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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영화 리뷰

그린존 (2010, 폴 그린그래스)_최신식 액션으로 치장한 철지난 메시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27.
그린존 - 8점
폴 그린그래스

줄거리

2003년, 세계평화라는 명목 하에 시작된 이라크 전쟁. 미 육군 로이 밀러(맷 데이먼) 준위는 이라크 내에 숨겨진 대량살상무기 제거 명령을 받고 바그다드로 급파된다.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색 작업을 펼치지만 밀러 준위는 대량살상무기가 아닌, 세계평화라는 거대한 명분 속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퍼즐처럼 얽힌 진실 속에 전쟁은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의혹만 커져가는데…

맷 데이먼은 여전히 우직하고 정의로우며 직감이 훌륭한 군인 혹은 요원이다. 이라크 내의 대량살상무기를 찾는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인 로이 밀러 캐릭터 역시 제보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번번이 허탕을 치고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는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모험을 감수하는 믿음직스러운 남자의 이미지다. 그의 액션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듯 하고 외모 또한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거나 추하지 않다. 현실 속 문제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논픽션 류의 영화 주인공으로 딱 알맞다. 게다가 <그린 존>은 본 시리즈로 맷 데이먼을 최강 액션배우로 탈바꿈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캐릭터 자체에 대한 매력이나 소재의 참신성 모든 부분이 조금씩 떨어지는 느낌이다. 제이슨 본처럼 뛰어난 두뇌플레이가 돋보이지도 않고 극적인 순간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짜릿함을 안겨주는 장면도 없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더라는 사실은 전세계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반전도 음모론도 아닌 사실 그 자체로 인식된지 이미 오래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다소 김이 샌다. 아무 것도 건진 게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급박하고 사실적인 이라크 현지를 묘사한 장면들이나 액션씬들은 여전히 박진감 넘친다) 이 영화가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는 점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게 문제다.



이 영화가 울림을 갖는 이유는 대사 단 두 줄로 축약된다. "이라크인들의 문제를 미군이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요". 민족의 반역자 (우리나라로 치면 이완용 쯤 되는 걸까)를 제 손으로 처단한 이라크인 프레디의 일갈이다. 그때 비로소 로이 밀러는 벙찐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 보게 된다. 그러게, 도대체 그때까지 밀러는, 미군은, 미국은... 이라크 땅에서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킨다는 명목 아래 이라크인들에게 도대체 무슨 짓들을 해온 걸까. 당황한 로이 밀러의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오랜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건물들과 잔해 뿐이다. 그 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이며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이중성을 정확히 지적하는 지점인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미군이 사담 후세인의 궁을 개조해 만든 '그린 존'이 묘사되는 장면. 밖에서는 이라크인들이 서로 물을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지만 그린 존 안에서는 미국인들이 썬탠과 맥주, 수영을 즐기고 있다. 미국이 말하는 자본주의란 그런 부조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항변하는 듯한 직설적인 은유다. 그다지 신선하진 않지만 여전히 충격적이긴 하다. 영화에 몇 번이고 등장하는 대사처럼 '도대체 그들한테 왜 이래요?'라고 묻고 싶어진다.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그들한테 그러는 건지, 감독은 관객에게 의문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 듯. 다소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맷 데이먼 팬이거나 씨원한 액션 영화 한 편 보고 싶다면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