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난 후 멍한 상태에서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단어는 "충격"이었다.
신극장판 에반게리온의 두번째 이야기 <에반게리온-파>가 나에게 준 느낌은 충격!
제목의 파(破)라는 한자 의미 그대로 <에반게리온-파>는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고 무너뜨렸으며 그걸 통해 진화했으며 그 진화의 현장을 우리에게 보여줌과 동시에 그 진화가 여전히 진행형임을 보여주었다.분명 이번 극장판은 나뿐만이 아닌 대다수 에바팬들에게도 비슷한 충격적 체험을 전해주었을거라 믿는데,더욱 충격적이었던건 이미 본편으로 충격을 받은 상태에다 엔딩송 "beautiful world"가 흐르고 차회 예고편 직전에 나오는 롱기누스의 창 장면에서는 거의 경악에 지경에 이르는 체험을 했다는 사실(다른 분들도 비슷할거라 믿는다).
이쯤 잡설을 늘어놓다보면 에바팬들이 아닌 일반분들이 이런 의문을 한번 던져봄직할거다.
"도대체 에반게리온이 뭔데 이렇게들 난리야?"
세 번째 소년 이카리 신지 “전 에반게리온 초호기 파일럿,이카리 신지입니다!”
"당신은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나요?그렇다면 왜 좋아하나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각자 할 말들이 많을텐데 나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네,많이 좋아합니다.무엇보다도 신선한 접근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1995년 만들어진 TV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통해 내가 느낀 좋았던 점은 불완전함이었다.기존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었던 불완전한 캐릭터 신지,레이,아스카.
타인과의 관계,마음의 벽등 사람사이의 관계를 통해 이 불완전 캐릭터들이 성장하며 소통을 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과정속에 성경등의 요소를 차용해서 신화적인 면을 변형적으로 구축해낸 점이 마음에 들었으며,'타인'과 '소통'이라는건 결국 내 자신의 마음이고,그 마음을 보며 한 단계 더 성장해나감을 보여준 점을 알려준게 좋았다.(난 그래서인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보다는 TV시리즈의 엔딩을 더 좋아한다)
그렇다면 이번 신극장판을 통해 더욱 도드러진 정서를 기존 시리즈에 넣어서 해석한다면 바로 성장이 아닌가싶은데,기존시리즈에서도 강조된 '성장'은 변형된 모습으로 캐릭터를 통해 더욱 진화되어 보여진다.
첫 번째 소녀 아야나미 레이 “더 이상 신지가 에바에 안타도 되게 할거야”
분명 2007년작 <에반게리온-서>는 기존 TV시리즈 1-6화의 리빌드다.리빌드임을 강조했다는건 기존의 흐름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넣어주고 싶었다는게 주 목적이었는데,제작진은 이 흐름에 마지막 장면 하나를 집어넣음으로 이후 작품은 기존 흐름과 다를것이라고 선언한다.(이미 제목부터 파 를 사용했을정도이니)
이후 약간씩 공개되던 <에반게리온-파>의 정보에서 신캐릭터가 등장하고 <에반게리온-서>의 마지막 예고편등을 고려해도 <에반게리온-파>가 아주 파격적이진 않을거라 추측을 하며 기존 질서의 유지를 생각하신 분들도 많았을테고 나도 그랬다.
그러나 <에반게리온-파>는 이미 우리의 생각영역을 넘어선 작품으로 에반게리온식 표현을 해본다면 우리의 생각한계를 넘어서며 기존 작품의 주박을 벗어내고 폭주한 작품이다.기존시리즈에서 캐릭터와 사도등 몇가지 설정만 가져온채 전체적인 이야기는 재가공해낸 영화 <에반게리온-파>.단순히 새로운 에바와 파일럿만 나왔다는 것정도는 이제 별 이야기꺼리가 안 될 수준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두 번째 소녀 시키나미 아스카 랑그레이 “인류를 구하는 건 나 혼자로도 충분해요.”
<에반게리온-파>를 통해 기존 에바팬들에게는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를,새로 보는 분들에게는 하나의 영화로서의 재미를 주고자 한게 제작진의 원론적인 설명이었다면,본질적인 영화의 목적은 진정한 에바를 만들어보자가 아닌가 싶다.
그 정도로 <에반게리온-파>는 기존의 팬들에게는 너무나도 황홀한 시간을 제공하는 행복한 시간이지만,새롭게 보는 분들에게는 <에반게리온-서>에 비해 몇배의 부담감만을 던져줄 작품이라 여겨진다.
사실 사해문서,at필드,제레,인류보완계획,세컨드임팩트등의 용어를 모르고 본다는 어려움은 둘째치고,기존 시리즈에서 변주되어 재가공된 이야기를 비교하면서 볼 수 없다는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예측 불가능한 정체,수수께끼의 인물 나기사 카오루 “처음 뵙네요. 아버지”
난 <에반게리온-파>를 언론시사회 와 개봉날등 2차례 감상을 했는데 언론시사회후 리뷰를 해야하나 고민을 느꼈다.에반게리온이란 작품자체에 리뷰라는 행위는 무의미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너무나도 두터운 팬층과 전문적 시각,그걸 뻔히 아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적는게 참 난감했으며,이 작품을 재미있네 없네 라는 잣대를 댄다는거 자체가 좀 우스웠다.
이제 나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 <에반게리온-파>를 통해 한 단계 성장했으며 진행되지 않던 27번 트랙은 시작되었다.비록 <에반게리온-파>의 엔딩과 차회예고편까지 보고나면 '이제 또 기다려야 하는구나'란 탄식이 들테지만 아쉬움은 잠시 접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자.기다림의 고통만큼 우리에게 주는 열매는 달콤할테니 이번에야말로 신지가 행복해질지 기대를 해보자.
신원 불명의 소녀 마키나미 마리 일러스트리어스 “하지만 재미있으니까 괜찮아.”
*2009년12월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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