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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영화리뷰

'시크릿' -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by 朱雀 2009. 11. 19.

<세븐 데이즈>처럼 <시크릿>에도 목소리를 변조해 전화를 걸어 주인공을 협박하는 의문의 인물이 있다. <세븐 데이즈>에선 초반에 나오는 것과 달리, <시크릿>에선 조금 지나 나온다. 차라리 좀더 편집해서 빨리 나오게 하는게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 한 형사가 있다. 그는 몇 년전 정부와 전화를 받던 도중 교통사고를 일으켜 하나뿐인 딸을 잃었다. 그러나 차마 그 사실을 아내에게 말하지 못하고, 그 날 이후 두 사람은 각자 지옥같은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 현장에 나간 형사는 자신이 아내가 하고 나간 귀걸이 한짝과 단추 그리고 아내의 핑크 바이올렛 립스틱이 묻은 잔을 보고 당황한다.


형사는 기지를 발휘해 귀걸이와 단추를 챙기고, 유리잔을 깨버린다. 집으로 돌아온 형사는 아내를 닦달하지만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죽은 남자가 유명한 폭력조직인 칠성회의 보스 재칼(류승룡)의 동생인 것이 밝혀지면서 더욱 난감한 상황에 봉착한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증언해서 정직을 당한 동료 최형사는 직감적으로 성열(최승원)의 아내를 의심하게 되고, 그쯤부터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쥐고 있는 의문의 사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다. 성열은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동료인 최형사와 폭력배 보스 재칼 그리고 의문의 사내를 상대해야하는 험난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시크릿>은 <세븐 데이즈>로 우리에게 익숙한 시나리오 작가 윤재구의 감독작품이다. <시크릿>의 전체적인 구도는 <세븐 데이즈>와 상당히 흡사하다. 복잡하게 꼬여있는 상황과 결정적인 단서를 쥔 의문의 사내가 전화를 통해 계속해서 차승원을 압박하는 상황이 특히 그러하다.


<시크릿>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 없이 몰아붙이던 <세븐 데이즈>와는 달리 어느 정도 쉴 템포를 준다. 오랜 시간 연기 내공을 닦아온 차승원은 극장에서 돈내고 보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멋진 연기를 선사한다. 그는 적당히 삶을 즐기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아내를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애쓰는 형사 김성열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특히 차승원과 폭력조직의 보스 재칼역의 류승룡이 한 화면에 잡힐 때면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장 영화상에서 미스테리한 인물이어야할 송윤아가 그 매력을 전혀 뿜어내주지 못해 영화의 분위기가 잘 살아나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송윤아는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쥐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차승원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치명적인 팜므파탈적인 매력을 선보여야 할  그녀의 연기는 마치 멜로 드라마에서 갓 튀어나온 듯 <시크릿>의 분위기와 너무 궤를 달리한다.


덕분에 차승원과 송윤아가 한 화면에 잡힐 때는 뭔가 맥이 끊기는 느낌이 번번히 든다. 이런 느낌은 심지어 송윤아가 재칼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도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한다.


<시크릿>의 가장 큰 약점은 완급조절의 실패다.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어느 정도 뽑아내고, 스릴러 영화의 기본인 스토리 꼬기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싶다. 그러나 전개과정에서 불필요한 설명이나 장면들이 들어가 <세븐 데이즈>때처럼 뭔가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져가는 느낌이 사라졌다.


또한 너무 반전에 집착한 나머지 충분히 개성을 살릴 수 있었던 김인권 같은 등장배우들의 매력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부분도 아쉽다. 마지막 부분에서 너무 긴 시간동안 사건에 대해 설명해주는 부분도 약점으로 지적해야 될 듯 싶다.

미스 캐스팅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송윤아. 그녀는 미스테리한 여인으로 극의 마지막까지 주인공을 헷갈리게 만들어야 임무를 띠었음에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다. 송윤아는 <시크릿>에서 미스테리 우먼보다는 멜로물에서 갓 튀어나온 상처받은 여성을 연기해버린다. 덕분에 그녀의 연기와 작품은 각자 다른 길로 가버린다.


<시크릿>은 스릴러 영화에서 조심해야할 ‘꼭 설명해야 될 부분’과 ‘그렇지 않아야할 부분’을 각각 너무 짧게 그리고 길게 보여줌으로써 흥미도를 떨어뜨리는 우를 범한다.


안타까운 것은 <시크릿>의 만듬새가 꽤 괜찮을 수 있었는데도, 감독의 욕심이 앞서서 ‘과잉’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관객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줘서 추리하기를 포기하게 만들고, 마지막에 너무 자세히 설명해줌으로써 <세븐 데이즈>때처럼 관객이 관람 후 논쟁할 거리를 없애버렸다.


<세븐 데이즈>때처럼 <시크릿>의 대본은 꽤 훌륭한 편이었지만, 비슷한 전개와 더불어 너무 앞선 감독의 과한 욕심의 영화의 완성도를 평균작이상 올리질 못했다. 부디 개봉시에는 너무 많은 정보를 주는 장면들을 쳐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장면 몇 개를 치는 것만으로 영화의 완성도는 꽤 올라갈 것 같다.


충분히 수작이 될 수 있었지만 범작에 머무른 아쉬운 영화, 그게 <시크릿>에 대한 간단평이다.


-2009. 12. 0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