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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영화리뷰

<스텝 업 3D>눈과 귀는 즐겁지만, 뇌는 심심하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8. 5.



<스트리트 댄스>와 <스텝 업 3D>

 <스텝 업 3D>의 관계자들은 몇 달 전부터 심기가 조금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댄스 영화의 맏형을 자부하는 위치에서(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헐리우드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평가 받는 3D 시장에서 '첫 3D 댄스 영화'가 되고 싶은 욕심이 분명 있었을 터. 게다가 '처음'이라는 점은 흥행에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영국산 3D 댄스 영화 <스트리트 댄스>에게 선제 공격을 당했다. 1989년 <레비아탄>과 <딥 식스>에 시장을 선점 당해 고전 했던 <어비스>의 경우를 떠올려 본다면, 유사 소재(혹은 장르) 영화의 대결에서 선제 공격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물론 1998년 <딥 임팩트>를 넘어선 흥행을 했던 <아마겟돈>을 생각한다면 다르겠지만.

 그렇다면 <스트리트 댄스>와 <스텝 업 3D>는 첫 3D 댄스 영화라는 대결적인 의미로 보아야 할 영화들일까? 유사 소재(혹은 장르)라는 면에선 그럴 수 있지만, 시각을 달리해서 '대결'보다는 이어지는 '단계'로 읽어 보고 싶다. 목표와 숙제를 던진 단계라는 의미로. 목표는 <스트리트 댄스>가 역동적이고 움직임이 큰 '댄스'를 입체로 담아낸다는 것에서 한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숙제는 조금 더 살아있는 '입체'를 보여줄 여지가 있다는 목표로 가기 위해서는 정통적인 댄스 영화의 표현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영상, 음악, 댄스로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자극하는 영화

 태생이 MTV 세대가 즐기는 시각적 오락물이었기에, <스텝 업 3D>에서 스토리적인 것을 찾는다는 것은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 고전적인 댄스 장르가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가졌던 것에 비해, 21세기 형 댄스 영화인 <스텝 업> 시리즈는 과거보다 더욱 단편적이고, 감각적이니까. <스텝 업>과 비교한다면 <스텝 업 2>는 더욱 그랬다. 1편이 그나마 이야기를 중심으로 놓으려고 노력했던 것에 비해, 2편은 더욱 노골적으로 영상, 음악, 댄스로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자극했던 영화다. 

 2편의 성공에서 자신감을 얻었던 걸까? 2편에 이어 <스텝 업 3D>의 감독을 맡은 존 추는 이야기보단 댄스를 선택했다(애초부터 관객들이 댄스를 바란 영화니까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스텝 업 3D>는 애초부터 이야기와 댄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생각이 없었을 지 모른다. 이야기를 포기한 대신에 춤을 잡는 것에는 사력을 다하는, 춤에 살고 춤에 죽는 '춤생춤사'다.

 물론 <스텝 업 3D>에도 사랑 이야기는 나오고, 우정 이야기, 우정을 가장한 사랑 이야기도 있다. 거기에 "춤을 왜 추는가?" 등을 물으면서 춤을 향한 열정을 담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은 춤을 보여주고 남는 시간을 채우는 정도로 느껴지는 앙상함. 내가 바란 것은 기존의 댄스 영화의 정형화된 이야기 구조를 깨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 정도 였다. 그러나 영화는 개연성 같은 문제는 둘째 치고라도 비약적인 전개도 너무 많은 것이 문제였다. 심지어 영화 속 배틀 대회의 규정을 보면 감탄보다는 한숨이 나올 정도(아무나 난입하는 대회라니).

