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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코와 마법 동화책>현실과 동화의 멋진 만남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7. 13.



현실과 동화라는 이종교배의 결과물인 <파코와 마법 동화책>

 현실적인 이야기와 동화적인 이야기 중에 어느 이야기가 만들기 더 쉬울까? 사실 쉬운 일은 없다가 정답일 것이다. 창작이란 어느 것이든 고통을 수반하는 작업이니까. 그렇다면 현실적인 요소와 동화적인 요소를 결합하는 작업은 어떨까? 개인적인 생각으론 현실과 동화로 한정시켜서 하는 작업보다 조금 더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동화 같은 현실의 이야기, 또는 현실 같은 동화의 이야기. 현실과 동화라는 완전히 분리되는 영역의 작업이 아닌, 서로의 영역이 중첩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무엇이든 간에 합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창작이란 작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보통의 경우에 반대적인 개념들을 섞는다는 것은 자칫 난해한 실험적인 작품이 나오거나, 아니면 유치한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현실과 동화는 너무나 다른 요소가 아닌가.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이런 우려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작품 자체의 평가를 받기 전에, '선입견'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 보이는 모습 그대로 해석하여 일본식의 과장 연기가 가득한 유치한 동화 풍의 영화일 것이라 선입견.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그런 유치함의 틀에 놓인 영화일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선입견은 단순한 심리적인 오류일 뿐이다.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단순히 현실과 동화를 결합한 무난한 작품이자 현실적인 고민이 묻어 있는 꽤나 근사한 이종교배의 산물이었다.


타인의 기억에 남는다는 것

 시간과 공간이 모호한 어느 병원. 오누키 노인은 뭐든지 자기 멋대로인 사람이다. 자수성가한 대기업 사장 출신인 그에게 타인들이란 그저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그런 오누키는 어느 날 우연히 파코를 알게 된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 하루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소녀 파코. 파코는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었던 자신의 생일에 영원히 머무르는 소녀다. 파코의 사연을 알게 된 후, 파코에게 무엇인가 해주고 싶은 오누키. 파코를 위해서, 그녀가 항상 읽는 동화 '개구리왕자 대 가재마왕'을 연극으로 만들어 보여주고자 결심한다.

 <파코와 마법 동화책>의 내용은 현실과 동화라는 두 가지 영역의 경계선 사이에 서있다. 타인의 기억에 남기를 거부 했던 한 남자가 모두의 기억에 남게 된다라는 영화의 이야기 속에서, 오누키와 파코가 만난다는 것은 현실과 동화의 만남이다. 오누키는 돈을 우선으로 하며 타인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현대 물질 사회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에 반해 때묻지 않고 편견 없이 사는 동화 같은 인물인 파코는 순수함의 상징이다. 정반대 캐릭터인 오누키와 파코의 만남은 오누키의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이자, 타인의 기억(또는 추억)에 대한 우회적인 서술의 과정이다. 다소 진부할지는 몰라도 진정성은 엿보이는 이야기.

 무엇보다 영화에서 유심히 볼 점은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기본적인 설정과 플롯은 동화 <크리스마스 캐롤>을 차용했다(원작 작품의 제목도 <미드썸머 캐롤: 개구리왕자와 가재마왕>이다). 영화 속 오누키 노인은 스크루지의 변형된 캐릭터.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는 타인에게 아무런 애도도 받지 못하던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슬퍼한다.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스크루지의 전개와는 조금 다르지만 본질적인 모습은 같다. 영화는 파코의 기억 속에 남고 싶은 오누키의 모습을 통해 타인에게 기억된다는 것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다른 사람의 기억에 살아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살아있음이라 말한다. 때로는 유쾌한 방법으로, 때로는 슬픈 방법을 통해서.


여러 동화의 요소들을 차용하여 재구성한 내용, 여기에 더해진 영화적인 표현 방법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한 인물의 반성과 자기 인생에 대한 치유라는 점에선 <크리스마스 캐롤>을 기본 축으로 했지만, 다른 동화의 요소들 역시 훌륭하게 차용되었다. 오누키가 스크루지를 모델로 했다면, 파코는 피터팬과 신데렐라로 대변되는 캐릭터다(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동화들이기도 하다). 7살 생일에 머물러 있는 파코의 모습에선 네버랜드에서 시간이 멈춘 아이들의 모습이 나타나며, 하루면 기억이 사라진다는 설정에선 12시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의 안타까움이 남아 있다.

 이렇듯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여러 동화의 요소들을 차용하여, 흥미롭게 재구성하였다. 그리고 동화적 요소들을 재구성한 내용이 스크린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파코의 동화책을 읽는 모습에서 앨리스가 연상되며, 병원의 모습은 원더랜드가 가진 기이함과 비슷하다. 

 <불량공주 모모코>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등으로 국내에서도 상당히 인지도가 높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그의 영화적인 재능은 이번 영화 <파코와 마법 동화책>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감독은 실사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CG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이야기를 풀어갔다. 

 실재와 CG를 교차시킨 연출과 편집. 감독은 원작이었던 연극과 자신이 만드는 영화가 어떤 점에서 다르고, 어떻게 보여주는 게 효과적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영화라는 장르가 가지는 시공간의 자유로움과 여기에 접목된 기술적인 접근이 가져다 주는 표현력의 상승. 이것들은 책이나 연극이 보여줄 수 없는, 영화라는 장르가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그 중 백미는 오누키가 파코를 위해 만든 연극 <개구리왕자 대 가재마왕> 장면. 현실과 동화가 자유로이 오가며, 실사와 CG의 효과적인 퓨젼 영상을 보여주는 연극 장면은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또한 감독의 고민이 날카롭게 서려 있는 흔적이기도 하다.


나카미사 테츠야 감독의 장점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다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근사하게 동화들을 녹여내어 만들어낸, 한 편의 새로운 멋진 동화다. 자유로운 창작적 접근을 좋아하는 분, 또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표현 방식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필히 극장에서 보아야 할 작품이다. 덤으로 파코 역을 맡은 아야카 윌슨의 연기는 놓치기엔 아까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이다. 어쩌면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아야카 윌슨을 위한 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니까.

 하지만 과장된 연기나 과장된 상황 설정을 거부하는 분이거나 현실과 동화를 결합한 스토리텔링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분이라면 피하시길 권장한다. 다만 선입견으로 작품을 저평가하거나 외면하는 분은 좋은 영화 한 편을 놓치는 거라 말해주고 싶다. <파코와 마법 동화책>은 선뜻 펴기는 힘든 책이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너무나 술술 잘 읽혀지는 그런 책과 같다. 처음만 힘들 뿐이다.

★★★

*2010년7월2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