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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의 계곡>사람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진실에 대한 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7.


'지옥같은 그 곳에서 내 아들이 죽었다...'라는 카피문구 와 <엘라의 계곡>이란 제목.
당신은 엘라의 계곡이 뭔질 아는가? 또 카피문구와 제목 사이의 연관성이 머리에 떠오르는가?
바로 무엇인가를 떠올린 분이라면 상당히 박학다식한 사람이거나 성경적인 지식이 풍부한 사람일 것이다.그만큼 <엘라의 계곡>이란 제목에선 이 영화의 포인트를 찾을수 없으며,영화감상을 통해 제목과 내용을 연결시켜야하는 영화이다.


"여기서 꺼내주세요"
어두운 스크린,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들의 절박한 외침.
이라크 전쟁에 참전후 귀환했던 아들이 외출 후 부대에 돌아오지 않았다.아버지는 직접 아들의 소식을 알아보고자 간다.그런데 아들은 끔찍하게 살해된채 발견된다.아들을 죽인 건 누구인가?그리고 왜 죽었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엘라의 계곡>의 스토리는 꽤 단조롭다.연출도 숨 쉴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긴장감을 조성하지 않으며,눈물샘을 자극하는 스타일도 아니다.영화의 시각 역시 시종일관 차가우며 자칫 감정적으로 흐를것 같으면 냉정을 되찾는다.이토록 건조함을 유지하는 <엘라의 계곡>은 그 건조함 속에 묵묵히 하나의 길을 걸어가며 관객이 한 가지를 지켜보길 요구한다.신념과 믿음이 깨지도록 만드는 진실을 마주쳤을때의 인간의 모습을.


<엘라의 계곡>은 성경에서 차용한 제목으로 구약성서의 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3천년 전 다윗과 골리앗이 싸웠던 장소이다.
영화에서 이 제목을 사용한 건 다윗이라는 인물을 보기 위함으로,보통의 사람들은 다윗과 골리앗의 전설을 이야기 할 적에 항상 골리앗에 맞선 다윗의 용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그러나 폴 해기스 감독은 시각을 달리하면서 말한다.'어린 소년 다윗을 손에 피를 묻힌 살인마로 만든 것이 정당한가?왜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으며 아무도 책임은 지지 않는가?'감독은 자신의 공포감을 이긴 다윗의 이야기를 용감한 소년의 영웅담으로 보기를 거부하고 다윗이 공포감을 느끼게끔 내버려둔 자들에 대한 책임에 대해 주목한다.

"전부 엉망이죠?"라고 반문하며 망가져버린 삶에 대한 후회하는 모습,이렇게 사느니 죽는게 나을거 같다면서 내가 죽이든지 죽든지를 말하는 자책감의 모습.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의 모습도 이런 참전군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너무나 변해버린 참전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왜 전쟁에 참전했는지의 목적,단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른 것은 덮어도 되는가의 정당성,그리고 국가를 위한다는 대의를 위해 이유와 목적도 모른채 살인자가 되어버린 젊은이들에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에 대한 감독의 의문.왜 아무도 책임을 지지않는가?


<엘라의 계곡>은 어찌보면 조금은 흔해빠진 단순한 전쟁후유증 소재영화 또는 반전영화라고 볼 수도 있고,이런 영화를 왜 만드나 물을 수도 있다.하지만 <엘라의 계곡>은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며 알리고자 하는 사회적 의무를 행하며 우리에게 진실을 회피하지 말라고 말한다.자신이 보고싶어 하는 것만 보고,자신이 원하는대로만 사실을 해석하는 얼마나 위험한지.

전쟁영웅이라는 면보다는 전쟁에 보낸 이들에 책임에 대해서 물으며 사람들이 누구나 알지만 피하고 싶어하는 진실에 대한 영화 <엘라의 계곡>.
영화적 의무와 진실에 대한 시각을 보고자 하는 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로,그 무게감이 상당하지 않을까 걱정하신다면 그런 걱정은 접어놓으라고 말하고싶다.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자들로 이미 연기에 정점을 올라선 토미 리 존스,샤를리즈 테론,수잔 서랜든의 연기력과 아카데미 작품상,각본상 수상자인 폴 해기스의 연출과 각본.이 조합은 상당한 무게감의 영화를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전달이 가능하도록 조율해 놓았다.특히 2009년 상반기에 <그랜토리노>를 만족스럽게 보신 분에겐 하반기 <엘라의 계곡>도 놓칠수 없는 작품이 될거라고 말하고 싶다.

*2007년 미국개봉작인데 우리나라에는 뒤늦게 수입되었다.그러나 이라크전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2009년12월1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