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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제자>낮은 수준의 블록버스터 공식만을 너무나 충실하게 외운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7. 17.



심각함이 대세를 이뤘던 2000년대 헐리우드의 판타지 영화와 슈퍼 히어로 영화들

 새로운 세기가 시작하고 1년이 지났던 2001년은 판타지 영화 장르에서 기념비적인 해가 아닐까 싶다. 2001년은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가 공개되었던 해다. <해리 포터>시리즈와 <반지의 제왕>시리즈는 흥행이나 비평으로 놀라운 성과를 거둔 작품이다. 거기에 판타지 영화 장르에 있어서 몇 가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었던 중요한 영화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제시한 패러다임 중 하나는 이전까지 기술적인 문제로 구현하지 못했던 소설의 상상력을 발전된 CG를 통해 영화로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바꿔 말하면 영화 표현의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다(특히 <반지의 제왕>에서의 골룸은 혁명적인 CG캐릭터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영화 소재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것은 다양한 소설의 흡수와 이전과는 다른 '심각한' 판타지를 주류로 만든 점이다. 과거 판타지 작품들이 꿈과 모험을 단편적으로 이야기했었다면, 새로운 판타지 영화들은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캐릭터와 스토리를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이야기를 단지 신화적으로만 읽는 것이 아닌, 현실의 인간들이 가지는 고민과 성격을 작품에 변형하여 이식한 것(물론 원작 소설들이 그런 요소를 가졌기에 가능했다)이다. 이런 '심각한 영화'라는 흐름은 헐리우드의 2000년대 트렌드 중 하나였던 슈퍼 히어로 영화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심각한 슈퍼 히어로 영화는 <다크 나이트>라는 차원이 다른 히어로 영화로 정점에 다다랐다. 그리고 심각한 판타지 영화의 정점은 <해리 포터>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2 부를 통해 달려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헐리우드는 지난 10년의 트렌드였던 심각한 풍조의 영화는 새로운 10년에도 유행할 꺼라 생각했을까? 헐리우드의 스튜디오들은 이 질문에 다소 부정적이었던 것 같다. 관객들이 80년대 스필버그 사단이 만들었던 류의 영화를 다시 찾을 거라 예상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이제는 관객들이 심각한 것 보다는 조금 편하게 보는 영화들을 찾을 것이라 예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2010년에 등장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이전과는 다른 색깔의 작품들이 선보였다. <베스트 키드>로 대표되는 복고풍 영화는 노골적으로 80년대를 그리워 했고, <A-특공대>로 대표되는 단순한 영화들은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뇌활동 중지를 요구했다. 그리고 새로운 판타지 영화였던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은 심각함을 버렸다.


제리 브룩하이머와 존 터틀터웁이 만든 새로운 마법사들의 전쟁

 <마법사의 제자>는 디즈니가 심각함을 덜어내 버린 가벼운 판타지 영화다. 흥미로운 것은 <마법사의 제자>에는 새로운 10년을 향한 디즈니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영광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디즈니의 마음이다. 픽사의 CG애니메이션에 의존하지 않았던, 자신들만의 영화로 흥행시장을 주도했던 시절에 대해 그리워 하는 디즈니의 마음.

 그래서인지 <마법사의 제자>는 과거 디즈니의 전설적인 히트 작품인 <판타지아>에서 출발했다. <판타지아>의 에피소드였던 <마법사의 제자>를 차용한 것. 디즈니는 자사의 전설을 스스로 차용하여 새로운 <마법사의 제자>를 만드는 과감한 결단을 했다. 

 자사의 전설까지 차용한 디즈니는 볼거리를 만들기 위해 아낌 없이 돈을 썼다. 뉴욕의 독수리 조형물을 CG로 살아나게 했고, 스포츠 카를 타고 도심을 질주하며 마법 대결을 펼친다. 심지어 차이나타운에서 용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디즈니는 이런 모든 것들을 만들어 내는 지휘자로 최고의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를 선택했다. <캐러비안의 해적>시리즈를 통해 액션 어드벤처 영화의 모든 흥행 성적을 바꿔 버린 제리 브룩하이머야 말로 새로운 디즈니 표 판타지 영화를 만들어 내는 데 사실 적임자이기도 했다. <캐러비안의 해적>시리즈는 헐리우드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험활극의 전형을 제시했었으니 말이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디즈니의 야심에 걸맞는 카드로 검증된 흥행 감독 존 터틀터웁과 니콜라스 케이지를 내세웠다.


