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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 (2009, 그렉 마크스)_기계보다 진화가 느린 영화

지난영화 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4. 3.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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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 출장 중 익명으로부터 최첨단 스마트폰을 받게 된 젊은 엔지니어 맥스. 그리고 한 통의 SMS 메시지가 전송된다. 귀국을 연기하고 하루 더 머물라는 문자. 다음날... 그는 자신이 예약했던 비행기가 공중 폭발했다는 뉴스를 목격한다. 문자 메시지는 이어지고 이번엔 프라하로 간 그는 카지노에서 거액의 돈을 거머쥔다. 모두가 원하던 꿈의 핸드폰이 배달됐다. 모두가 원하던 꿈의 정보가 손 안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감당할 수 있다면… 당신도 가질 수 있다.

영화 <기프트> 예고편
http://www.gift2009.kr/


알고 있겠지만 당신은 감시당하고 있다


도로에서, 후미진 골목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아파트 현관에서, 빌딩 안팎에서, 지하철 플랫폼에서...
한국의 도시에서 국민 1인이 하루에 CCTV에 노출되는 횟수는 약 80회. 우리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핸드폰과 신용카드는 우리의 인간관계 및 사생활과 업무, 경제상태를 기록하고 우리의 행적과 발자취를 모두 기록하고 분석하다 못해 '기계'의 존재는 이제 자체 데이터와 검색 기능를 이용하여 비행기 사고와 같은 잠재적 위험까지 예언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렇게 기계가 인간을 지배,감시하도록 놔두어도 좋을 것인가? 점점 도망칠 곳이 없어지는 이러한 '디지털 빅 브라더'의 시대에서 기계는 인간과 과연 (어느 선까지)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길 바랐던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일찌기(1940년, 자그마치 70년 전이다) 로봇 3원칙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로봇은 핸드폰이든 컴퓨터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계로 대체 가능하다)

1.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다치도록 방관해서도 안된다.
2. 제 1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3. 로봇은 제1,2법칙에 배치되지 않는 한, 자신을 지킬 권리가 있다.


로봇을 포함한 온갖 기계들이 이 원칙만 잘 따르도록 만들어진다면 인간은 안전할 수 있겠지만 기계의 치명적인 결점은 예기치 못한 상황, 복합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위의 세 가지 원칙에서 벗어나는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기계는 지극히 논리적인 방식으로 선택을 하게 되지만 위의 3가지 원칙을 모두 준수한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차원의 위험을 초래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법칙의 경우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물리적 위험'만을 전제하고 있으나 인간에게 있어 그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는 그 종류가 수없이 많으며 그 중 하나로 우리는 '자유'를 꼽곤 한다. (이 영화는 우리의 자유, 감시당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시 정답은 기계를 인간의 조종 권한 아래에 두어야 한다는 것일텐데 그러기엔 이미 인간은 기계에 우리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을 기대고 살아가는데 익숙해졌다.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 스케줄 등과 컴퓨터 하드디스크, 신용카드가 없이 당신은 단 하루라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가? '안전'과 '편안함'을 빌미로 나의 자유를 맞바꾸는 게 어느정도는 불가피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데 이 공포, 이미 익숙하다

문제는 이런 물음이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데 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는 디지털 빅 브라더 시대의 공포, 발신인을 알 수 없는 의문의 메시지를 보내는 핸드폰. 이렇게 인간을 위협하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과 기계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소설과 SF영화의 단골 소재였으며
1인 디지털 기기들이 증가하면서 점차 그러한 상상력의 상당부분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이미 일상화된 공포를 마치 새 것인양 포장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거다, 이 영화.

 가장 중요한 영화적 설정이 '예측가능한' 요인들의 혼합이라는 것은 그 위에 덧칠해진 로맨스와 액션, 로케이션 등의 볼거리가 차마 커버할 수 없는 커다란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슷한 종류의 영화들, 특히 작년에 <이글 아이>를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놀라웠던 영화의 소재들이 이런 저런 장식들을 걸친 채 고스란히 재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다소 맥빠지게 만든다.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즐기기엔 좋다

물론 나름대로의 미덕은 있다. 태국과 프라하, 모스크바를 오가는 로케이션과 액션 씬들도 볼만하고, 다소 급하게 끝나지만 클라이막스도 존재한다. 또한 영화의 오프닝,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감각적인 음악들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유발시키기도. 개인적으로 익숙한 캐스팅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신선한 재미를 주었던 배우들의 열연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어리바리한 듯 하면서도 묘한 매력의 남자주인공 맥스를 연기한 쉐인 웨스트와 전직 FBI형사이자 카지노 지배인 역을 맡은 에드워드 번즈는 이 영화 한 편으로 끝나기 아쉬운 파트너쉽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물들 간의 인연과 관계, 정체가 하나씩 밝혀지는 부분은 또다른 이야기의 한 축을 형성한다.

쉐인 웨스트

빙 라메스

에드워드 번즈


남자주인공의 로맨스를 위해 급,투입된 듯한 느낌의 캐릭터, 카밀라.



전작 <PM 11:14>로 호평을 받은 바 있는 그렉 마크스 감독은 좀더 유연하고 스케일이 커진 연출력을 보여주지만 가끔 호흡이 끊기는 부분이 눈에 띄는가 하면 윤리의식에 대한 자기반성과 같은 노골적인 메시지는 세련되지 못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려 하는 기계는 더이상 영화 속 대사처럼 '껐다 켜'는 방식으로 다스릴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고려해야 할 더 무서운 상대는 바로 '관객'이다. '짠, 이거 봐. 무섭지?'라고 놀래키려면 좀더 참신한 이야기로 영리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또 한 가지 지적을 하자면... 한국의 관객들이 무엇에 민감한지를 계산에 넣고 원제와 전혀 동떨어진 뉘앙스의 제목을 붙였으나 ('에쉴론의 음모' -> '선물'이라니..) 그 전략이 의도대로 먹힐지는... 잘 모르겠다는. (왠지 먹힐수도 있을 것 같다는 얘기다.;;)

전체적으로 어쨌든 '볼만한 액션스릴러'의 계보를 잇기에는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다이하드> 시리즈 팬들에게 특히 추천.

같이 봅시다! : 인간을 위협하는 기계 시리즈

1968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탠리 큐브릭 : 우주선의 반란
1983 <위험한 게임> 존 바담 : 핵전쟁 모의 실험 게임을 실제로 진행시키는 컴퓨터
1995 <네트> 어윙 윈클러 : 기록삭제로 신분을 빼앗기다
2004 <아이 로봇> 알렉스 프로야스 : 로봇 3원칙의 패러독스
2005 <스텔스> 롭 코헨 : 인간을 믿지 못하는 무인전투기
2007 <이글 아이> D.J. 카루소 : 신변을 위협하는 일상생활 속 전자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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