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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9 (2009, 네일 블롬캠프)_비주류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거죠~

최신영화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0. 1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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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9 (2009, 네일 블롬캠프)_비주류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거죠~

 

디스트릭트 9 - 10점
네일 블롬캠프

남아공 상공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은 요하네스버그 인근 지역 외계인 수용구역 ‘디스트릭트 9’에 임시 수용된 채 28년 동안 인간의 통제를 받게 된다. 외계인 관리국 MNU는 외계인들로 인해 무법지대로 변해버린 ‘디스트릭트 9’을 강제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중 책임자 비커스가 외계물질에 노출되는 사고를 당한다.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면서 외계인으로 변해가는 비커스. 정부는 비커스가 외계 신무기를 가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비밀리에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정부의 감시시스템이 조여오는 가운데, 비커스는 외계인 수용 구역 ‘디스트릭트 9’으로 숨어드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클라이맥스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는 간만에 정신 쏙 빼도록 흥미진진한 SF무비. 인간을 변주한 이러저러한 크리쳐들을 등장시키는 이야기에 서사를 더할 줄 아는 피터 잭슨의 안목은 전혀 생소한 이름의 남아공 영화감독(네일 블롬캠프)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을 대흥행시키는데 큰 힘이 되었을 듯. 지금까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질리도록 보아왔던 영웅 캐릭터나 스타급 주연배우를 단 한 명도 출연시키지 않으면서도 이만한 흡입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외계인이라는 제3의 존재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이 더해진데다 실감나는 스토리전개가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의 외계인 SF물의 중심무대가 미국의 어느 대도시였다는 점부터 비껴가는 이 영화는 다소 모자라보이는 엉뚱한 인물이 외계인 거주구역의 철거팀을 지휘하게 되는 다큐멘터리의 구성을 차용하면서 시작된다. 어설픔이 줄줄 흘러넘치는 이 주인공, 비커스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재난영화 혹은 SF 영화 속에서 지구를 지켜낸 영웅들과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인다.

의욕이 넘치나 야무지지 못한 비커스는 실수로 유동체를 건드리게 되고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한쪽 팔이 외계인의 그것으로 변화하게 되면서 외계인의 DNA에만 반응하는 무기를 조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커스의 몸, 아니 정확하게 말해 그의 팔 혹은 손이 필요해진 외계인 관리국에서는 그를 사로잡기 위해 혈안이 되고 그는 언론플레이에 의해 점차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아 결국 디스트릭트9에 숨어들게 된다.  




순진한 주인공과 그를 이용하려는 권력과의 싸움, 주인공의 고군분투.. 이쯤되니 자연스레 영화 <괴물>이 떠오른다.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안 됐는지도 모른 채 수술대에 누웠다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는 <괴물>의 주인공 강두(송강호)처럼 비커스는 무기 실험에 억지로 끌려갔다가 도망치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공권력과의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게 된다.

물론 그 안에서 괴물과 친구가 되느냐, 괴물 그 자체가 적이 되느냐, 가족과 힘을 합치느냐, 가족들로부터도 외면을 받느냐 정도의 차이가 갈리게 되지만 왜곡된 언론과 사람들의 눈초리를 피해다니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강두와 비커스의 모습은 상당부분 겹쳐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에서도 언급이 되지만 외계인들의 우주선이 멈춘 것이 뉴욕이나 시카고, LA가 아니라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라는 설정은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모든 것이 인간의 관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상기시킨다. 그 어느 곳에서보다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으로 알려진 요하네스버그에서 가장 천대를 받는 인종은 영화 속에서만큼은 흑인이 아니라 외계인이다.

긴 세월 동안 백인에게서 냉대를 받아왔을 흑인들 마저 외계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배척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이 생겼을 때 그 나머지는 그것에 대항하는 한 가지의 공통점을 스스로 발견해 똘똘 뭉치고 그들과 다른 존재를 기어이 몰아내고자 단결한다. 주류와 비주류, '같음'과 '다름'에 대한 인식은 간사한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상대적으로 변동이 가능한 것이다.

디스트릭트9에서 외계인을 상대로 암거래를 하는 흑인들이나 비커스를 기어이 찾아내 무기를 개발하려는 공권력이나 대중을 미혹시키는 잔인한 언론플레이나 사실 구차할 정도로 치사하고 잔인한 건 역시 외계인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촉수를 날름거리며 폭력적으로 묘사되는 외계인은 물리적으로 흉한 외관(그것도 물론 인간의 기준에서이긴 하지만)을 가지고 있지만 진정으로 추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 것은 인간 집단인 것이다.




이 영화가 두려운 이유는 인간과 외계인 둘 중 어느 집단을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 때문이다. 그 어느 쪽도 온건하거나 타당해 보이지 않고 비이성적으로 보이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상황이 언제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인간 대 외계인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 사이에서도 충분히)이 가장 끔찍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발랄하고 가끔 터무니없이 감상적인 장면들도 몇몇 등장하지만 인간들의 욕심과 이기심을 풍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형벌은 (아마도 속편에서) 외계인 군대의 지구침공이 될 것이다.

정교한 CG와 화려하고 스피디한 편집 등 피터 잭슨의 명망에 어울리는 블록버스터 다운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이 영화는 보고 나면 찜찜하기 이를 데 없다는 측면에서 대중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찌질해 보이는 인간 주인공 비커스에게도, 끔찍한 외관의 외계인에게도 감정 이입을 하기란 영 쉽지 않다. 하지만 왠지 모를 현실감이 느껴져서 다가오는 공포나 두려움이라는 측면의 영화적 재미를 전달해 주기도 한다.

이것이 비록 대중적인 코드는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보아왔던 외계인이 등장하는 SF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싶어하는 관객에게는 분명 큰 즐거움을 선사할 영화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속편은 사실 그다지 기대되지 않는다. (<매트릭스> 마지막 편에서 묘사됐던 우주전쟁 같은, 혹은 그보다 훨씬 살벌하고 스케일 큰 CG장면들로 도배되어 있을 것이 뻔하니.) 하지만 이런 기상천외한 영화를 만들어낸 이 신인 감독의 다음 작품은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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