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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진다>공동경비구역 JSA를 축구로 비틀어 보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5. 28.


북한에도 붉은 악마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영화

어느덧 월드컵의 시즌이 다가왔다. 내가 제대로 된 생각이란 걸 가지고 월드컵을 지켜본 첫 기억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었고, 찾아서 보기 시작한 것이 1994년 미국 월드컵. 열광하면서 본 기억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최고의 월드컵이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해 준 것은 당연히 2002년 한일월드컵이다. 이 추억은 나만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가졌을 소중한 추억일 것이다.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는 그 추억이 비단 대한민국 만이 아닌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정확한 명칭일 테지만, 너무 기니 그냥 북한으로 적겠다)도 함께 공유한 추억이 아닐까 하는 상상에서 나온 영화다. 축구엔 국경이 없다고 하면서.

사실 남과 북을 영화로 담는다면 노골적인 정치적 성향으로 접근하는 방법과 정치색을 탈색시키면서 영화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가 과거의 성향이라면 후자는 최근의 성향. 최근의 성향에서도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가 달랐고, <간첩 리철진>과 <의형제>가 달랐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진다>은 그 작품들에 비해 더욱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남과 북이라는 우리나라 국민 만이 가지고 있고, 이해할 수 있는 특수성에다 축구공을 집어 넣은 것이다. 나는 이 특수성과 축구공의 결합을 사실 처음부터 좋은 시각으로 보기는 힘들었다. 월드컵 특수를 노린 기획형, 맞춤형 영화라는 성격이 너무 노골적이었던 것에서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 졸속으로 만들어진, 그저 <공동경비구역 JSA>를 축구 버전으로 변형시킨 코미디물이겠구나 싶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을 인정하면서 접근하는 스토리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가 붉은 물결을 이루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DMZ 북한 43GP 이다. 1분대장(이성재)는 남한 축구팀 멤버를 꿰찰 정도로 축구광이다. 그러던 어느 날 1분대는 우연한 기회에 대한민국 군인들과 마주치게 되고, 그들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의 월드컵 중계방송 주파수를 접하게 된다. 1분대는 목숨을 걸고 월드컵 청취를 시작한다.

<꿈은 이루어진다>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월드컵이 아닌, 남과 북의 월드컵에서 출발한다. 북한에도 우리처럼 같이 기뻐하고 환호했던 붉은 악마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은 꽤 발칙하면서도, 황당한 발상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발칙함과 황당함에 순수함을 결합시켰다. 정치적, 이념적인 색채보다는 남과 북을 순수하게 같은 민족과 같은 축구팬으로 만남을 시도한다 . 이런 민족적인 동질감에 축구라는 코드를 결합시킨 접근과 전개는 썩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비교적 무난하구나 싶은 정도의 영화적 재미와 몰입은 주었다.

물론 <꿈은 이루어진다>은 영화적 상상력에 기반한 전개를 하지만, 엄연히 현실적인 체제와 벽을 인정하는 모습이다. 아무리 스포츠엔 국경이 없다고는 하지만, 분명 공을 차는 자와 응원하는 자에겐 국경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 영화는 이것을 희화적으로 탈색 시켰을 뿐이지, 그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영화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선을 인정하면서도, 비교적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담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영화는 희화된 상황과 현실이 들려주는 마찰음이 적지 않게 들린다. 어쩌면 영화가 처음부터 가진 숙명과도 같았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란 영역에서 영화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디로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할지,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에 대한 망설임.


<공동경비구역 JSA>를 축구로 변형한 코미디 정도의 의미

<꿈은 이루어진다>는 분명 형편없는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조금 애정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아쉽다'로 평가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소재의 흥미로움과 황당함은 있지만, 그 전개의 진부함은 상당히 크다. 아주 깊은 이야기를 요구한 것은 분명 아니었지만, <꿈은 이루어진다>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축구로 변형한 코미디 외에 다른 새로운 전개가 안 보인다. 그저 김광석의 노래와 초코파이가 대한민국 응원가와 축구공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겉에서 맴도는 한계성은 바로 <꿈은 이루어진다>가 애초에 가진 기획형, 맞춤형 영화라는 한계에서 온 문제일 것이다. 기획에서 나온 힘은 영화의 이야기로 발전하지는 못 했다. 너무 단순하게 연결된 남과 북, 같은 민족, 그리고 축구. 이 요소들은 연결한 영화는 과거 유명했던 <동작 그만>의 북한 내무반 묘사에 머문 연결 정도이다.


솔직히 2002년 월드컵은 이제 식상스럽다

소재를 조금 더 멋지게 장르적으로 연결하지 못 한 그저 그런 수준의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 배우들의 비교적 선방한 듯한 연기의 장점은 있지만, 이야기 전개의 아쉬움도 제법 크기에 선뜻 추천하기엔 망설여진다.

이 기획영화가 월드컵 특수에서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나로서는 예단할 수 없다. 다만 이 영화가 2006년에 나왔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시점에서(게다가 현재는 남북이 천안함 사건으로 첨예하게 대립중인 상황이다) 이런 황당한 소재가 순수하게 받아 들여질 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2002년 월드컵을 스크린으로 또 만나는 것도 식상하긴 했다. 8년이나 지난 마당에 경기 모습을 다시 만나는 것은, 케이블에서 <이경규가 간다> 재방송을 보는 것만큼 지겨웠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추억도 자꾸 끄집어 내면 의미를 잃는 법이다.

★★

*2010년5월2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