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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영화리뷰

방자전 (2010, 김대우)_익살+시대정신 통찰의 섹시한 조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6. 23.
은밀한 色, 농익은 해학, 과감한 상상 | 방자, 춘향을 품다

몽룡을 따라간 청풍각에서 기생의 딸 춘향에게 한 눈에 반해 버린 몸종 방자. 도련님 또한 그녀를 눈여겨본다는 사실에 마음을 접으려 하지만, 자신을 하대하는 몽룡의 태도에 적개심으로 춘향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버린다. 춘향 역시 방자의 남자다움과 자상함에 흔들리고, 마침내 방자는 춘향을 품게 된다.

  하지만, 신분 상승의 꿈을 접을 수 없는 춘향은 몽룡이 과거 시험을 위해 한양으로 떠나기 전 정인 서약을 맺고, 방자는 이를 알면서도 춘향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장원 급제한 몽룡이 돌아와 춘향에게 더 큰 출세를 위해 모종의 거래를 제안하게 되는데…

* 은근한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사족

엑스트라들의 인생에 대한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백설공주를 사랑했던 네 번째 난장이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랄지, 이순신 장군이 '나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마라'하고 비장하게 유언을 남기는 동안에도 빗발치는 왜적의 화살을 막아내다 숨진 김아무개 병사랄지, 은행강도가 은행에 잠입해 난동을 부릴 때 인질로 잡혀 돈을 제 때 납부하지 못해 아픈 딸의 수술 일정을 맞추지 못한, 혹은 망나니 동생의 손가락을 사채업자에게 넘겨야 했던 한 가장의 이야기 등...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수많은 엑스트라들의 개인적 이야기가 얼마나 많던가. 하물며 <춘향전>에 언제나 양념처럼 등장했던 방자와 향단이의 경우에야...

그간 보아왔던 우리의 뇌리 속에 남아 있는 방자는 긴 댕기버리를 한번 꼬아 옆에 붙이고 왜소하고 마른 몸집에 앞니가 하나 빠져 있거나 얼굴에 큰 점이 있거나 오도방정스러운 언행을 하는 '종놈'이었다. 이는 모두 이몽룡의 인물됨과 성품과 지적인 풍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과장된 설정이었을 거다. 꽃같은 춘향이를 모시고 다니는 향단이는 또 어떻고. 촐싹거리기 이를 데 없고 눈이 쪽 째졌거나 얼굴엔 주근깨. 그리고 이런 향단이나 방자와 같은 인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주인공들이 쓰지 않는 사투리를 유독 쓴다는 점이다. 지역적 특성상 언제나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을 뒤집는 시도들이 90년대 후반부터 문학계를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단다. 이런 시도를 rewriting이라고 하는데 뭐 90년대부터만 있었겠나. 언제 어디서나 감추어진 인물의 사연을 궁금해 하는 호기심들은 있었을 테니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신데렐라언니>나 <쾌걸춘향> 와 같은 상상력들이 비단 최근에 번뜩 생겨난 것만은 아닐 거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아,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영화 <방자전>에서 주인공을 '섹시한 남성' 방자로 설정함으로써 더해지는 재미를 꽤 여러 면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약간 속을 알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상태를 지닌(사이코 같기도 한) 이몽룡보다는 물에 빠진 꽃신을 위해 계곡물에 뛰어드는 우직한 순정을 보일 줄 아는 순정남, 고기도 잘 굽고 싸움도 잘 하고 과묵하니, 뭔가 있어 보이는 이 남자, 방자!! 춘향이 빠져들만 하다.(물론 향단도 빠져들었지만 한낱 하녀의 외사랑은 가려서 보이지도 않는다. 처음에 방자가 자길 사랑했었다고 믿었던 그녀의 눈물은 이몽룡을 불편하게 한다;;) 춘향과 방자 사이에 사랑이 싹튼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원작에서처럼 서인 출신 춘향과 양반인 이몽룡이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처절한 신분제도라는 문제가 끼여들어 방해한다. 신분상승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끊임없이 이몽룡 주위를 맴도는 춘향과 그런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몸 던져 충성하는 게 전부인 방자의 모습은 당시 모순적인 신분제도가 사회 구석구석에 미쳤을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비유한다. 품계를 올리기 위해, 양반의 정실이 되기 위해 몽룡과 춘향이 꾸민 '쇼'에서 방자는 기꺼이 조연이 되는 길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순수한 감정이 아닌 앙금으로 결탁한 사이에서 몽룡의 욕망과 분노는 또다시 분열을 일으킨다. 결국 남은 것은 어린아이 상태로 돌아가버린 춘향과 방자가 읊조린 <사랑가> 뿐이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가공되어 밋밋한 '미담' <춘향전>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 고전을 들여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어디 <방자전> 뿐이랴, 양반네들 이기주의에 희생당해 기구한 운명을 살게 된 <향단전>, 모자랄 것 없이 자란 양반 자제의 숨겨진 정신분열을 다룬 <몽룡전>, 여성의 이중적 욕망을 파헤치는 또다른 <춘향전>, 동생을 해치면서까지 사랑에 모든 걸 쏟아부었던 <월매전>,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비운의 마조히스트 <변학도전>, 조선판 돈주앙 <마영감전> 등 수많은 외전들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 모든 걸 '이야기'와 '영화',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이 가능하게 한다.

아-주 간만에 흠뻑 빠져들었던 영화.



배우 이야기

배우 얘기 할 틈이 없었네.. ;; 세상에 김주혁! 그 옛날 <흐린 날에 쓴 편지>에 나왔던 신인시절에만 해도 '저런 몰개성한 외모로 언감생심 탤런트를!' 하고 적잖이 놀란 바 있었으나 이런 변강쇠+방자 버전의 캐릭터가 어울리는 섹시남으로 성장할 줄이야... 조여정은... 음... 내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그 굴곡, 표현할 길이 없어 패쓰하련다..ㅠㅠ 류승범의 섬뜩한 눈매도 영화의 후반부에 빛을 발하고, 맙소사! 송새벽은 대박일쎄! 어눌한 듯 할 말 다하면서 인생 신조 뚜렷한 변태 사또 역에 딱! 한눈에 봐도 싸이코같은... 최고의 명대사 '둑죠'... ㅋㅋ 방자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마영감 역의 오달수 역시 계속 웃음 던져주시던. 아... 모든 배우들이 완벽한 싱크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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