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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영화 리뷰

<꽃비>학원물의 모습을 통해 비유적으로 투영한 4.3항쟁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28.


4.3항쟁을 다룬 영화 <꽃비>

얼마 전에 <클래스>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내용이 프랑스의 각종 사회문제를 학교 안, 학생들의 시각으로 접근해 본 이야기였다. 학생들의 말과 행동들을 통해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비유적으로 문제를 도출하면서 프랑스가 겪는 현재의 사회문제는 무엇인가를 접근해본 흥미로운 영화 <클래스>. 내가 <클래스>를 거론하면서 리뷰를 시작한 이유는 독립영화 <꽃비>도 이와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접근을 했었기 때문이다. 4.3항쟁이라는 시대의 아픔을 학원물의 모습을 통해 비유적으로 투영한 작품 <꽃비>. 영화는 사건을 직접적으로 그리기 보다는 비유적인 모습을 통해 접근했다.

그런데 4.3항쟁은 무엇을 말하는 거지? 난 <꽃비>를 보러 가기 전에 영화가 4.3항쟁을 다룬 영화라는 것 외엔 아무 것도 모르고 갔었다. 4.3항쟁은 무슨 사건인지는 알고 갔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제주도에서 일어난 사건 정도만 아는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4.3항쟁에 대한 관심과 사건의 진실을 알려주고 싶어하는 의식이 깔린 <꽃비>는 나에게 신선하면서도 부담스러움이 공존하게 만든 영화였다.


서연을 차지하기 위한 도진과 민구의 경쟁, 그리고 그 경쟁을 부추기는 동일

어느 날, 폭력으로 학우들을 다스리던 급장이 떠난다. 폭력에 시달리던 학우들은 이제는 좋은 날이 올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옛 급장의 심복이었던 선도부장 도진의 패거리, 옛 급장에게 시달리던 학우들이 모인 민구의 패거리, 도진과 민구라는 교실의 양대 세력은 위태스럽지만 그들만의 방식과 대화를 통해 평화롭게 지낸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인물은 서연. 도진과 민구는 둘 다 서연을 좋아하지만, 바라만 볼 뿐 고백을 못한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할 뿐이다. 그리고 서연을 통해 그들은 나름대로의 우정을 유지한다.  하지만 육지에서 전학생 동일이 오며 그들만의 방식은 깨지게 된다. 동일에 의해 도진과 민구는 서연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게 되고, 급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게 된다. 그들만의 평화는 깨지고 그들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어 간다.

<꽃비>의 정종훈 감독은 제주도 출신으로, 직접 4.3항쟁을 겪은 세대는 아닌, 이후 태어난 세대라고 한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분명 슬픈 과거의 잔해를 직접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며 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생각한 4.3항쟁에 대한 시각은 영화에 극명하게 녹아있다. 감독은 자신의 기억과 느낌이 담긴 시각을 학교 내 학생들의 모습으로 변형시켜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며, 4.3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방식이 아닌, 직유와 은유를 혼재한 화법으로 이야기했다. 가장 순수한 시절인 학생들의 모습 속에 투영시킨 순수하지 못한 권력과 전쟁의 코드들, 이것을 통해 4.3항쟁 당시의 시대상황을 보여주려고 했다.

폭력으로 다스리던 예전 급장은 일본의 상징화이다. 그리고 새롭게 다가온 평화 속에서 자신들만의 힘과 규칙으로 공존을 꾀하는 도진과 민구는 남과 북 이데올로기의 상징화이며, 서연은 순수와 평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육지에서 온 동일은 바로 새롭게 다가온 외세이다. 도진과 민구는 아웅다웅 다투며 싸우기도 하지만 그들만의 틀과 규칙 안에서 공존했던 자들이다. 하지만 육지에서 온 동일이 그들 사이에 개입하면서 도진과 민구는 노골적인 경쟁과 싸움을 하게 된다. 목표는 서연을 독차지 하기 위함이다. 그 과정에서 동일은 자신의 계산대로 도진과 민구를 움직이게 만들고, 경쟁시킨다. 구 권력이 사라지면 평화로운 봄날이 올 것만 같았지만, 새로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과 외세의 개입, 그 과정에서 서연은 철저하게 유린당한다.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영화 <꽃비>

얼마 전에 본 <작은 연못>은 철저하게 그 날의 사건을 중심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시각을 통해 노근리 사건을 알리고자 한 직접적 화법의 영화였다. 그에 반해 <꽃비>는 직접적인 언급이 아닌 간접적인 묘사와 해석을 넣어 4.3항쟁을 알리고자 한 영화였다. 난 이 간접적인 화법이 대중들에게 얼마나 몰입도와 전달성을 줄지에 대해선 솔직히 의문점을 찍고 싶다. 분명 흥미로운 직유와 은유의 화법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집중력 있는 이야기 전개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꽃비>는 순수함이 묻어난 영화이며, 기획의 방향성이나 주제를 보여주기 위한 진정성이 보이는 영화다. 그렇기에 난 이 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싶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었으니까.

저예산 독립영화 속에서 시대적 사건을 조명하는 것을 보고자 하는 분에게 <꽃비>는 꽤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영화에서 나온 생각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절대적으로 틀린 것도 아니며 그저 하나의 작은 단초 정도일 뿐이다. 너무 큰 의미를 두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너무 큰 잣대도 대지 말기 바란다. 모든 판단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꽃비>는 저예산 독립영화의 한계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영화의 녹음상태가 심하게 안 좋았다. 거기에 사투리까지 들어가다 보니 정확히 무슨 대사를 하는 건지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도 적지 않았다. 너무 사투리에 집착하기 보단, 차라리 표준어를 구사하는 방식을 취해 관객이 내용을 정확히 인지하게 만드는 접근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2010년4월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