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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영화 리뷰

<솔로몬 케인>너무나 폼을 잡는 저가형 판타지 액션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23.


엄청난 폼으로 무장한 솔로몬 케인

세상이 암흑과 혼돈으로 휩싸인 시대, 악마에게 맞설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맞선 자가 하나 있으니 그 이름 솔로몬 케인. 그는 쌍칼만으로 맞서기엔 심심한지 쌍권총까지 갖추었고, 폼이 중요하기에 모자와 의상에도 신경을 쓰고 전장에 나섰다. "저 시대가 언제인데 총이 있는 거지?" 이런 의문을 가지는 자, 바로 버려야 한다. 악마와 대결하는 판국인데, 총이면 어떻고 광선검이면 어떤가! 판타지 액션물이니 판타지 한 상황과 액션이 나오면 되는 것이다. 물론 최소한의 개연성과 몰입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예고편에서부터 폼을 상당히 의식하는 듯 하던 <솔로몬 케인>. 솔직히 폼만이 아닌 대사까지 너무나 장엄하길래 너무 오버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꽤 그럴듯해 보이던 예고편 영상과 제이슨 스타뎀을 연상시키는 목소리 톤과 분위기, 그리고 쌍권총과 쌍칼의 스타일리쉬 해 보이던 액션. 판타지 액션물이란 장르에 B급스러움을 더해서 살육과 무자비한 액션이 나올 거란 기대감을 가졌었다. 그러나 극장화면을 통해 만난 <솔로몬 케인>은 B급 판타지 액션물이란 태생을 잊고, A급 영화를 흉내 내다 가랑이가 찢어진 영화였다.


저주, 참회, 그리고 복수

전투와 약탈을 벌이며 살아가던 솔로몬 케인. 어느 날, 부하를 구출하러 간 성에서 그는 악마와 대결을 벌이게 된다. 결과는 당연히 패배. 간신히 탈출한 솔로몬 케인은 악마의 저주를 받게 된다. 솔로몬 케인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 다시는 아무와도 싸우지 않는다는 맹세를 하며 여정에 오르게 되고, 여정 길에 만난 윌리엄 가족에게 가족의 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악마의 군대는 윌리엄 가족을 몰살시키고, 솔로몬 케인은 다시금 칼을 잡으며 자신의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 끌려간 윌리엄의 딸 메리디스를 구출하기 위해 분노의 전쟁을 시작한다.

<솔로몬 케인>의 시놉시스를 요약한다면 저주, 참회, 복수로 이어지는 구조다. 저주 받은 솔로몬 케인이 참회의 길을 걸으면서 악마의 유혹을 피하나, 다시금 칼을 잡게 되는 동기가 갖추어지고, 이후에는 무자비한 복수가 시작되는 이야기 구조. 이야기에서 어떤 반전 등 정교한 플롯은 안 보인다. 이런 단순한 구조의 B급영화였던 <솔로몬 케인>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한 가지다. 필요 이상으로 무게감을 실어버린 심각한 분위기 때문이다. 심심하면 "주여, 구해주소서" 나 "주여,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라고 외치는 솔로몬 케인. 영화는 빈번하게 "주여" 를 외치며 솔로몬 케인의 갈등과 번민에 시간을 할애하지만, 그것도 처음에나 조금 공감이 될 뿐이다. 너무 자주 반복하니 나중에는 "또 그러네" 하는 생각만 든다.


A급 원작을 다루기엔 역부족인 제작여건과 제작진

어떻게 보면 <솔로몬 케인>은 게임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화면 속 영상은 게임 중간 삽입영상으로 보이고, 영화 속 악마들은 게임의 몬스터들 같다. 그래서인지 지켜보는 난 게임 진행을 하는 플레이어인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게임과 유사한 진행 속에 필요 이상의 무게감만 동반했던 진부한 이야기 <솔로몬 케인>. 그러나 영화의 스타일리쉬한 액션은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으며 칭찬해 줄 만했다. 하지만 장점이었던 스타일리쉬한 액션도 일정 이야기의 개연성 속에 보여져야 빛이 나는 법인데, 이야기는 그걸 따라가질 못했다. 후반부 산만한 이야기 속에 보여지는 액션은 스타일리쉬의 문제를 떠나 멍하게 지켜보게 만들어 줄 정도다.

그나마 스케일이라도 크면 모르겠지만 <솔로몬 케인>은 큰 규모의 영화가 아니다. 저렴한 규모의 영화다 보니 악마의 군대도 조촐한 수준이고, 거기에 대항하는 솔로몬 케인의 진영도 조촐하다. 조촐한 규모라도 임팩트 있는 구성이라면 좋았을 테지만, 영화는 마치 <반지의 제왕>이라도 의식한 듯 폼과 분위기를 몰아간다. 단순한 B급 스타일리쉬 액션물로 변신하면 그나마 신나게 보았을 텐데, 영화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분명 1920년대에 나온 로버트.E.하워드의 원작은 수 많은 작품과 문화에 영향을 준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이 원작을 다루기엔 <솔로몬 케인>의 규모나 연출은 너무나 부적절했다. A급 원작을 가지고 B급 규모로 만든 영화인데, 영화는 A급 영화를 너무 의식하고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 것 같다. 게다가 이전 작품에서 큰 반향을 주지 못한 마이클.J.버세튼 감독은 원작을 효과적으로 요리할 능력이 부족했었던 감독으로 보인다. A급 원작을 다루기엔 예산과 여건이 부족했을 텐데, 영화는 너무나 원작을 의식한 모습이었다.


러닝타임 104분, 그러나 체감시간은 3시간

끊임없이 신을 외치지만 신을 왜 찾는지도 잘 모르겠고, 악마가 건 저주 역시 굉장히 미묘하던 영화 <솔로몬 케인>. 좋은 원작을 자신의 규모에 맞게 가공하는 방법을 몰라 실패로 이어지고 만 아쉬운 영화다. 너무 원작을 살리려고 하지 말고 각색을 해서 단순화시키든, 장르적 변신을 하든, 아니면 큰 규모를 만들어 제대로 구현을 하든가 했어야 하는데 영화는 결과적으로 그러질 못했다. 지금 우리 눈 앞에 보여진 <솔로몬 케인>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일 뿐이다. 이 점이 참으로 아쉽다. 영화는 싼 티를 낼 거면 확실히 내든가, 아니면 비싼 티를 내든가 정체성을 보여야 한다. 중간에 어중간한 모습을 보이면 그 자체로 보는 사람이 버겁다.

판타지라면 무조건 보겠다는 분이라면 보셔도 무방하겠지만, 다른 분들은 한 번 더 심사숙고 하시길 바란다. 104분의 영화를 3시간 급의 판타지 물을 본 듯한 기이한 체험을 한 나로서는 이 말 외엔 해 줄 말이 없다. 그런데 총은 솔로몬 케인 혼자만 쓰는 모습이던데, 혼자만의 아이템인 건가? 문득 궁금하다.

★★

*2010년3월2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