을 읽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아주 가벼운 정도로 이 영화 자체에 대한 느낌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비록 너무 오래 전에 읽어 대강의 줄거리 외엔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전 영국 수상 아담 랭의 자서전을 맡게 된 유령 작가

<유령 작가>의 스토리는 정치인의 회고록에 대한 이야기다. 전 영국 수상 아담 랭(피어스 브로스넌)의 자서전을 맡게 된 유령 작가(이완 맥그리거). 그는 자서전에 대한 정리와 집필을 하는 과정에서 아담 랭의 배후에 숨겨진 정치적인 음모의 실마리를 보게 된다. 자살로 결론 지어진 전임 작가의 죽음은 단순한 자살이 아니었으며, 그 자신도 점점 위기에 빠지는 상황. 회고록에 담긴 단서들을 통해 유령 작가는 거대한 음모에 접근하게 된다.

이렇듯 <유령 작가>는 정치적인 음모를 다룬 스릴러 영화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속에 담긴 정치적인 음모가 과거형이거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소재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색채를 가진 점. 지금 현재의 정치와 연결을 시켜, 아담 랭이란 캐릭터가 토니 블레어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닌 가란 논란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영화에서 다룬 아담 랭이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인가, 아닌 가란 문제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전쟁의 조작을 행하는 배후 세력에 대한 이야기다. <유령 작가>는 어떤 세력에 의해서 세계전쟁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는지를 통해 역사의 뒷모습과 그늘을 담아보려 했다. 그 방법은 자서전이란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정리하는 책이지만, 정치인이란 신분 때문에 개인적일 수 없는 정치인의 자서전. 정치적인, 정책적인 성과에 대해 미화하거나 두둔하는 내용이 아닌, 정치인이 품었던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려 했던 유령작가는 아담 랭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진다. "왜 정치에 끌린 것인가?" . 이 질문은 아담 랭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한 질문이지만,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담 랭이 정치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그를 정치인으로 만들어 준 세력은 누구인가.


제대로 된 각색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

현실 정치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음모 이론으로 국제 권력을 재해석한 작품 <유령작가>. 하지만 난 원작 소설을 읽을 당시에 그다지 큰 즐거움이나 호기심을 가지진 못 했던 기억이다. 그냥 읽을 만 하구나 싶은 정도의 느낌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극장에서 만난 <유령 작가>는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른 수준이었다. 거장의 연출력과 멋진 배우들의 연기가 만나면서 영화는 밋밋한 소설에서 근사한 스릴러 영화로 재탄생 되었다. 원작에서 조금 산만하게 느껴지던 여러 캐릭터에 대한 접근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새롭게 바꾸어 오로지 유령 작가의 갈등 위주로 재구성했다. 아담 랭의 이야기가 아닌, 유령 작가의 이야기로.

이렇게 재구성된 영화를 통해 느껴지는 진정한 매력은 바로 각색의 매력이다. 소설이 가진 문자의 힘과 영화가 가진 영상의 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이 힘들의 차이점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소설이 가지기 힘든 긴박한 상황과 입체적인 감정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를 고전적인 스타일의 클래식한 스릴러로 보여준다. 요즘의 스릴러들이 보여주는 속도감이나 반전에 집착하는 모습에 경종을 울리 듯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이야기 한다. 중요한 것은 관객이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함께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나는 당신의 유령입니다

<유령 작가>에서 유령 작가가 아담 랭에게 자신을 처음 소개하는 장면에서 "나는 당신의 유령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관객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진정한 유령은 누구인지, 무엇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유령인지에 대한 해석. 그리고 이 느낌을 다시 제목으로 해석하면 또 다르게 다가온다. 'GHOST'라는 존재는 배후에 존재하며 조종하는 세력이고, 'WRITER'는 진실을 추구하는 세력이다. 중의적인 제목으로 해석이 가능한 제목의 <고스트 라이터>. 비록 원제는 <GHOST>이지만, 이것을 국내에 수입해서 출판한 출판사의 관계자가 꽤 센스가 좋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비록 이것이 나만의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정통적인 느낌의 스릴러를 경험하고 싶은 분에게 이 영화 <유령 작가>를 추천하고 싶다. <유령 작가>는 올해 초에 개봉한 <셔터 아일랜드>와 더불어 고전적 스타일에 흠뻑 빠지는 흥미로운 시간을 제공해 주는 영화다.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다 보니 부담감이나 무게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이완 맥그리거와 피어스 브로스넌, 거장의 영화에 출연한 수 많은 배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스릴러 감상이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동시대의 거장이 만든 작품을 함께 극장에서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 아닌가.

*영화에 대해 조금 관심을 가지는 분이라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 것이다. 그러나 <유령 작가>라는 영화를 그의 사생활과 연결시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나에겐 없다. 그냥 난 영화는 그 자체로 보고 해석을 하고, 느낌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

*2010년6월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