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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의식하고 만든 것이 역력해서 아쉽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6. 23.



배우 구혜선이 아닌 감독 구혜선의 영화

 내가 기억하는 구혜선의 시작은 얼짱 출신 배우다. 이후 가족들이 즐겨 보던 드라마 <열아홉 순정>과 <왕과 나>에서 보여준 배우로서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구혜선의 전부. 아주 뛰어난 연기는 아니지만, 외모에 만족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던 배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구혜선이란 이름 앞에는 배우 말고도 다른 수식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수식어에 대해 조금 정리가 필요한 것 같아 보도자료의 구혜선의 이력을 읽어 보았다. 일러스트 픽션 <탱고> 출간, 일러스트 전시회 개최, 본인이 직접 작곡한 곡들로 채워진 <구혜선 소품집 -  숨> 발매. 구혜선은 CF모델이자, 소설가이며, 일러스트레이터 이자 작곡가인 것이다. 그러나 구혜선은 자신의 재능은 이 정도가 끝이 아니라는 듯 이번에는 영화감독으로 나섰다. <요술>이라는 작품으로.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고, 내면과 소통한다

 <요술>은 간단한 것을 복잡하게 만든 영화다. 한 남자가 자신의 과거와 닫힌 마음에 대해 화해를 시도하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야기의 소재 자체는 단순하다. 그러나 간단하지 않고, 복잡하다고 한 이유는 그것이 시간 속에 멈춘 기억이란 점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겪은 시간의 전부를 기억하진 못한다.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추억이 되는 것. <요술>은 그런 기억의 조각을 통해 이야기를 담는다. 

 기억의 조각들이 모였기에 <요술>은 불완전하다.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채, 어긋나버린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짝사랑의 관계. 영화는 그 짝사랑이 가져온 비극의 슬픔을 전하려 노력한다. '요술'이라는 악보가 세 남녀의 마음을 이어주듯, 음악과 영상을 통해서.

 그러나 <요술>은 실망감이 컸다. 영화가 어렵기 때문에. 그건 아니다. 물론 영화가 시간대를 변형시키고, 내면적인 감정의 세계를 끌어들인 점 등은 간단한 접근은 아니다. 그보다 내가 실망한 점은 관객에게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하지 못하다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관객을 의식했다는 어떨까. 구혜선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요술>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봐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본인이 영화가 어렵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요술>은 감독이 말한 어렵거나 쉽다는 문제가 부차적이다. 중요한 문제는 <요술>이 관객을 의식해서 일부러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 것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요술>은 이야기가 모호하고, 캐릭터에 대한 접근도 단조롭다. 영화는 이것을 만회하고자 과거와 현재를 섞어 놓은 전개를 하며 의식의 혼란스러움을 덧칠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을 삽입하는 등의 행위는 관객을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렇게 만드니 정말 어렵지, 복잡하지 하는 느낌이 스크린에 뚜렷하게 전해진다. 결국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고, 무엇을 느끼게 해 줄려고 했던 걸까. 남는 건 없었다. 그저 담배만 엄청 피우던 고등학생의 모습만이 남았을 뿐이다.


<요술>에서 구혜선이란 이름이 없었다면,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졌을까

 영화를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행위는 결코 비난할 일이 아니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천편일률적으로 한다는 것은 작품이 아닌, 물건을 만드는 일이다. 영화는 작품이다. 작품을 만들고 싶기에 상당 수 감독들은 독창적인 시각과 접근법을 제시하고, 관객과 그것의 소통이 가능한지 시험한다. 

 그러나 이런 독창적인 시각과 접근은 앞과 뒤 라는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어느 날 초보 감독이 난해한 영화를 들이 밀며, 이거 의미를 이해하겠어 하는 식은 아니다. 어려운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도 어려운 영화와 쉬운 영화 등 여러 난이도의 영화를 번갈아 작업하고, 작품들의 흐름들을 통해 메시지를 보여주려 한다. 그들이 결코 쉬운 소통의 영화를 만들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다른 시각과 접근을 하고 싶기에 평범함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술>은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니, 이런 흐름을 통해 접근하기는 곤란하다. 보여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구혜선 감독은 앞선 단편 영화 <유쾌한 도우미>에서 자신의 실험성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장편 데뷔작인 <요술>에선 관객과의 소통을 가장 먼저 보여 주었어야 했다.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전하는 그런 소통. 하지만 내가 만난 <요술>은 감독 스스로의 영화라는 느낌 뿐이다. 단편으로나 어울릴 영화를 장편으로 억지로 늘려버린 것을 본인 혼자 즐거워하는 모습. 솔직한 심정으로 이 영화에서 구혜선이란 이름을 삭제한 채로 세상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궁금할 정도다.


<요술>에서 보여준 부족함을 다음에는 만회하길 바란다

 지난 4월 한 시절 한국영화계의 중심이었던 곽지균 감독이 자살을 했다.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한 좌절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지금도 수 많은 감독들이 데뷔를 하고 싶으나 지원을 못 받고 있으며, 실패작 이후 재기를 하지 못한 채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고 있다. 이것이 우리 영화계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영화를 전문으로 배우거나, 현장에서 경험하지 않은 (심지어 배우로서 영화를 찍은 일도 없다) 구혜선이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정말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요술>은 부족하고 아쉬운 영화다. 조금 더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혼자 좋아서 찍은 영화라는 생각이다. 구혜선 감독은 주위의 도움과 고마움, 그리고 팬들의 관심에 대해 다음의 좋은 작품으로 꼭 보답했으면 한다. 정말 요술이라도 부려서 다음에는 관객과 소통하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한다. 아니, <요술>에서 보여준 소통법에 대해 자신이 있다면 진화된 방법을 보여주어도 상관없다. 다만, 이도 저도 아닌 소통을 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길 바란다. 자신의 이력을 채우는 영화가 아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기대한다.

★☆

*2010년6월2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