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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다리>박하선의 절박함은 보이나, 전수일의 치열함은 보이질 않는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6. 29.



영화 속에서 지역이란 무슨 의미일까

 영화 속에서 지역을 다룬다는 것이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홍보의 목적이다. 이야기의 배경으로 특정 지역을 보여줌으로 간접적인 홍보를 하는 것. 제작비를 대는 사람의 입장에선 홍보를 통해 투자 증대와 관광적인 효과를 노리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제작비 투자를 얻는다. 보통의 영화에서 이루어지는 투자의 개념으로 보는 지역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야기의 배경, 그 자체이다. 이야기에 충실한 접근으로 기억과 추억의 장소로서 지역을 다루는 것이다. 이것은 막연한 장소가 될 수도 있고, 그리움 등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막연하든, 뚜렷하든 간에 장소는 기억의 조각들이 맞추어지게 하는, 아니면 지금 만들어 지게 하는 공간적인 개념이 되는 것이다.

 영화 외적으로 다루어지는 홍보의 지역과 영화 내적으로서 다루어지는 이야기 속의 지역.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것은 각각의 요소들이 영화의 완성도에 조화스러운가의 문제다. 홍보를 목적으로 하든, 그냥 배경으로 나오든 이야기 속에서 지역이란 것은 자연스럽게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을 겪는 19살 인화의 이야기

<영도다리>의 배경은 제목 그대로 영도다리다. 그리고 사건의 소재는 미혼모의 출산이다. 이 둘의 연결고리는 그리움. 

 원치 않은 임신을 하여 출산과 동시에 아이를 입양기관에 넘긴 19살의 인화(박하선). 그녀에게 아기는 지우고 싶은 과거의 흔적이다. 그녀는 표정의 변화 없이 아기의 탯줄을 화장실에 버리고, 입양기관 서류에 서명한다. 미련 없이 과거를 지우고자 한 인화는 이런 단절이 다시 예전의 삶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남은 수술자국과 신체적인 변화, 그리고 일상 속에 남거나, 연상케 하는 아기의 흔적들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한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옳고 그름의 혼란에 빠지는 인화. 그녀는 과거를 부정함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했으나, 그것은 안정이 아닌 상실감만을 가져왔다. 인화는 영도다리에서 그리움을 알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선택임을 깨닫는다.


영도다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청소년 문제에 대한 접근

 <영도다리>는 원조교제나 폭력문제 등의 청소년 문제가 소재인 영화다. 그러나 영화의 시선은 청소년 문제에만 맞추어져 있지는 않다. 물론 19살 여학생의 출산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만, 그것은 엄마와 아기라는 관계를 이끌기 위한 차용에 가까운 정도. 그저 사건이 일어났다는 식의 전개다.

 감독이 주목한 것은 엄마와 아기의 관계다. 그 관계 속에서 과거를 부정하고 지우는 것이 아닌, 받아들이고 극복하면서 한 걸음 성장하는 인화의 성장 과정을 본다. 상실감에서 벗어나 희망을 가지게 하는 힘은 자신의 것을 찾고 싶어하는 마음. 자신의 것을 찾는 마음은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흔적을 찾고, 이해하는 마음.

 이런 이해의 과정은 전수일 감독 특유의 느린 전개로 이루어졌다. <영도다리>의 호흡은 상당히 길다. 긴 호흡 안에 존재하는 영화 속 인물들은 화면의 구성 요소에 가까울 정도로 투박하게 다루어 진다. 인물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닌, 인물이 카메라 앵글에 들어오는 듯한 느낌. 카메라 앵글에서 느껴지는 시각은 무관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차갑다. 감독은 마치 일상의 무관심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듯한 모습이다. 음악도 없고, 대사도 극히 제한적인 화면 속에 담긴 차가운 일상. 그 속에는 일상의 소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전수일 감독은 이런 일상적 모습의 영도다리를 통해 상실의 치유라는 희망 어린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듯 하다. 원조교제, 폭력, 가정파괴 등의 아픔이 있는 공간이지만 희망은 존재한다는 메시지. 그러나 감독의 이런 바람이 영화에 충분히 투영되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영화는 겉을 맴 돌 뿐, 주제 의식에 접근하는 방식이 너무나 단조롭고 평면적이다. 인화가 출산을 꼭 해야만 했던 이유도 불확실하며, 그녀가 이후 새로운 희망을 가지는 과정에서의 관찰도 부족하다. 그저 몇 가지 사건을 겪으니 갑자기 마음이 변한다는 전개다. 10개월 동안 아이를 무관심하게 보던 인화가, 단 며칠 동안에 마음이 바뀐다는 설정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영도다리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도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차라리 감독은 10개월의 임신 과정에 비중을 조금 더 두는 것이 어땠을까. 인화가 겪는 과정에 대한 설명과 이후 과정의 연결에 조금 충실했다면 이야기의 납득이 더 좋지 않았을까.


박하선의 절박함은 보이나, 전수일의 치열함은 보이질 않는다

 요즘 들어 박하선이란 배우를 포털 등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내가 드라마를 보질 않아 그녀가 어디에 출연하는지는 모르지만, 화제를 모은다는 것은 그만큼의 상업적인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도다리>는 그녀가 유명세를 타지 않았던, 일 거리가 없던 2009년에 찍은 영화다. 그래서인지 연기에 대한 절박함이 엿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치열한 고민은 박하선의 절박함 만큼의 무게감이 안 느껴진다. 

 박하선이란 배우의 절박함을 보고 싶다면 <영도다리>를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전수일 감독의 치열함을 찾는다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지 않다. 감독의 전작에서 이어진 것은 긴 호흡뿐이다. 주제의식의 치열함은 더욱 무뎌졌고, 지루하다. 전수일 감독은 낯선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내가 볼 적엔 <영도다리>는 감독이 영화에 대해 낯설어 하는 모습이다.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감독은 영도다리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다시금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영화인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주길 바란다.

★☆

*2010년7월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