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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영화 리뷰

<육혈포 강도단>쉽지 않은 소재를 무난하게 소화해 주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26.


평균 나이 65세의 육혈포 강도단

<육혈포 강도단>을 보기 전, 궁금했던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육혈포가 뭐지? 네이버 사전을 찾아 보니 육혈포 [六穴砲] 는 탄알을 재는 구멍이 여섯 개 있는 권총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럼 육혈포 강도단은 권총 강도단 정도의 의미가 된다.

<육혈포 강도단>을 간단하게 풀어보자면 권총 가지고 강도질 하는 영화다. 강도질 하러 가는 곳이 은행. 여기까지는 새로운 점이 안 보인다. 그런데 강도단이 평균나이 65세의 최고령 은행 강도단이라면? 바로 <육혈포 강도단>의 신선한 발상은 할머니 강도단이라는 곳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렇지만 할머니 은행 강도단이라는 설정은 주연으로 중견여배우들을 영화 전면에 내세워야 함을 말한다. 그런데 한국영화에서 여배우들이, 그것도 젊은 여배우들이 아닌 할머니에 접어든 여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워 영화를 만든다는 건 모험적인 면이 크다. 그래서 <육혈포 강도단>은 할머니 은행 강도단이라는 신선한 접근에 안전판을 하나 마련하고 들어간다. 그것은 기존 한국 코미디물에서 아이 콘같은 존재인 임창정을 넣는 것. 이렇게 <육혈포 강도단>은 나문희, 김수미, 김혜옥 세 명의 할머니 은행 강도단과 전직 은행 강도 임창정으로 구성된, 보기 드문 팀을 이루게 된다.


자기 희생에 대한 스스로의 보상을 위한 돈 837만원

앞서 말한 대로 <육혈포 강도단>은 할머니 은행 강도단이 은행을 터는 영화다. 그렇다면 은행을 왜 터는지, 돈이 왜 필요한지의 이유가 필요하다. 이유는 자신들의 잃어버린 돈 837만원 때문이다. 정자(나문희), 영희(김수미), 신자(김혜옥), 평생 친구인 이 세 할머니는 8년간 837만원을 어렵게 모은다. 목적은 인생 마지막 소원인 하와이 여행을 가기 위함이다. 그러나 여행 자금을 입금하기 직전, 은행 강도단에게 돈을 빼앗기고 만다. 아무런 보상을 못 받은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직접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인생 마지막 소원이자, 자신들의 꿈인 하와이 여행을 위해서.

<육혈포 강도단>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재를 영화로 만든 것으로, 837만원 때문에 은행을 턴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나올만한 소재다. 그러나 이 837만원은 의미가 있는 돈이다. 영화 속 세 명의 할머니는 굴곡의 인생을 사는 분들이다. 홀로 사는 노인, 자식마저 이혼한 노인, 자식의 눈치를 보며 사는 노인. 이들에게는 하와이 여향이 자기 희생과 억압받은 삶에 대한 보상이며,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837만원은 그 선물을 위한 희생이자 인내의 결실이다. 그 자유를 얻기 위한 마지막 모험이 육혈포 강도단이다.


나문희, 김수미, 김혜옥 그리고 임창정

<육혈포 강도단>은 결코 선이 굵거나 강한 힘이 보인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자잘한 재미와 노련함이 보인다. 무게감은 없을지라도, 잔 펀치를 구사하면서 관객에게 재미를 준다. 물론 <육혈포 강도단>은 그 동안 한국 코미디에서 자주 보여지던 웃음만이 아닌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전개를 답습하기도 했다. 이상하리만치 한국영화는 코미디 장르물은 눈물도 주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경향이 있었고, 이것은 영화의 기본 성격을 빗나가 버리게 만들곤 했었다. 하지만 <육혈포 강도단>은 다소 작위적이지만 그 연결을 비교적 매끄럽게 해주었다. 강한 웃음, 강한 감동은 아닐지라도 적당한 수준의 웃음과 감동은 주는 등 기본적으로 장르적 성격에 충실했으며, 배우의 힘을 끌어내는 방식도 좋았다.

<육혈포 강도단>은 시나리오적으로 논리적이거나 정교한 면은 없다.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넘어가기도 하며, 요약하며 가기도 한다. 또한 비약도 한다. 하지만 <육혈포 강도단>은 은행을 터는 소재를 다루지만, 기본적으로 할머니들의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점에 집중을 하기 보단, 오로지 할머니들의 모습과 생각에 집중을 하면서 이야기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였다. 그리고 시나리오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준 것은 나문희, 김수미, 김혜옥, 그리고 임창정의 노련한 연기로, 연륜이 쌓인 세 분 중견여배우들의 연기에 코미디장르물에서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는 임창정이 더해진 시너지 효과는 꽤 훌륭한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소재를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영화에서 여배우들이 가지는 위치는 애매스러운 면이 많다. 거기에 중견연기자, 나이가 이제 고령에 들어가는 여배우들이 설 자리라는 것은 적기도 하지만, 있다고 해도 카메오나 비중 있는 조연 정도가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육혈포 강도단>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비록 <마파도>같은 성공사례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검증된 성공사례는 아니다보니 불안요소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만족스럽지 않은 면도 있었지만 <육혈포 강도단>은 주어진 상황에서 꽤 멋지게 뽑아낸 작품이다. 앞으로의 여배우들의 스크린으로의 활발한 진출을 위한 디딤돌로 부족함이 없기에 난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더욱 많은 여배우들, 그리고 중견배우들의 스크린 속 활약을 기대해본다.

★★☆

*2010년3월1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