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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지>원작을 모른다면 흥미롭지만, 원작을 안다면 실망스럽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8. 11.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 <카이지>

 아마 당신이 처음으로 <카이지>의 원작 만화 작가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을 접한다면 여러모로 놀라게 될 것이다. 우선 독특하다 못해 괴상하다는 느낌마저 주는 그림체에 놀라게 되고, 작가가 다루는 소재에 놀라게 되며, 소재들을 묶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에 놀라게 된다. 

 그가 다루는 소재의 공통점은 내기, 즉 게임이다. 여기엔 일반적인 화투나 카드, 마작 등 익히 알려진 겜블도 해당되며, 기상천외한 룰의 게임도 등장한다. 게임의 종류만큼 다양한 것은 내기의 댓가. 단순히 돈만이 아닌 인생과 생명을 담보로 한 게임이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군상들의 생명을 건 도박.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택한 선택. 거기서 갈리는 승패. 이것이 후쿠모토 노부유키 만화의 핵심적인 스토리 구성이자, 특징이다.

 그런데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만화는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자랑하지만,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 등 다른 장르로 만들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다른 장르로 이식이 늦었던 이유는 인물의 강한 개성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독백적인 구성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도박 등 겜블 스타일 소재를 주로 다루는 만큼 인물의 내면적인 심리 변화를 독백으로 주로 처리하는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특징은 영화나 드라마에선 상당한 단점으로 작용한다. 보통의 도박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는 배우의 표정과 작은 행동을 통해 전체적인 판을 보여주다가 마지막 역전 등이 벌어진 후 상황에 대한 복기 정도를 대사로 전달하는 방식인데,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만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인물의 생각을 직접적인 독백으로 풀어가는 방식을 취한다. 연출이나 연기로 전해주는 것이 아닌, 대사를 통한 심리 상태의 직접적인 전달은 영상으로 전하는 매체가 사용하기엔 부적절한 면이 큰 방법. 영상매체들은 이런 점들이 부적절했기에 상당한 기간 다루는 것을 주저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작 애니메이션 <투패전설 아카기>는 후쿠모토 노부유키를 재발견한 작품이었다. 2005년 일본에서 심야 방영한 이 작품은 심야 시간대로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던 작품으로,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 <천>에 조연으로 등장한 아카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스토리였다. 이런 성공 후 일본 애니메이션 계는 2007년 <카이지>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고(일본에서는 <역경무뢰 카이지>로 방영), 가능성을 확인한 영화계는 2009년 영화로 <카이지>를 만들게 되었다.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이야기와 빠른 전개

 <카이지>는 29살 이토 카이지(후지와라 타츠야)가 사채 빚을 갚기 위해 게임이 벌어지는 크루즈선에 올라 운명의 게임을 한다는 내용이 기본 줄거리다. '하루 밤의 게임으로 빌린 돈 이상의 큰 돈을 손에 넣는 기회'를 제공하는 '희망'이란 이름의 크루즈선. 그 배는 강자들이 약자들에게 돈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자, 기회엔 철저한 대가를 요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삶이란 대가를 요구하며 즐기는 유희.

 후쿠모토 노부유키는 사회적 패배자 또는 방관자들을 통해 일본사회의 니트족이나 프리터족을 강하게 비판한다. 미래에 대해 아무런 희망도 없이, 희생도 없이 살아가는 나태함에 대한 비판. 로마 검투사의 결투를 연상하게 하는 게임의 모습으로 그들을 대결의 장으로 몰고 가며 작가는 말한다. "강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게임과 대결 무대를 통해 나름대로의 사회 비판을 가했던 원작을 비교적 충실하게 영화로 옮긴 <카이지>. 그러나 만화라는 장르에서 영화로 형식이 바뀌면서 '친절한 설명'이란 표면적인 변화가 보였다.

 친절한 설명은 원작이 다룬 소재들이 주로 일정한 룰을 가진 게임이란 점에서 온 특징이다. 영화는 조금은 과잉스러운 친절이라 느낄 정도로 원작의 독백을 그대로 넣어 내면의 변화를 담아내려 했다. 전개의 호흡이 다소 길었던 원작에 과감히 칼을 대어 빠른 전개로 바꾸었다. 상영시간 내 일정한 수준의 이해를 관객이 갖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 충실 하려 했다.


흥미로움은 있으나, 긴장감은 사라졌다

 여타 다른 원작을 가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카이지> 역시 원작의 그늘이란 운명을 가졌다. 원작의 어떤 점을 취하고, 버릴 것인가가 영화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운명. 이해하기 쉽게 다시 풀어 쓴 이야기와 빠른 전개는 표면적인 특징이다. 이해를 위해 독백을 넣어 장황한 설명을 했고, 빠른 전개를 위해 게임의 과정을 축소시켰다. 남성 캐릭터만이 등장하는 원작이 너무 딱딱하다고 느꼈는지,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켜 극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원작과의 차별을 위한 버림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변화들이다.

 원작에서 취함의 과정에서 가져와야 했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절박'이다. 선택을 통해 이루어지는 절박함이란 공감대. 자신의 삶과 생명을 담보로 한 게임의 절박함. 그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확률적으로, 분석적으로 행동하는 주인공. 이토 카이지가 게임 속에서 부딪히며, 권력자들에게 저항하는 과정 속에서 성장하며 그가 '게임'의 '진정한 룰'을 알아가는 것. 이것이 <카이지>의 매력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매력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 분명 원작을 모른다면 흥미롭게 볼 만한 요소들이 있다. 가위 바위 보 게임, 고층빌딩 철골 건너기, E카드 게임 등은 처음 본다면 그 새로움 자체에 흥미가 간다. 그러나 흥미를 넘어선 긴장과 절박으로 가기엔 영화는 너무나 빈약하다. 원작의 탄탄한 구성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볼만한 정도. 바꾸어 말하면 원작을 쫓기에 급급했다. 긴장감은 사라졌고, 인물들은 밋밋하다. 그저 처음 보는 흥미로움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원작을 모른다면 흥미롭지만, 원작을 안다면 실망스러울 영화

 근래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들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작가가 다루는 '도박'의 속성이 현대 사회의 흐름과 닿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도의 산업화와 자본주의로 인해 벌어진 빈부격차. 돈이 너무나 많아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 있는 반면에, 밑바닥에서 일확천금을 꿈 꾸는 자들도 있다. 일확천금을 위한 하나의 방편은 바로 도박. 도박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부류는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 속에서 근간을 이루는 인물들이다. 그는 도박이란 방법으로 '돈'의 힘을 추구하는 인간을 탐구하고 욕망을 분출시킨다.

 만화 <카이지>는 그런 인간의 속성을 멋지게 들여다 본 탐구영역이다. 그러나 영화는 원작을 모르는 분들이라면 호기심 정도에 볼 만 하지만, 원작을 이미 본 사람은 너무나 밋밋한 전개에 상당한 실망감을 맛 볼 가능성이 크다.

 일본에서는 <카이지>가 흥행적으로 성공해서 2011년 속편이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다음 편에선 이야기와 캐릭터에 충분한 보강을 해서 작품이 만들어 졌으면 한다. 지금 정도로 이후 이야기를 담는다면 실망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가뜩 에나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들은 뒤로 갈수록 힘이 딸리는 약점이 있는데, 원작의 그늘에만 안주하다간 제대로 망할 수 있다.

★★

*2010년8월1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