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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춤 - 혁명의 낭만과 한인 후예들의 삶의 언저리

by 朱雀 2009. 11. 14.


쿠바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피델 카스트로, 체게베라, 지구상의 몇 안되는 미국과 극렬히 부딪치는 나라, 혁명, 살사, 브에나비스타쇼설클럽 등등


우리에게 ‘쿠바’는 혁명의 낭만과 이국적인 그 무언가의 언저리쯤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 쿠바에 한인들의 후예가 살고 있단다. 그들의 선조들은 체게베라와 함께 쿠바혁명에 앞장서기도 했다.


<시간의 춤>은 제목과 달리, 한인들의 후예의 삶을 통해 낯선 나라인 쿠바와 우리의 연결점을 찾는다. 그러나 그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을 통해 우리의 슬픈 역사를 되감게 하거나, 쿠바혁명의 낭만을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의 춤>이란 제목답게,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쿠바인’으로 살아가는 한인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100여년전 쿠바에 들어간 한인들이 약 300여명이 있다. 그들 중 대다수는 몇 년만 일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짓 광고에 속아 멕시코행 배를 탔고, 쿠바에 도착해서는 그것이 거짓말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에네껜 농장처럼 노예처럼 일했다. 그런 비참한 삶속에서도 그들은 언젠가 부자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으로 억척같이 살았다. 자식들을 키우고, 학교를 세워 우리말을 가르치고,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개중에는 체게베라의 혁명에 동참하는 이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주민 한인 1세) 대다수는 결국 그토록 원하던 고국땅을 밟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리고 그런 한 많은 한인 1세대의 이야기를 한인 3세들이 증언한다. 디모테오 김은 쿠바의 토속종교인 산테리아의 사제다. 그는 아버지가 불러준 <한반도가>(지금의 애국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우리에게 들려준다.


크리스티나 장 김은 체게베라와 함께 혁명정부의 고위직을 역임한 헤로니모 임의 아내로, 3년 전에 작고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람을 간직하고 있던 연애편지를 읽어주며 절절히 표현해낸다.


반면 뮤지션인 세실리오 박 김은 무려 네 명의 아내와 결혼한 사연을 거침없이 말한다. 비록 얼굴은 동양계이고, 한인의 피가 흐르지만, 그의 삶은 이미 한국인과 먼, 전형적인 라티노의 나쁜 남자의 여정을 걸었음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해낸다.


5세로 넘어가면, 그들의 삶은 우리와 정말 유리된다. 유명한 발레리나인 디아날리스 호 도밍게스는 ‘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키가 작아서 결국 발레단의 정식단원이 되지 못한 아픔은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별인 ‘춤’을 끝없이 사랑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기인 알리시아 데 라 캄파 박는 한인 5세지만 얼굴이 전형적인 동양계인 탓에 주변인으로서 많은 고민과 내적 갈등을 겪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얼굴만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그녀가 자신의 예술의 원천인 어머니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줄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시간의 춤>은 매우 독특한 영화다. 만약 송일곤 감독이 상업적인 흥행을 원했다면 좀 더 쉬운 길을 충분히 갈 수 있었다. 이젠 대중 소비되는 ‘체 게베라’의 이미지에 기댈수도 있었고, 쿠바에 살아가는 한인들의 삶과 아픔을 승화해 우리의 애국심에 호소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송일곤 감독은 그 두 가지 길을 굳이 마다하고 다른 길을 택한다. <시간의 춤>에서 선택한 한인들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는 ‘소재’다. 이는 영화 초반에 밝히지만,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나라로 여겨지는 ‘쿠바’와 우리와의 접점을 찾는 구실을 한다.


<시간의 춤>은 살짝 한인 1세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엔 쿠바인들의 열정적인 삶과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주력한다. 비록 얼굴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자신의 애정을 상대방에게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방식은 지극히 쿠바스러웠다.


<시간의 춤>은 꽤 재밌다. 그리고 웃기다. 가끔 눈시울이 붉어질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웃고 즐길 때가 많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낭만적이고 멋진 라틴 음악을 귀를 즐겁게 해주고,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하는 발레와 살사댄스는 보는 자체로 즐겁다.


‘이야기 하는 여자’로 극중 나레이션을 맡은 이하나의 목소리는 더할 수 없이 부드럽고, ‘편지 읽는 남자’ 장현성이 읽어주는 편지는 그야말로 멋지기 그지 없다.


‘인생은 노래처럼, 혁명은 춤처럼...쿠바의 낭만이 당신을 춤추게 한다’는 광고카피처럼 <시간의 춤>은 쿠바의 감성을 우리의 눈앞에 되살려 즐겁게 만들어준다. 결국 <시간의 춤>은 우리에겐 낯선 남미의 열정적인 삶을 진솔하게 전달한 그런 다큐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