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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영화 리뷰

<제로 포커스>동의할 수 없는 그들만의 용서와 화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25.


흥미로움을 가지고 보았으나 불쾌감만 든 영화

<제로 포커스>를 보고 심한 불쾌감이 들었다. 영화의 재미 유무 때문이 아니다. <제로 포커스>의 밑바탕에 깔린 피해의식과 그들만의 용서를 이야기하는 화법이 기분 나빠서 였다. 왜 이런 결과가 왔을까?

분명 <제로 포커스>는 영화를 보기 전에 흥미로운 면이 제법 많이 보이던 영화였다. 예고편의 임팩트가 꽤 좋았으며, 감독, 배우들이 꽤 근사한 편이라 기대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진 추가적인 흥미요소는 일본의 유명작가인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작품이란 점. 이런 점들은 근사한 스토리텔링을 갖춘 한 편의 멋진 추리물을 보여줄 거란 기대감을 들게 해주는 요소들이었다.


실종된 한 남자를 찾는 과정, 그것을 통한 시대적 상황 그려보기

<제로 포커스>는 한 남자의 실종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실종된 남자는 데이코(히로스에 료코)와 결혼식을 올린 직후 이전 근무지 가나자와로 출장을 떠난 남편 겐이치(니시지마 히데토시). 일주일 후 돌아오기로 한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데이코는 그를 찾아 가나자와로 떠난다. 데이코는 남편의 직장 동료와 거래처 사장 부인(나카타니 미키)의 도움을 받으며 남편의 행방을 찾지만 묘연하기만 하다. 그리고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의문의 살인사건들. 희생자들은 전부 남편과 관련된 인물들이다. 남편의 과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데이코는 남편의 과거를 알아갈수록 점점 의문에 휩싸이게 된다.

1950년대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한 <제로 포커스>는 기본적으로 추리스릴러물이다. 실종된 남편을 찾기 위해 부인이 조사를 해가면서 하나씩 비밀이 밝혀지는 이야기 구조로, 남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부인은 남편의 과거를 알아갈수록 숨겨진 진실에 대해 접근한다는 전형적인 추리스릴러다. 그러나 일반적인 추리스릴러에 더해진 것이 시대적인 코드로, 이 코드를 통해 전후 일본이라는 시대의 슬픔을 담고 있다. 시대적인 코드는 희생과 새 출발로 요약이 된다.

전후 일본, 미군정 시절인 이때 일본은 암흑의 시대였다. 좋은 기억이 없었던 이때, 일본이 느낌 좌절감은 상당한 것이었다. 구 시대의 상처받은 자들은 팡팡걸과 순사로 대표되며, 그들은 사랑이라는 치유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 한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는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리고자 하며, 그들은 스스로를 왜곡시켜 시대에 편입하려 한다. 사라진 남편 겐이치와 그가 보관한 사진 2장은 그런 의지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모든 슬픔을 안고 살던 겐이치는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데이코를 만나게 된 것이며, 데이코는 그에게 새로운 시대의 희망이자 약속이다. 다만 왜곡된 방법이 파국을 불렀을 뿐이다.


자신들만의 용서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역사관의 시각에서 불쾌감이 들다 보니 영화 자체에 대한 느낌은 와 닿는 점이 별로 없었다. 추리스릴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영화는 꽤나 클래식한 느낌을 주면서 괜찮은 전개를 한다. 그러나 추리스릴러가 아닌 시대적인 면을 넣은 역사적 시각으로 본다면 눈살이 찌뿌려진다. 영화에서는 전쟁에 대한 반성이 어디에도 안 보인다. 오로지 전후 일본의 감정만을 다룰 뿐이다.

<제로 포커스>의 인물들은 지난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지난 시대의 아픔이란 전후에 느낀 허탈과 상실, 좌절감이다. 아무리 일본 국민의 시각으로 본다고 하지만, 그들은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다. 그런데  전후 미군정 시기의 아픔에 대해서만 그들은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용서와 새로운 시대를 강조한다. 정작 그들이 상처를 준 대상에 대해선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아픔만이 중요하다는 이런 인식. 도대체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가? 자신들끼리의 용서가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걸까? 영화를 추리스릴러로 보아야 할지, 묘하게 포장된 역사관의 영화로 보아야 할지 의문이 든다.


제로의 역사관이 보여준 안타까움

마쓰모토 세이초의 원작이 어떤 배경으로 만들어 졌는지, 그리고 영화에서 얼마나 각색이 되었는지는 내가 원작을 안 보아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극장에서 본 <제로 포커스>는 그릇된 역사관의 영화로만 보일 뿐이었다. 난 영화에서 노골적인 용서를 구하길 원한 것이 아니다. 그저 최소한의 미안함이 보이길 바랬을 뿐이다. 그러나 <제로 포커스>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의 원제 <제로의 초점>이 시각 제로의 혼란스러움을 겪는 인물을 표현한 제목이라 여겨지는데, 이 제목은 도리어 '제로의 역사관'이란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그들만의 북치고 장구치는 용서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의 치유되지 않는 아픔이,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외면하는 회피의 이유가 될 순 없으니까 말이다.

*<제로 포커스>는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장면들이 적지 않았다. 얼마 전 <전우치>에서 보긴 했지만,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를 외국영화에서 만나는 재미는 우리 영화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재미이긴 했다.

★★

*2010년3월2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