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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셔너리 로드 (2008, 샘 멘데스)_이세상의 모든 프랭크들에게 '위로'를..

지난영화 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4. 1.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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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한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과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뉴욕 맨하탄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교외 지역인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에 보금자리를 꾸리게 된 두 사람. 모두가 안정되고 행복해 보이는 길,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그들의 사랑과 가정도 평안해 보이지만, 잔잔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을 원하는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로의 이민을 꿈꾼다. 새로운 삶을 찾게 되는 것에 들뜨고 행복하기만 한 두 사람.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려는 찰나 프랭크는 승진 권유를 받게 된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파리로 가고자 하는 에이프릴, 그리고 현실에서 좀 더 안정된 삶을 살고자 하는 프랭크. 서로를 너무 사랑하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두 사람. 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10여 년 전 운명같은 사랑을 경험하고 얼음바다에서 생이별을 한 비운의 타이타닉 커플이 다시 만났다. ' 배우의 재회'가 일으키는 화학작용은 영화 안에서 묘하게 또다른 시각을 제공해 준다. 영화의 초반에서 갑자기 건너뛴 7년이라는 세월은 실제 우리의 시간 감각에도 그들의 모습이 함께 점프한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이다.

'잭'과 '로즈'의 눈밑 주름과 왠지 지친듯한 표정은 아름답기만 한 커플이 아니라  결혼 후 현실에 찌든 보통의 평범한 부부들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캐스팅이었다. 그렇게 아무리 아름다운 로맨스를 거친 남녀이더라도 결혼을 해서 7년을 함께 살고 나면 바로 이들처럼 되어 버리는 것일까. 사랑과 결혼, 이상과 현실, 꿈과 돈, 희망과 안정...왜 이 단어들은 언제나 서로 대립해야만 하는 것일까.



첫 장면에서 달콤한 음악이 흐르고 두 남녀의 눈이 마주친다. 둘은 곧 사랑에 빠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자마자 바로 화면이 바뀌면 아내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의 형편없는 연극 무대를 보며 곤혹스러워 하는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얼굴이 화면 가득 들어온다. 프랭크의 말대로 연극이 후진 것도, 그녀가 연기를 못하는 것도 자신의 탓이 아니다. 이성적이지만 예민한 그들의 말싸움은 거칠고 과격하다. 한창 싸우다가도 'stop talking'을 요구하는 그녀 때문에 그는 더 화가 난다.

둘이 화해하게 되는 계기는 깨끗하고 정돈된, '교양인들의 동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에이프릴이 남편과 함께 새 집과 만나게 된 날을 떠올리게 되면서다. 아랫동네와는 '수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부동산 중개업자 헬렌의 말도 그저 자신들을 축복하는 말로만 들렸던 그 때.

하지만 자신들이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에 젖어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신만의 삶'을 살기를 원했던 남편과 자신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남편에게 먼저 사과한 에이프릴은 남편이 다시 가보고 싶은 유일한 곳이라는 파리에 가자고 제안한다. 안정된 직장과 예쁜 집, 자동차... 성공의 지표와도 같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동안 자신이 일해서 돈을 벌겠다며 남편을 설득하고 파리로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부부는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기차를 타고 도시로 출근을 하는 회색 정장의 모자부대 행렬 속에서 그저그런 회사원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프랭크도
그 어느 때보다 마음 편하게 일을 한다.

그 희망과 설렘만으로도 그들의 일상에는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예상치 못했던 임신과 회사 승진 제안.
프랭크는 파리로 떠날 결심을 두고 고민하게 된다.

이들 부부가 파리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주변 인물들의 반응은 모두 '아하..하... 그래, 모두들 그런 생각을 한번쯤은 해 보지. 하지만 다들 실제로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 지금까지 이룬 모든 걸 버리고 떠나다니, 너무 즉흥적인 발상 아니야?' 였다.

1955년의 미국, 그리고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일상과 이상을 저울질하며 다달이 돌아오는 월급봉투에 꿈을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수많은 이 땅의 샐러리맨들중 그런 생각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면 못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갖은 핑계를 대며 자신의 용기없음을 합리화하고 마는 거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니까.

하지만 그런 부부를 유일하게 이해해 준 사람은 헬렌의 정신병자 아들 '존' 뿐이었다. '공허하고 희망없는 삶'을 거부하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게 미치는 거라면 기꺼이 미치겠어!'라고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다짐하지만 역시 미치지 않고서야 보통 안전한 현실에 굴복하고 마는 거다.

