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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영화리뷰

매트릭스의 창조적 변주, '써로게이트'(스포포함)

by 朱雀 2009. 10. 14.

- 결정적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을 미리 밝히는 바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별다른 정보 없이 그냥 뭔가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이 마음에 들어 영화관에 들렀다. 그리고 꽤 흥미롭게 영화를 보게 되었다.


<써로게이트> 전 세계 대부분이 인간이 일종의 로봇을 통해 모든 대외활동을 하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사람들간의 대화도 심지어 직장도 사랑도 써로게이트를 통해 대신 이루어진다.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사고도 위험에서도 ‘안전’하다는 것이다.


만약 차사고나 총을 맞아도 내가 아닌 로봇이 맞은 것이기 때문에, 그냥 접속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공각기동대>와 <매트릭스>에선 주인공들이 네트에 접속한 것과 달리, <써로게이트>에선 인간들이 로봇에 연결해 현실세계를 대신 살도록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써로게이트>에서 인간은 완벽하다. 그들의 피부는 한점 티없이 매끈하고 모두 잘 생기고 멋지고 예쁘다. 그러나 모든 곳이 SF영화의 시작이 그렇듯, 이 사회에도 음모가 끼어든다.


‘써로게이트’를 발명한 칸터 박사의 아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리어 요원(브루스 윌리스)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매달리게 된다. 그러면서 거대한 음모와 조우하게 된다.


영화의 스토리는 전형적이다. 그러나 묻는 질문은 가볍지 않다. <써로게이트>의 세상은 방식만 다를 뿐이지, 이미 우리 생활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중이다. 우린 ‘아바타’를 만들어 온라인 상에서 새로운 삶을 체험하고 있다. 실제 삶에선 별볼일 없던 ‘내’가 온라인에만 접속하면, 왕이 되고 모험자가 되고 각광받는 누군가가 된다.


우린 그런 나를 유지하기 위해 실제와 마찬가지로 돈과 노력을 쓴다. 그속에서 몇몇은 자신의 성까지 바꾸며 즐긴다. <써로게이트>는 그런 온라인속 가상사회가 일상화된 오늘날의 자화상을 ‘다른 현실’로 살려놓는다.


‘절대 안전’하다던 ‘써로게이트’는 군이 인명살상을 목적으로 본체를 죽이기 위해 연구를 하던 절대무기가 등장하면서, 파국을 예고한다. <매트릭스>에서 가상세계에서 죽으면 실제사회에서 죽듯이, <써로게이트>는 특수한 무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집안에서 ‘안전’하게 있던 인간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브루스 윌리스는 ‘써로게이트’를 공급하는 VSI사와 ‘써로게이트’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인간들 그리고 칸터 박사 사이에서 죽을 정도로 고생한다. 써로게이트로 범인을 쫓던 그는 범인을 놓친 다음, 정직을 먹는다. 할 수 없이 그는 자신의 생몸을 이끌고 그곳을 찾는다.


하도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는 브루스 윌리스는 광장공포증을 느낀다. 모두 사람처럼 움직이긴 하지만, 그들주에 진짜 사람은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형’들이 움직이는 세상에서, 기계문명을 거부한채 19세기로 퇴보한 삶을 살아가는 곳에서 그는 묘한 평화로움을 얻는다.


<써로게이트>에선 극단적인 상황만이 연출된다. VSI사는 뭔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칸터박사를 죽이려고 한다. 반대로 칸터 박사는 중증 장애인을 위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써로게이트가 인간을 피폐한 삶으로 인도해버리자, 회의를 느끼고 이를 파괴할 계획을 추진한다.


그 와중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인류의 구원’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써로게이트’의 종말을 몰고 온다. 교통 사고로 아들을 잃은 이후 세상과 단절하고 살아가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서.


영화 마지막에 모든 써로게이트가 쓰러지고, 인간들이 집에서 나와 세상을 보며 경이로워 하는 표정은 매우 인상깊다. 또한 파괴된 써로게이트가 언제 복구될지 알 수 없다는 아나운서의 말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아마 <써로게이트>는 영화상에선 언급되지 않지만 다시 재건될 것이다. 한번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맛본 인간들은 ‘중독자’들처럼 그것을 찾을 것이다. 네트워크가 깔려 원한다면 언제든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나날이 외로워져 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풍자 서사시 그게 바로 <써로게이트>였다.


칸터 박사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추격할 때의 중력을 거부한 써로게이트의 몸짓에서 할리우드식 ‘액션’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허나 너무 짧아서 아쉽다. 좀더 액션 장면을 많이 넣었더라면 <매트릭스>처럼 좀 더 많은 이들이 재밌게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액션을 즐기는 자들은 액션을, 영화의 내용을 곰씹고자 하는 이들에겐 나름대로 즐거움을 줬을 텐데, 영화는 너무 내용을 곰씹기를 요구한다. 그점이 다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