심각함을 덜어내려다 우습게 되어버린 이야기

 그러나 제리 브룩하이머와 존 터틀터웁 조합은 가벼움만을 추구하다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영화는 새로운 신세대의 마법사가 주는 개성이나 신구세대의 충돌 등이 주는 여러 가지 설정의 재미는 있다.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는 당장의 데이트가 중요하며, 세상을 정복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팬에게 싸인해 주는 것이 중요한 신세대 마법사들. 그리고 마법과 물리학을 연결한 시도 등은 아이디어적으로 흥미롭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소재의 흥미로움을 스토리의 재미로 엮어내진 못했다. 너무나 충실하게 낮은 수준의 블록버스터 공식만을 외울 뿐이었다. 오마쥬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판타지아>의 에피소드나, <인디아나 존스>, <백 투 더 퓨쳐>, <드래곤볼>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은 멋진 삽입이란 생각보다는 부족한 상상력이 빚은 아이디어 무단 인출로 보일 정도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세상을 구하는 장면에서의 속성모드로 강해진 주인공과 과학에 기댄 우연 등은 너무 심하게 가벼움을 추구하다 우습게 보일 지경. 이런 가벼움은 다음 장면까지 이어지면서 그 끝을 모르게 질주한다. 

 이 질주의 모습은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의 그것과 흡사하다. 비슷한 수준의 재미와 CG, 그리고 배우(두 편 모두 배우의 캐스팅이 화려하다). 엔딩의 마구잡이도 비슷하며, 감독들이 전작에 훨씬 못 미치는 영화를 만들어낸 사실까지 비슷하다. 심지어 대상 연령층이 미묘하다는 사실마저 비슷하다. 어른이 보아야 할지, 어린이가 보아야 할지 미묘한 수준의 이야기. 물론 큰 기대 없이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무장하고 판타지를 즐기고 싶은 분이라면 <마법사의 제자>는 괜찮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완성도 문제를 떠나, 성인에게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난이도의 이야기다. 아무리 블록버스터에서 이유를 안 따진다고 해도, <마법사의 제자>는 너무 낮은 수준의 공식에 충실한 영화다.


2010년 디즈니의 명암, 앞으로의 선택이 궁금하다

 2010년의 디즈니는 명암이 뚜렷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픽사의 CG 애니메이션만이 아닌 자신들의 색깔을 가진 작품들을 만들기 위해 <알리딘>을 차용했던 <페르시아의 왕자>는 시장에서 냉정한 실패로 가고 있으며, <판타지아>를 차용했던 <마법사의 제자> 역시 전망이 밝지 않다. 게다가 셀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노렸던 <공주와 개구리>는 예전 셀애니메이션의 반응과는 거리가 먼 반응이었다. 

 이와 반대로 픽사 작품인 <토이스토리 3>는 흥행에서 역대 픽사 작품 중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3D영화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세계 수익 10억불의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이어지는 3D라인업인 <스텝 업 3D>나 <트론 : 새로운 시작>은 3D 호황에 힘입어 전망이 밝다.

과거와는 달라지는 시장의 흐름 속에 놓인 디즈니. 다시 도전할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 앞으로의 선택이 무엇일지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다만 다음에는 조금 더 높은 수준의 블록버스터 공식을 외웠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볼 뿐이다.

*엔딩크레딧 후 그다지 중요한 장면은 아니지만 쿠키 영상이 있다.

*지난 번 <페르시아의 왕자> 언론시사회 당시에 <마법사의 제자>의 초반부 가게 장면과 중반 화장실 장면을 10여분 보여주었다. 그런데 가게 장면은 그 당시 장면과 개봉 버전이 달랐다. 개봉 버전이 편집을 해서 장면이 적어진 것. 그런데 개인적으론 심각해 보이는 장면들을 전부 자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솔직히 삭제장면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의 대사가 살짝 멋지긴 했는데 아쉽다.

★★

*2010년7월2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