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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영화 리뷰

시리어스맨 (2009, 코엔 형제)_심플하든 복잡하든 인생은 다 거기서 거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29.
<시리어스맨>

감독 : 코엔형제
주연 : 마이클 스터버그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래리(마이클 스터버그)는 악재가 겹치면서 꼬여버린 생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내는 자신의 친구와 바람이 나 이혼을 선언하고, 아들은 학교에서 말썽만 부리고, 딸은 코를 성형하겠다며 아빠의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게다가 대학 종신재직권 심사에서 누군가의 제보로 낙마할 위기까지 겹치는 래리. 자꾸만 꼬여가는 인생이 억울했던 그는 ‘왜 자신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신에게 묻고 싶어진다. 래리는 신을 대신할 세 명의 랍비를 찾아가는데……. 그들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와 적절한 보편성이 공존하는 코엔 형제의 영화.
일단 주인공인 래리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부인은 바람이 났고 아들과 딸은 사고뭉치에다가 자폐아 동생이 속을 썩인다. 옆집에서는 자꾸 잔디 영역을 침범해 오는 폭력성향의 부자가 살고 있고 또 다른 옆집에는 남편이 출장중인 섹시한 유부녀가 있다. 직장인 대학교에서는 한 외국인 유학생(유감스럽게도 이 앞뒤 꽉꽉 막힌 막무가내 부자는 한국인으로 설정되어 있다;;)이 뇌물, 협박을 해온다. 종신 재직권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의 도덕성을 문제삼는 익명의 제보가 날아든다. 

누구에게나 충분히 있을 만한 상황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한번에 일어나기는 쉽지 않은 사건들이 우리의 주인공 래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유태인인 그는 권위있는 랍비의 조언을 구하고 싶어 하지만 그가 만나는 랍비들 역시 시원한 해답을 내주지 못한다. 종교에도 기댈 수 없고 가족은 풍지박산 직전... 그가 무얼 그렇게 잘못했기에... 원칙대로 성실하게 살아온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

친숙하지 않았던 배우 마이클 스터버그의 소시민 연기가 인상적인.


아무도 정답을 알려주지 못하는 인간의 인생. 영화의 전반에 흐르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Somebody to Love'의 가사가 코엔 형제의 대안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믿었던 진실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네 안의 모든 희망이 사라지면 사랑할 사람을 원하겠지.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겠지


랍비도 인용하는 그 가사.. 결국 종교나 대중가요 가사나 우리 삶을 위로하는 건 똑같다


물론 이 가사가 모든 사건의 해결책이 '사랑'이라고 얼버무리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살아왔던 것들이 어느날 갑자기 뒷통수를 후려치며 우리를 배반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충격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이 '사랑'에 의한 것이든, '마리화나'의 힘을 빌린 것이든 말이다.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건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이 '종교'는 확실히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래리는 유명한 랍비 마르샥이 너무 바빠서 만날 기회 조차 갖지 못한다. 종교나 신은 인간이 원할 때 우리 곁에 있어 주지 않는다.
인생은 늘 그런 식이다. 모든 게 주저앉을 것만 같은 순간 갑자기 일이 해결되기도 하는 것이다. 래리를 둘러싼 갈등들이 하나둘 잠잠해 지고 그래서 이제 해피엔딩인가, 싶었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래리와 그의 아들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다가옴을 암시하고 끝이 난다. '이, 이 영화.. 이렇게 끝내면 안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갑작스런 엔딩에 잠시 당혹스럽지만... 뭐, 우리 인생 자체가 그런 것을 어쩌겠나. 정답도 없고 사건사고가 예견된 대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아무에게서도 그 정답을 구할 수 없는 것인데...

가족이 아니라 웬수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다소 평이해 보이는 한 인물을 둘러싼 사건들의 나열을 재치있게 버무리는 코엔형제의 편집솜씨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래리가 저러다 미쳐버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몰아가지만 래리는 용케 잘 버티고-엉망진창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래리의 인생을 부러워 하는 이도 분명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래리의 꿈과 환상, 거짓말 같은 현실들이 영화 속에서 마구 뒤섞이는 사이 우리는 우리네 인생의 정답없음을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탈무드의 우화를 인용했다는 오프닝은 결말도 정답도 없는 우리들의 인생 안에서 내려야 하는 '선택'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친절을 베풀었다가 가슴팍에 칼을 맞고 집 밖으로 나간 노인이 유령인지 인간인지 이야기 속에서는 알 수가 없다. 그렇듯 인간이 내린 선택의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없다. 다만 그 선택으로 인해 다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수 백, 수 천 가지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일 뿐이다. 또 아무리 진중한 삶(시리어스 맨)을 살았다 할지언정 인간은, 가족은, 또 사회는 언제 어디서 갑자기 죽게 될지 모르는 위험을 항상 안고 살아가는 나약한 동지들로 이루어진 집단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냉혹하다. 기댈 곳 없는 인생, 아등바등 살지 말자는 것이 바로 내가 해석한 코엔 형제의 메시지다.

명확한 영화 전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다소 갑갑해 할 만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