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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vie review

<전우치>도술에만 집착하다 이야기와 캐릭터는 잃어버렸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14.


<전우치>를 보러 가기전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어느 영화보다 컸다.
그도 당연한게 최동훈 감독의 전작 <범죄의 재구성><타짜>는 자타공인 인정받았던 이야기와 캐릭터가 살아있었던 작품이다.감독은 전작들에서 캐릭터는 잘 살리면서도,이야기도 흥미롭게 끌고갔으며,거기에 조연캐릭터로 이야기의 힘을 보태는 능력이 탁월했다.단지 배우 개인 능력으로 캐릭터 해석을 잘 했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시나리오 자체가 힘이 있어서 포인트를 잘 짚어 주었던 면들이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전우치>에는 김윤석과 백윤식,염정아,유해진등 최동훈 영화에서 빛을 냈던 배우들이 가세했고,강동원과 임수정이라는 한국연예계에서 나름대로의 파워를 가진 배우를 전면에 내세웠다.
장르도 국내에서는 쉽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환타지가 가미된 무협물에 제작비는 100억원대.
최동훈 감독의 3연타석 홈런을 기대하는 마음에 이 모든게 더해지면서,<전우치>는 왠만한 영화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영화였다.


100억원대의 한국형 히어로 무비를 표방한 <전우치>를 보고나서 처음 든 생각은 "이게 뭐냐?"하는 생각이었다.
기본적으로 재미도 별로 없지만 더 문제는 성의가 없다는 점이다.
CG등이 유치해서 성의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제작기간이 2년이라고 감독이 무대인사에서 밝혔는데 내가 언론시사회에서 만난 <전우치>는 후반작업을 제대로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무성의했다.가편집본을 보는건가 싶을 정도로 편집 흐름이 안 맞고,중간에 커트된 장면도 많아 연결도 부자연스럽다.또 음향작업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대사와 화면이 너무 안 맞는다.대사는 스튜디오에서 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게 웅웅 울리면서 들리는데 화면은 저잣거리의 시끄러운 장면이 나오는 식이다.동시녹음으로 극복해야 했다는 그런 지적이 아니라 후반작업이 원활치 않았다는 느낌이 비전문가인 내눈에 보일 정도라는게 문제인 거다.2년이란 제작기간이라더니 후반작업은 쫒기면서 진행된건가?


시나리오와 캐릭터등의 재미를 짚어본다면 <전우치>는 감독의 전작들과는 상당히 거리감이 들 정도로 산만하고 난잡하다.요괴,만파식적,천관대사 와 망나니 제자 전우치,천관대사의 라이벌 화담 등 과거의 장면에서의 전개는 그럭저럭 흥미롭고 CG등도 제작비규모에 맞게(100억원대에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급의 CG를 바라는건 욕심이다) 볼만한 도술장면과 와이어 등을 보여준다.

그런데 영화에서 포인트를 두어야 할 인물인 전우치 와 화담, 이 두 사람의 캐릭터가 살지 않으면서 중반 이후 현대로 넘어오면서는 이야기가 상당히 단조로워 지며 지루함이 든다.만파식적에 대한 욕망에 끌려 화담이 변해가는 과정속에서의  갈등같은건 애초부터 신경도 쓰지 않았다.어느 순간 캐릭터가 변했다는 식이다.그리고 전우치를 시기하며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의 힘에 이끌리듯 알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히는 선과 악의 양면성의 인물따위는 그려지지도 않는다.그저 도술 쓰는 도사만 보인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전우치라는 캐릭터도 영화 속에서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이 아닌 혼자 겉돈다는 느낌만 들었다.다른 캐릭터들과 다르게 혼자 마당놀이의 풍월을 하듯 "이제부터 좀 변해볼까!" 하는 톤의 대사만 날린다.그리고 장난이나 치며 도술을 보여주는것 외에는 아무 개성이 안 보인다.


보도자료에서 최동훈 감독은 "도술실력은 뛰어나나 거짓말도 잘하고 놀기 좋아하는 악동 영웅 전우치같이 흥미로운 캐릭터가 왜 이젯껏 힌번도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들었을 정도이고,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했다"고 밝혔다.

홍길동전과 함께 전우치전은 한국고전에서 도술등을 쓰는 비슷한 소재의 소설이지만,전우치는 유독 드라마나 영화에서 조명을 못 받은 편이다.이 부분은 아마도 홍길동이란 캐릭터는 신분과 사회제도에 저항하는 면이 보이며 도술보다는 사회적인 면에 접근한 내용이라면,전우치는 기본적으로 악동스럽고 장난끼 넘치며 개인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캐릭터의 차이점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도술을 구현하는데 기술적인 문제도 클테니 그동안 조명 받기 힘들었을텐데,최동훈 감독은 100억원대라는 거대자본을 밑바탕으로 한번 제대로 놀아보며 상상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그러나 <전우치>는 도술외에 그다지 흥미로운 이야기나 캐릭터가 안 보이는 그야말로 도술향연에 매몰되어 버린 영화이다.


뭐 이리 매몰차게 비난을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난 단호히 말하고 싶다.
"한국영화에서 2년이라는 제작기간과 100억원대의 제작비를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라면 더욱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고,적어도 블록버스터라는 스타일로 등장했다면 기본적으로 강렬한 쾌감을 동반한 재미를 어떤 면에서라도 주어야 한다.그런데 <전우치>는 그런게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전우치>를 보고나니 2편의 영화가 떠올랐다.한 편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이고 다른 한편이 <홍길동의 후예>.<전우치><아라한 장풍대작전>의 도시형 무협액션에서 그다지 발전한 모습도 안 보이고,비슷한 장르로 선점효과를 노린 단타기획영화 <홍길동의 후예>보다 솔직한 심정으로 실망스러웠다.적어도 <홍길동의 후예>에서는 캐릭터들의 액션이나 소재의 재해석자체는 <전우치>보다 좋았다는 생각이다.

실망스러웠던 <전우치>에서의 찾을수 있는 미덕은 족자 봉인장면같은 CG나 과거장면에서의 새로운 퓨젼장르물의 가능성 정도인데,이 정도 미덕을 극장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분에게는 추천하고 싶다.물론 배우들의 팬들이라면 만족스럽게 보실 요소도 있다.
하지만 앞서 내가 말한 기대치 부분에 대한 면을 보고 가실거라면 대폭 기대치를 낮추시라고 말하고 싶다.그렇지 않고 보신다면 분명히 실망감이 적지않을 것 이다.

*2009년12월2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