좌절한 에이프릴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할 때가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가 미친 듯 발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건 내 보기엔 '억울함'이다. 적어도 남편만은 이해해 줄 줄 알았던 새로운 삶에의 희망이 철저하게 배신당한 거였다. 남편은 승진을 하고 집, 마누라, 아이들, 차를 얻었지만 자신은 좋아하던 연기를 계속 할 수 없고 언제나 집안일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앞으로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는 예감은 그녀가 차라리 죽고 싶게 만들었을 법 하다. 남편에게 처절하게 매달려 보기도, 화를 내보기도 하지만 남편은 결국 자기 말만 하고 만다.
'stop talking, stop talking.. please'...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꿈을 포기하는 과정마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삶의 재미를 찾아가며. 프랭크 휠러의 옆집 부부처럼 무난하게. 하지만 모두들 부러워 하는 '교양있고 아름다운 젊은 부부'가 아닌 진취적인, 생기있는 삶을 사는 인생의 주인이고 싶었던 것이다. 에이프릴은.

아, 왜 모두들 저렇게 그냥 행복할 순 없는거야..ㅜㅜ 너무 예쁜 장면.



우리 대다수는 에이프릴이 아니라 프랭크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 모두 일탈을 꿈꿔보지만 현실도 그다지 나쁘진 않다고.. .꿈은 꿈일 때 아름다운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프랭크는 그 누구보다도 활력있고 매력적인(예술적 기질이 강한) 여성의 사랑을 받았지만 스스로는 정작 평범했기 때문에 그녀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뭐, 프랭크 입장에선 딱히 잘못한 것 없이 억울하게 됐지만.

수학박사였지만 37번의 전기치료끝에 수학능력만 잃어버린 '존'이 유일하게 에이프릴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이제 그들은 더이상 사랑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게 됐다. 과격한 이상주의자는 현실을 버렸고 남겨진 현실주의자는 사랑을 잃었다. 이것은 당시의 미국 중산층만이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다수 사람들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샘 멘데스는 언제나 평범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상처가 곪아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데 능한 감독이었다. 다들 매일 상처받고 외롭고 지치지만 '그렇지 않은 척' 하고 살아가는 거다. 미쳤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게 정답이라고 암묵적 동의를 하고서. 아이들을 보며 슬프게 웃는 프랭크의 마지막 미소가 우리들의 우울한 자화상 같아서 못내 가슴아프다. 프랭크와 에이프릴 이야기를 추저분하게 늘어놓는 헬렌의 목소리를 듣기 싫어 가만히 보청기 볼륨을 낮춰버리는 그의 남편처럼 세상엔 뻔하고 찰나적이고 가식적이고 금세 흘러가 버릴 가벼운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제발 우리 모두 'stop talking...'. 꿈꾸고 행동하고 용기내지 못할 바에야.
STOP.

케이트 윈슬렛의 세심한 심리변화와 연기도 좋았지만 못지않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빛이 난다. 왠지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현실에 발을 가깝게 붙이고 있는, 그런 역할에 잘 어울리는 배우. 오랜만에 가슴 짠하고 숨이 턱 막히는 영화. 역시 이런 영화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보는 기분이 최고.





같이 봅시다!
'위기의 부부' 이야기
아메리칸 뷰티
감독 샘 멘데스 (1999 / 미국)
출연 케빈 스페이시, 아네트 베닝, 도라 버치, 웨스 벤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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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프롬 헤븐
감독 토드 헤인즈 (2002 / 프랑스, 미국)
출연 줄리안 무어, 데니스 퀘이드, 챈스 켈리, 데니스 헤이스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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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디카프리오와 윈슬렛
타이타닉
감독 제임스 카메론 (1997 / 미국)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빌리 제인, 캐시 베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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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낭만적 사랑'의 끝을 보여주었던 커플이 결혼 후 현실에 부딪히는 광경이라니, 마음이 곱절로 쓰리다.;;

정신병에 걸린 수학자, 또 다른 '존'
뷰티풀 마인드
감독 론 하워드 (2001 / 미국)
출연 제니퍼 코넬리, 러셀 크로우, 셰릴 하워드, 켄트 카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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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인물 노벨상 수상자, 존 내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2009/03/17 - [신씨의 리뷰/영화] - [영화] 뷰티풀 마인드 (2001, 론 하워드)_광기를 요리하는 사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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