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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이 더 잘 잔다>잿빛으로 채색된 막장 청춘들의 욕망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6. 21.



잿빛 환영의 불꽃 같은 산화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잿빛이 아닐까 싶다. 하얀 인생을 동경하던 검은 청춘들이 품었던 잿빛 욕망의 환영. 그 환영은 담배와 비슷하다. 강렬한 불꽃을 내며 타오르지만, 종국엔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사라지고 마는 운명. 마지막 불꽃을 태운 담배는 그 몸이 꺾이고, 부숴지며 재로 산화된다. 자신의 마지막 분신인 재를 쓸쓸히 흩날리면서.

잿빛 환영의 불꽃 같은 산화를 다루는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는 점점 나락으로 빠지는 자의 넋두리다. 담배 한 대를 피우며, 허공을 응시한 채 생각한다. 왜 나쁜 놈이 더 잘 잘까. 이런 의문을 던지면서 한 모금 빨아 본 담배. 그런데 착한 놈은 누구였지.


재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네 명의 남녀들이 꾼 잿빛 꿈

교통사고, 차에서 나오는 피를 흘리는 남자. 그가 든 돈 가방. 사고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피를 흘리는 남자는 담배 한 대를 물며 말한다. 씨발 뭐 타고 가냐.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의 도입부는 관객이 바로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사고 이유는 무엇이고, 돈 가방은 무엇인지, 그리고 남자는 어디를 향해 가는지. 황량한 길을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지켜 보는 카메라는 그를 쫓아가며 지난 1개월 간 그 남자가 겪은 지랄 같은 인생의 궤적을 복기한다.

윤성, 종길, 영조, 그리고 해경.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속 네 남녀는 정말 재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청춘들이다. 인생의 반전을 꿈 꾸는 윤성(김흥수). 사방에서 조여오는 현실의 굴레는 그에겐 너무나 가혹하다. 여동생인 해경(조안)은 자신을 이해하기 보단 쓰레기 취급할 뿐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꿈 꾼 반전은 캐나다로의 이민. 그러기엔 돈이 필요하지만, 돈은 없다. 은행이라도 털어야 한다.

윤성과 함께 은행을 터는 동료는 삼류 에로무비를 찍던 양아치 종길(오태경)과 여학생들에게 사기나 치던 사기꾼 영조(서장원)다. 그들에게 총은 인생 역전을 위한 필요 충분 조건이다. 돈이라는 꿈을 향해 맹목적으로 질주한 윤성, 종길, 영조. 그들 손에 주어진 총은 자신들을 삼류가 아닌, 화려한 인생으로 바꾸게 해 줄 수 있는 천국으로의 초대장. 그러나 그들은 달콤함에 취한 채, 불확실한 미래의 총구가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총이 가져다 준 운명의 대가가 무엇인지 몰랐던 그들. 세 남자에게 겨누어진 총구는 그들의 꿈을 화려한 원색이 아닌, 음울한 잿빛으로 바꾸어 버린다. 어둡고, 탁한 잿빛의 꿈으로.


거친 호흡이 주는 강렬함, 혹은 불친절함

잡힐 듯 한 꿈을 쫓는 네 명의 남자의 질주를 보여주는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의 호흡은 거칠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개를 통한 결론으로 가는 과정으로 만들지 않았다. 영화 속 장면과 배우들의 파편을 통해 상황의 내면을 보길 원했다. 친절하게 세세한 설명을 해준다 거나, 감정의 곡선을 완만하게 해주는 배려는 없다. 폭력과 피가 만드는 파멸의 느와르가 주는 차가움만이 있을 뿐이다.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의 차갑고도 거친 호흡은 강렬한 이미지, 아니면 불친절한 폭력의 망상이란 두 가지 양면성으로 갈릴 여지가 크다. 보는 사람의 시각과 꿈에 따라서. 그러나 나에겐 이 호흡이 너무나 불친절했다. 나로써는 숨이 턱 밑까지 차 올랐으니까.


당신의 호흡이 거칠다면 추천하고 싶다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의 잿빛에선 십여 년 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색깔이 떠오른다. 신선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아직까지도 그 어두운 색채를 잊지 못하게 만드는 잿빛 느와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아쉽지만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는 그 색채엔 못 미친다.

분명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는 한국에서 자주 다루어 지지 않는 느와르 장르를 다룬 면에서, 그것도 메이저가 아닌 저예산을 통해 이야기와 캐릭터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보라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꿈, 또는 <열혈남아>의 꿈을 이어가기엔 부족함이 크다. 권영철 감독이 꾼 꿈은 관객에게 그 꿈을 보여주기는 하나, 같이 느끼기엔 부족함이 있다.

꿈을 만든 권영철 감독에게 아쉬움이 조금 남았지만, 그 꿈 속을 질주하는 김흥수의 모습은 강렬하며, 인상적이다. 배우로서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이는 김흥수. 그가 다음 번에 어느 꿈을 질주할 지 궁금할 정도다.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를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 영화는 볼만한가 이다. 그럴까. 반대로 묻고 싶다. 당신은 살만한가. 당신이 살만하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추천할 만 하다. 우린 이 꼴로 산다를 외치는 막장 청춘들을 만나기 위해선 거친 호흡이 필수다. 잿빛 꿈이 주는 암울함은 결코 가볍지 않기에 말이다. 당신의 호흡이 거칠다면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를 극장에서 보길 추천한다.

★★☆

*2010년6월2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