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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영화 리뷰

<어밴던드>허탈한 느낌만 남긴 공포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21.


무엇인가 이상한 영화 <어밴던드>

<어밴던드>라는 굉장히 특이한 영화를 만났다. 분명 공포물이나 그다지 무섭지 않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해 벌어지는 미스터리 한 사건을 다루지만 스릴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특이한 영화. 어두운 극장에선 기괴한 잡음만이 울려 퍼졌으며, 스크린 속 여자는 괴성을 질러댔으나 그걸 지켜보던 나는 무서운 게 아닌 기이한 느낌만을 받았다. 그리고 저것은 뭐 하는 건 가란 의문만 강하게 품게 되었다. 이 영화의 정체는 무엇 인가란 강한 의문.


40년 전 살인사건의 그 날로 돌아간다

러시아에서 태어났으나 출생 직후 입양으로 떠나야 했던 메리와 니콜라이는 자신들의 출발점이자 고향인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40년 전 그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기 위해 이곳에 왔다. 자신들의 마음 한 구석에 가지고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온 집. 그러나 그들은 집에서 나갈 수 없게 된다. 숲을 지나가도 원점이고, 강을 건너도 다시 돌아온다. 그들은 집을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자신들의 형상을 한 유령들은 자신들의 미래이자, 자신들이 겪을 일의 결과이며, 시간은 40년 전 살인사건의 날로 돌아간다. 자신들의 출발점으로부터 그들은 초대받은 것이다.

카림 후세인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어밴던드>의 출발점, 바로 태어난 집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제목의 abandon 은 '버리다' 또는 '떠나다'란 의미의 단어답게, 영화는 버려졌던, 그리고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자신들의 과거를 찾으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출발점을 찾아온 것이며, 그들의 벗어날 수 없었던 과거는 집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중반 이후 너무나 단순화되는 이야기

정해진 순서대로 일은 벌어질 것인가, 아니면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어밴던드>의 포인트는 바로 40년 전 사건이 바뀔 수 있는 가란 가능성의 여부였다. 빠져 나갈 수 없는 집,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 거기에 더욱이 자신들과 같은 형상을 한 존재라는 꽤 흥미로운 기본적인 설정 아래 진행되던 영화는 분명 중반까지는 꽤 그럴싸한 몰입도를 주었다. 과연 이 흐름을 바꿀 수 있을 것 인가란 여지와 함께.

그러나 중반 이후 영화는 급격히 단순화 된다. 무엇인가 있을 법한 분위기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으며, 전개 역시 일반적으로 예상할 법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기존에 나온 공포의 코드를 그대로 차용했을 뿐이고 어떠한 변주도 없다. 초반에 가졌던 소재의 신선함이 사라지는 순간 관객의 집중을 잡아줄 요소는 없었으며, 본래 가지고 있던 시나리오의 약점만 더욱 드러날 뿐이었다. 공포의 효과적 강약 조절이 아닌, 그저 소음과 흔들리는 화면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인의 모습이 있을 뿐이며, 관객과 동화하지 못한 채 고립되어 버린 여인만이 스크린에서 괴성을 지르며 고군분투 할 뿐이었다.


추천하고 싶지 않은 공포물이다

<어밴던드는>는 기존 공포물의 일반적인 코드에 '귀향'과 '운명론'을 접목시켜서 살인시간이 벌어진 40년 전 시간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선 소재적으로 조금 흥미로움이 보였던 영화다. 그러나 공포물로서 가장 중요한 무서움이 느껴지질 않는다는 큰 약점이 있다. 그저 눈에 들어오는 건 저예산 공포물이란 점과 러시아어가 부분적으로 나오는 공포물이란 점 뿐이며, 그 외에 새로움이 안 보였다.

원작의 어떠한 점에 나초 세르다 감독이 흥미를 느껴 영화로 만들었는지는 원작을 안 보아서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극장에서 만난 <어밴던드>는 분명 공포물로서 성공보다 실패가 커 보인 영화다. 어떤 큰 기대를 가지고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무섭지 않을 줄은 예상 못했다. 지나치게 단순화된 스토리와 뻔한 전개방식. 진부하다는 표현 외에 다른 표현이 생각이 안 날 지경이다. 차라리 원초적인 공포감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영화는 소재의 설정에 너무 사로잡혀 버렸다.

아니면 감독이 생각하는 공포감과 내가 생각하는 공포감의 관점이 다른 건지도 모르겠다. 감독의 공포감은 조금 특이한 걸까? <어밴던드>를 보고 내가 느낀 허탈감은 꽤나 컸으며, 이 허탈감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어밴던드>를 보고 공통적으로 느낄 허탈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공포물 매니아라서 약간의 의무감으로 보는 분들이 아닌, 일반적인 분들에겐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지 않다.

★☆

*2010년3월2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