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인 제목의 영화 <반가운 살인자>
<반가운 살인자>란 제목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살인자가 반갑다니. 죽지 못해 안달 난 사람이거나, 삶에 대해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이나 살인자가 반가울지도 모를 일이지만, 일반적인 사람에겐 살인자는 반갑다기 보단 무섭다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제목은 <반가운 살인자>. 그렇다면 역설적인 제목이 말하는 상황, 이것이 영화의 핵심이자 재미일 것이다.
그런데, 난 이 역설적 제목의 영화를 처음 접했을 적에 한 가지 사실이 마음에 걸렸었었는데, 바로 주연이 유오성이란 점이었다. 유오성, 그는 한국영화의 성장의 시기에 함께 급성장을 했던 배우 중 한 명이다. 초고속 흥행질주를 하며 정상급에 오르고,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배우. 하지만 몇 번의 사건에 휘말리며 추락해버렸던 배우다. 브라운관에서는 다시 재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극장가에선 이미 나락에 빠진 배우. 적어도 내가 보는 관점에선 그랬다.
그런 유오성이 코미디 영화의 주연으로 나온다는 사실은 그가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기 보단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보이는 몸부림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대한 어떤 기대치도 별로 였던 것이 사실. 더욱이 극장에서 접한 싸구려스러워 보이던 예고편은 이건 완전 망작이겠다는 느낌마저 들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 느낌은 <반가운 살인자>를 극장에서 만나기 직전까지 유효했었다.
형사 같은 백수 VS 백수 같은 형사
<반가운 살인자>의 기본적인 설정은 형사 같은 백수 영석(유오성)과 백수 같은 형사 정민(김동욱)의 대결로, 그 대결은 연쇄살인범을 서로 쫓는 경쟁이다. 두 사람은 비록 서로 다른 목적 때문이긴 하지만, 빨리 살인범을 만나고 싶어 한다.
영화는 희대의 살인마와 그를 추적하는 과정을 코믹적으로 전개한 영화이다 보니, 형사가 나오고 다른 한 축으로 백수를 등장시킨다. 이 두 캐릭터는 한국영화가 코믹적인 접근을 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캐릭터들로, 저기에 조폭까지 들어가면 완성형일 것이다. 보통의 영화에서 조폭을 통해 욕과 단순함의 웃음을 보여준다면, 경찰은 그 반대선상에서 머리를 쓰지만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식의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백수는 그야말로 어떤 전개를 하든 찌질함을 보여주기 쉬운 캐릭터. <반가운 살인자>는 이런 기본적인 캐릭터에 시대적인 흥미코드를 집어넣어 캐릭터를 강화해주었다. 그것은 백수에게 '네티즌수사대'라는 별명이 붙은 전문수사관을 뺨치는 네티즌들의 수사력이란 코드를 이식시켜 확장, 발전시킨 점이다. 그리고 형사는 무능력한 것으로는 모자란, 이제는 스스로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찌질댈 정도에 이른 캐릭터로 만들었다. 이 두 캐릭터를 버무려 한국영화계에 <추격자>이후 불기 시작한 스릴러의 유행에 코미디를 집어넣어 변형한 모습. 이것이 형사 같은 백수와 백수 같은 형사의 대결로 만들어진 <반가운 살인자>다.
하지만 캐릭터만으로 영화 전체를 끌고 갈수는 없으니 영화는 흥미로운 문제 하나를 던진다. 살인자가 반가운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문제. 이 제목이 뜻하는 바는 영석과 정민의 목적에서 나온 역설적인 제목이자, 코믹과 감동이란 영화의 두 가지 코드를 역설적으로 대변한 제목이다. 영화 초 중반을 아우르는 코믹의 코드와 영화 후반에 나오는 감동의 코드인 가족의 사랑.
대표적인 코믹 캐릭터의 재 변형
한국영화의 유행과 시대적인 유행을 적절히 버무려 만들어낸 <반가운 살인자>. 솔직히 말하면 기대이상으로 재미있게, 아니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다. 정교한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던진 캐릭터와 이야기를 적절히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코믹과 스릴러라는 상반된 장르를 재미있게 풀어낸 영화였다. 또 여러가지 시대적인, 사회적인 문제도 가미하는 센스도 보여준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살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접근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영화라는 점. 연쇄살인에 대한 희화적 접근이 이루어지다 보니 살인에 대한 기본적 자세에 문제가 드러나는 약점이 있다. 어쩌면 이 약점은 영화가 처음부터 안고 가는 숙명적인 약점이었을 것이다. 서미애 작가가 쓴 동명의 원작인 추리소설 <반가운 살인자>를 보진 않아서 원작과의 비교는 힘들지만, 아마도 영화는 원작에서 틀만 빌려다가 코믹으로 상당히 변형을 가한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그러다 보니 원작의 기본 틀인 연쇄살인범이란 소재가 장르적으로 코미디로 변주가 되다보니에서 희화화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반가운 살인자>는 코미디와 스릴러를 적절히 잘 걸친 작품이라 평가하고 싶다. 비록 살인자에 대한 설정은 아쉽더라도, 아버지와 딸의 설정이나 아버지와 형사의 설정은 그럴 듯 했으며, 조율도 좋았다. 그리고 오버스러운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적절한 조연들의 삽입은 영화가 장르적 표류를 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난 이 영화를 응원하고 싶다
이렇듯 <반가운 살인자>의 장점은 웃음과 감동, 하나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가지를 충분하게는 아닐지라도, 적절한 수준까진 보여진 영화다. 아마도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유오성이 아닐까 싶다. 그의 영화계 복귀가 성공적이라는 평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청신호 정도의 평가는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럴만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김동욱은 <국가대표>에 이어 상승세를 타며 주연급으로 발돋움하는 수순이었지만 조금은 아쉬운 수준이었다. 아직은 투톱은 무리라는 인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영화 포인트는 바로 심은경. 이 어린 배우가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필모와 캐릭터를 보여줄 지 너무나 기대된다.
코믹과 스릴러라는 다른 장르를 적절히 변형시켜 하나로 만들어낸 영화 <반가운 살인자>. <반가운 살인자>는 완성도는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평균 이상은 해준 완성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고편이나 배우 등으로 재단해버리기엔 영화가 꽤나 재미있다. 그러기에 난 이 영화를 응원하고 싶다. 유오성이 살인자를 만나며 던지는 "만나고 싶었어. 반가워"라는 대사와 연기는 너무나 인상적이었으며, 짠한 감동도 주었던 장면이다. 비록 약점이 크지만, 그 약점을 덮어준 유오성의 이런 연기 때문이라도 난 영화를 응원하고 싶다.
★★☆
*2010년4월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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