 이야기로 보면 과감하고 비약적이기에 문제 투성이지만, <스텝 업 3D>은 댄스로 영화를 보게 되면 평가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다양한 3D 효과로 구성된 댄스 퍼포먼스  

 우선 <스텝 업 3D>는 기본 메뉴가 화려하다. 힙합, 브레이크, 탱고, 재즈 등 영화 속에 나오는 댄스의 종류는 다른 어떤 댄스 영화와 비교해도 풍성한 수준으로 관객에게 다양성을 보여주려고 했던 모습이다. 또 댄스를 보여주는 형식도 다양하다. 댄스 스테이지는 기본이거니와, 공원에서 보여주는 스트리트 댄스라든가, 뮤지컬적인 요소를 차용하여 보여주는 거리 퍼포먼스, 야마카시를 응용한 장면들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으며, 장면 구성의 정성도 느껴졌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3D를 접목시킨 댄스의 표현법이다. 3D가 보여주는 움직임의 한계를 인지한 제작진은 움직임으로 입체감을 극대화시키기 보다는 다양한 표현 효과를 통해 입체감을 높이려 했다. 가루와 물, 빛 등을 이용한 다양한 표현을 통해서. 그리고 그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무대 위에서 가루를 흩날리며 추는 댄스, 스테이지 위에 물줄기가 분출하는 가운데 추는 댄스, 온 몸에 장착된 네온을 통해 현란한 색을 뿜어내며 보여주는 댄스 등을 3D안경으로 체험하는 것은 꽤 신선한 경험이었다. 기존의 어떠한 퍼포먼스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체험.

 이걸로는 조금 심심하다고 생각했던지 영화는 다른 방법으로도 3D를 보여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지하철 환풍기 바람을 타고 하늘로 치솟는 슬러시 쇼 장면이나 공원에서 풍선을 날리며 관객이 3D를 다양하게 체험하도록 했다.

 그러나 입체를 느끼게 해주는 표현 효과를 제외한 '댄스' 자체만 본다면 영화는 3D는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댄스의 강렬함이나 역동성은 일반 화면보다 전해짐이 빈약하다. 게다가 그다지 부드러운 움직임도 아니다. 어쩌면 지금 현재의 기술이 가진 한계인지도 모른다.


눈과 귀는 즐겁지만, 뇌는 심심하다

 2편의 댄스 확장판에 가깝게 만들어진 <스텝 업 3D>. 그렇기에 기대를 주는 부분과 실망을 주는 부분이 뚜렷하다. 영상과 음악, 댄스가 있기에 즐겁고, 3D로 표현된 장면들이 있기에 신선하다. 그리고 <스트리트 댄스>가 던져준 목표와 숙제에 일정 수준의 해답을 제시했다는 점은 성과이기도 하다. 입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표현이 되어야 좀 더 체감적으로 강해지는지. 

 하지만 이야기가 상당히 조악하고, 연기라는 것이 거의 전무했기에 아쉽다. 전문 연기자 보다는 댄서들이 주로 등장하는 영화, 정통 영화보다는 뮤직비디오에 가까운 영화에서 연기력을 찾는 것도 무리지만 서도.

 분명 <스텝 업 3D>는 무더운 여름 날, 시원한 극장에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어깨를 들썩이기엔 충분한 영화다. 그리고 시장에서의 가치가 있기에 후속작 또는 비슷한 류의 영화가 계속 나올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나온들 연기와 이야기가 없는 영화는 그저 소모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난 <스텝 업 2>가 <스텝 업>에 비해 더욱 신나는 음악과 춤의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1편의 채닝 테이텀이었다. 영화가 소모가 아닌 기억에 남기 위해선 결국 본연의 문법에 충실해야 한다. 몇 달 후 <스텝 업 3D>를 보고 무슨 기억이 남았는가 내게 묻는다면 '아무 것도' 라고 대답할 듯 하다. 눈과 귀만 즐거웠던 시간이고, 뇌가 즐거웠던 시간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면 2010년에 본 두 편의 댄스 영화 <스트리트 댄스>와 <스텝 업 3D> 중 어느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묻는다면? 난 <스트리트 댄스>에 손을 들어 주겠다. 그 영화가 이야기에는 더 충실했으니까. 3D는? 당연히 <스텝 업 3D>의 압승이다.

★★

*2010년8월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