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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영화리뷰

<귀>무서운 괴담 보단 기이한 기담에 가깝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5. 27.


청년필름이 내놓은 하이틴 호러 <귀>

2009년 한국 영화계에서 호러/공포 장르물은 그 명암이 아주 뚜렷했다. 한국 호러물의 대표적인 시리즈인 <여고괴담>의 최신작 <여고괴담 5 - 동반자살>은 그 제목처럼 시리즈를 껴안은 채 동반자살하고 말았으며, 또 다른 공포물이었던 <요가학원>은 가게 접으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처참한 실패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실패만이 아닌 성공도 보였는데 그것은 한국 공포물의 새로운 장르적 개척과 실험이 돋보인 <불신지옥>이 선보이며 희망을 이어 갔다는 사실. <불신지옥>이 살린 한국 공포물의 불씨를 이번에는 개성 있는 영화들을 제작해 온 청년필름이 이어 받았다. 메이저적인 성격보다는 마이너적인, 대형이 아닌 독립영화적인 성격을 강하게 보이는 영화 <귀>라는 작품으로.

청년필름이 선택한 영화 <귀>는 '하이틴 호러'를 표방한다. 쉽게 말해서 학원공포물. 그런데 이 선택은 한국의 공포물이란 장르에서 보자면 안전판 적인 성격이 강한 면이 있다. 기존의 <여고괴담>시리즈의 후광이나 <여고괴담>의 후광을 적절히 이용했던 <고사 - 피의 중간고사>등의 노선을 감안한다면 학원물, 여고생을 중심으로 다룬다는 점에선 일정한 안전판을 가지고 시작하려는 마음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기존의 메이저 자본으로 만들어진 학원공포물과는 다른 성격을 보여주겠다는 도전의 마음이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너희들과 다르다는 도전의 마음.


운명으로 연결 된 세 편의 이야기 <부르는 손>, <내 곁에 있어줘>, <귀소년>

<귀>의 무대는 학교다. 누구나 겪어온 학창생활이지만, 개방적이라기 보단 폐쇄적인 공간 학교. 이런 폐쇄성에서 출발하는 영화는 그 공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아이들의 고민과 갈등을 학원괴담이란 틀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이야기들의 중심적인 감정 흐름은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물론 세 번째 에피소드에선 남학생이 중심이지만, 그 이야기에도 여학생의 감정은 존재한다) 이루어진다. 여학생들이 겪는 사건은 운명의 결과를 만나는 여정이며, 자신이 택한 선택에 대한 결과를 만나기 위한 여정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 <부르는 손>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소녀의 이야기다. 혼자 버려진 고독감에서 나온 복수심을 다루는 방식에서 영화는 폐건물의 화장실이나 음악실, 그리고 어둠이 깔린 지하실 같은 고전적인 학원괴담의 코드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그런 고전 코드에 핸드폰 같은 현대의 요소를 결합시켜 공포감을 조성한 구성은 아주 좋았다면, 아쉬웠던 점은 지나치게 단순하게 사용한 깜짝 놀라는 장면의 연출이다. 놀이동산의 유령의 집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장면들.

두 번째 에피소드 <내 곁에 있어줘>는 절친했던 친구 사이를 갈라놓는 경쟁에 대한 이야기다. 욕심으로 인해 잡았던 손을 놓아버린 친구에 대한 이야기. 이 에피소드는 전체 에피소드 중 이야기 구성과 연기 등에서 가장 아쉬움이 컸던 에피소드다. <여고괴담 2 - 메멘토모리>의 잔영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에피소드 전체 중 소재의 작위성이 가장 심각한 수준이며, 그 작위성을 보완해야 할 배우들의 연기도 가장 떨어지는 호흡을 보여준다. 솔직히 칭찬할 구석을 찾기가 힘든 에피소드였다.
 
세 번째 에피소드 <귀소년>은 죽은 자를 볼 수 있는 소년이 겪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에피소드를 굉장히 기대했었는데, 그 이유는 여명준 감독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명준 감독이 전에 만든 단편<의리적무투>와 장편<도시락>을 재미있게 보았던 경험을 가졌던 지라, 무협을 다루던 감독이 만드는 공포는 어떨까 상당히 궁금했었는데, 그 결과는 비교적 선방했다 정도 이다. 사실 여명준 감독에겐 <귀>의 옷은 맞질 않아 보이는, 조금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은 그런 느낌이 난다. 다만, 보여주고자 하는 색깔은 너무 옅었지만 그 터치는 강렬했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기획과 조율은 아쉽지만, 선택과 집중은 좋았다

<귀>는 각각의 맛은 나름대로 흥미로운 맛이지만, 전체적으론 밋밋한 맛을 준다. 게다가 옴니버스 영화의 숙제와도 같은 에피소드 간 조율의 문제가 시원하지 않기에 텁텁한 맛이 남는다. 텁텁한 맛의 문제는 기획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귀>는 솔직히 무서운 성격의 영화라기 보단 기이한 성격의 영화다. 괴담 보단 기담에 가까운 성격.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공개 당시의 제목인 <환상기담 묘>가 개봉 제목인 <귀>보다 영화의 성격을 더욱 정확히 표현한 제목이다. 그런데 <귀>는 기이함과 무서움을 함께 가지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두 가지가 조화로운 느낌보단 부자연스럽게 섞인 느낌이다. 기획에서 좀 더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어야 했다.

<귀>가 기획 방향과 조율에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소재의 선택과 주어진 시간 내에서의 이야기 풀어가는 집중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어야 할 몫이다. 폐쇄성 강한 공간 학교에서 혼자 버려진, 도와주지 않는, 들어주지 않는, 알아주지 않는 고독으로 변형하여 이야기에 적용시킨 선택은 참신하긴 힘들지라도 진부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편 당 30분 정도 주어진 여건에서 나름대로 관객을 집중시키는 이야기 구성은 영화에서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다.


차세대 한국 영화의 유망주들을 만난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다

미국의 <환상특급>이나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 스타일의 이야기를 우리나라 <여고괴담>의 틀로 변형시킨 영화 <귀>. 학원 내에서의 무관심, 경쟁의 틀, 다가서지 못 하는 관계 등으로 표현된 고독이 얼마나 관객들에게 와 닿을지는 미지수다. 아니, 솔직히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흥행적인 요소는 안 보인다는게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귀>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차세대 유망주들을 만난다는 점이다. 청년필름 김조광수 감독의 기획 아래 뭉친 조은경, 홍동명, 여명준 감독은 한국영화의 새로운 힘들이다. 그리고 그 감독들의 에피소드에 등장한 김꽃비, 신지수, 김예리, 이민호, 최혜경 등은 한국 배우의 미래들이다. 이 차세대들을 만난다는 점이 어쩌면 <귀>가 가진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그렇기에 완성도나 만족도에서 부족함이 느껴지지만 <귀>를 나쁘게 보고 싶지는 않다.

★★☆

*2010년6월1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