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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선과 악이 함께 만들어낸 기형적 괴물

by Almuten 2009. 4. 27.


박쥐는 엄밀히 말하면 뱀파이어 영화가 아니다. 단지 박찬욱 감독 자신이 이 영화에 담아내고자 했던 의도를 위한 하나의 영화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카톨릭에서 신부 라는 존재는 사제이다.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시간 예비사제 기간을 거치면서 공부를 해야한다. 공부가 끝난후 신부가 되면 카톨릭에서는 적절한 지역에 신부들을 배치하고 주기적으로 지역을 이동시킨다. 신부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정도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신부로서의 자격이 없다 라는 기준이 적용되어 지는듯 하다.

카톨릭 신자들에게 있어서 신부님은 존경의 대상이며 하느님과 신자들을 이어주는 메신저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윤리적으로 깨끗한 이미지의 신부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뱀파이어가 된다. 신자들에게 살인하지 말것이며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고 가르쳐야 하는 신부에게 감독은 이제 피를 빨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뱀파이어 라는 잔인한 운명을 부여한다.



마치 감독은 이래도 욕망을 제어하고 죄를 짓지 않을수 있을거 같애! 라며 음흉한 미소를 내뱉는듯 하다.
우연치 않은 사고로 뱀파이어가 된 상현(송강호)이 죽었다가 뱀파이어로 부활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을땐 이미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신자들은 상현이 고통받는 자신들을 구원해 주기 위해 하느님이 살려 보냈다고 착각이라도 하는듯 하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은 피를 빨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피를 빨기 위해서 뱀파이어가 되기 이전과는 달리 자신의 생존을 위해 상현은 점점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후퇴시킨다. 이전에는 고해성사에서 자살하고 싶다는 신자에게 자살은 가장 큰 죄악이라고 가르쳤다면, 이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카운셀러가 되어주고, 그들의 자살을 도우면서 피를 빨게 된다.

감독은 이러한 설정들을 통해 상현 이라는 신부의 내면을 선과악의, 욕망과 이성의 격전장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아울러 그동안 신부라는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억눌러야만 했던 성적욕망에 대한, 상현의 고뇌와 이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에는 친구의 아내를 탐하고 마는 상현이 "욕망을 갈구한다는 것이 죄가 된다는게 믿겨 지지 않는다" 라는 한마디는, 감독이 품고 있는 의문을 대변하는 듯 하다.



욕망 이라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본질적인 욕구에 가깝다. 과연 이러한 본질적인 욕구에 충실하지 않고 억압하고 제어하는 것이 옳다라고 가르치는 종교의 가르침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다. 뱀파이어가 살기위해 피를 빠는것도 죄악인가! 여우가 토끼를 사냥하듯이 뱀파이어가 자신의 먹잇감인 인간을 사냥하는 것이 과연 죄악이 될 수 있는지도 반문한다.!

박찬욱 감독은 전반부에서 이러한 의문들을 제시했다면 후반부에서는 상현이 만들어낸 또하나의 욕망 이라는 이름의 뱀파이어를 만들어 낸다. 상현이 우연치 않은 사고로 뱀파이어가 되었다면 또한명의 뱀파이어는 상현의 욕망의 피를 먹고 자란 뱀파이어다.

비록 뱀파이어가 되었지만 상현은 신부로써 가지고 있던 높은 윤리의식 때문에 끊임없이 고뇌하고 갈등하는 뱀파이어 라면 상현이 만들어낸 욕망이라는 이름의 뱀파이어는 오직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다. 피를 빨기 위해서 사람을 사냥하는 것쯤은 뱀파이어로써 당연한 행동으로 받아 들인다.

박찬욱 감독은 이렇게 상현의 내면에서 싸우고 있던 욕망과 이성 을 현실세계로 끄집어 내어서 비교해서 보여준다. 아울러 욕망에 휩쓸릴 경우 이성이 어떻게 마비되고 어떻게 죄를 짓게 되는지도 보여준다. 욕망에 잠시 눈이 어두워서 살인이라는 큰 죄를 지었을때 그 죄로 인해 받게 되는 고통 또한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리고 사랑 또한 철저하게 욕망을 쫓는 사랑과 이성적인 사랑을 구분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욕망을 사랑이라고 착각 했을경우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 사랑이 어떻게 변질 되는지도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은 이러한 설정들을 통해서 전반부에 자신이 던졌던 질문들에 대한 해답들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상현은 바이러스 실험에 참가했던 500명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다. 카톨릭 신자들은 상현이 특별히 선택받은 사제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병으로 고통받는 자신들을 치유해 줄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 한다. 상현에게 기도를 받으면 당장 병이 나아지리라 착각 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허황된 이미지를 현실화 시켜 버린다. 이들이 상현을 이렇게 허황된 이미지로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 또한 이들의 욕망에서 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당연히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갈구할 수 밖에 없었고, 이들의 욕망은 이미 이들의 이성을 마비시킨지 오래 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이들의 집단적 욕망은 상현을 이미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신의사제로 상현을 추종한다. 이렇게 집단적인 욕망이 만들어낸 허황된 이미지를 상현은 자신의 성기를 보여 줌으로써 한방에 날려 버린다.

즉 다시말해 당신들이 그렇게 신의 사제로 믿고 있던 상현 또한 욕망에 충실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감독은 상현의 성기를 노출 시킴으로써 욕망의 상징을 대변한다. 궂이 이 장면에서 성기노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박찬욱 감독은 욕망을 어느정도 제어하지 못할 경우 즉 욕망의 노예가 되어 이성이 마비될 경우 인간들의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합리화 시키는지도 보여 준다.


 
박쥐 이 영화는 기존의 박찬욱 감독이 다뤄왔던 죄의식과 구원 선과악의 모호함 등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다만 이번에는 그 초점이 욕망과 욕망을 제어하는 이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박찬욱 감독은 상현 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욕망과 이성에서 부터 출발하는 선과악의 모호함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신부의 신분인 상현을 뱀파이어로 만드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서 관객들이 조금더 쉽게 자신이 던지는 질문을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감독 자신의 내면으로 부터 출발한 상현 이라는 인물은 욕망과 이성이 충돌하는 선과악이 공존하는 기형적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상현만을 박쥐라고 생각하진 않는듯 하다. 상현을 통해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박쥐와 같다고 주장하는것 같아 약간은 씁슬하다.

그리고 약간은 아쉬웠던 결말 부분은 결국 모든 문제는 인간들 자신의 내면의 욕망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이를 제어하고 수습하는길은 오직 자신의 희생 만으로 가능하다는 식의 메세지는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익히 봐왔던 흔한 결말이이서 약간은 아쉬웠다.



여하튼 박쥐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색깔이 돋보이는 영화다. 친절한 금자씨의 느낌이 강하게 베어나오긴 하지만 이 영화는 또한번 진화된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기괴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아울러 박찬욱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는 극단적인 상황속에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 세련되게 다가온다. 모든 설정이 극단적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공포영화의 느낌도 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객들 입장에서 굉장히 불편한 영화일 수도 있다.

이 영화가 개봉되면 많은 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고 관객들의 평은 극명하게 엇갈리게 될 것이다. 어차피 판단은 관객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ps : 영화를 보시고 나면 필자의 글 위에 있는 두개의 상반된 포스터가 상징하는 의미가 뭔지 공감하실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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