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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의 눈 (2010, 기옘 모랄레스)_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감이 주는 공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3. 14.
<줄리아의 눈>
감독 : 기옘 모랄레스
주연 : 벨렌 루에다


선천적 시력장애로 고통 받고 있는 줄리아는 같은 증세로 이미 시력을 상실한 쌍둥이 언니 사라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는다. 언니의 자살에 의문을 품은 그녀는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기묘한 분위기의 수상한 이웃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라의 남자친구, 무언가 감추고 있는 듯한 남편의 이상한 행동들… 파헤칠 수록 의혹은 더욱 커져만 가고, 그러던 중 남편의 실종으로 더욱 큰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 줄리아. 그녀의 시력은 점점 악화되기 시작하는데….

공포영화를 평소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는 꽤 인상적으로 봤던 기억이 있다. <줄리아의 눈>은 길예르모 델 토로의 연출은 아니지만 제작으로 나선 만큼 약간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 이야기한 것처럼 영어가 아닌 제3국의 언어를 듣는다는 낯선 느낌은 공포나 기타 감정을 배가시키곤 한다.


여주인공 줄리아(벨렌 루에다)는 언니의 죽음 때문에 히스테리에 가까운 예민함을 부리고 있어 그녀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은 내내 불안함을 피할 수 없다. 시력을 잃어가는 그녀의 관점을 표현할 때 카메라는 더욱 어두워 지고 시야가 좁아진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갑갑함을 느꼈다는 사람도 있다. 그녀가 수술을 받고 안정을 찾을 때까지 곁에서 돕는 도우미 '이반'의 모습도 관객에게 전혀 보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오로지 시력을 잃은 줄리아가 다시 안정을 찾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시간에 도달해 가는 모습만을 지켜보게 될 뿐이다. 이때 관객이 느끼는 '갑갑함'은 시력을 잃은 사람이 주변에 갖는 공포심으로 연결된다. 긴장감이 극에 달하는 순간 언니를 살해한 범인이 어둠 속에서 터뜨리는 카메라 플래쉬는 우리의 공포를 극대화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과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충돌할 때 인위적으로 강렬하게 발생하는 빛은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또 하나의 무기가 된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색감이 무척 '유럽틱'하다(고 느꼈다). 유럽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영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음산하고 축축한 느낌이 왠지 보르게 유럽스럽다고 느껴진다. 또한 은근히 기대했던 '판타지'적 요소보다는 '본다는 것'과 그에 따른 상대적인 '존재감' 을 말하고 싶어하는 영화였다. 줄리아처럼 한 순간이나마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게 되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무관심할 때 사람에게는 '시력'이라는 수단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한 생각에 도달하고 나면 '시력을 잃은 사람은 누구나 죽고 싶어 한다'는 영화 속 대사가 무척이나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 줄리아는 남편의 눈으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이 마지막 장면은 (이미 모두가 지적하듯이) 일부 관객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함과 동시에 영화의 오점으로 남을 만큼 치명적이기 때문에 관객에게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보이는 것 이상의 메시지를 해석하고자 하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 역시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오직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눈 이외 다른 것으로도 사람이나 사물,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이런 관대한 관객이 많진 않겠지만..;;) 


tip.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할 틈은 없다. 은근한 스릴러를 좋아하는 영화 팬에게 추천. 그리고 여주인공을 맡은 벨렌 루에다의 몸매도 ... (이런 내가 싫지만) 추천.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잔혹한 장면 때문에 호러 팬들도 좋아할 만한 요소도 적지 않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