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에 관한 영화 <공기인형>
'인형'은 신을 닮고 싶어한 인간 욕망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신이 흙을 빚어 자신과 비슷한 형상으로 인간을 만들었듯,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형상으로 인형을 만들어 옆에 두고 싶어한다. 인형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만족을 느끼는 인간. 그 욕구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든, 성욕을 추구하든가에 욕구 충족의 도구라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같다.
<공기인형>은 바로 인형에 관한 영화다. <공기인형>을 조금 동화적인 비유로 본다면 <피노키오>의 욕망적 변형은 어떨까도 싶다. 동화 <피노키오>는 어린이가 읽은 동화답게 꿈과 모험, 그리고 희망을 담은 이야기다. 그러나 <공기인형>은 어른들의 동화다. 영화에는 꿈 대신 욕망이 들어가 있고, 모험 대신 현실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희망의 가능성을 찾아본다.
이런 난감한 소재와 스토리를 들고 나온 <공기인형>. 보통 <공기인형>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가장 눈에 들어오는 점은 배두나라는 여배우이겠지만, 영화를 조금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감독에 더욱 집중을 하게 될 것이다. 바로 상당수 영화팬들이 2009년 주목했었던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감독을 알게 되면 이 영화가 결코 수준 이하의 작품은 아닐거란 기대가 커지게 되며, 전작들을 통해 인정을 받은 감독이 어떻게 소재와 스토리를 풀어나갔을지 기대를 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배두나를 벗기고 싶어서 이 영화를 찍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인형이 바라본 인간사회
<공기인형>은 왜 인형이 사람처럼 움직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안 나온다. 사람의 소원으로 인간이 되었는지, 인형 자신의 소원으로 되었는지, 아니면 만들었던 인형 제작자의 소원으로 되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어느 날, 인형이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을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한 인형의 시점을 통해 이야기를 보여준다. 인형이 본 인간세계에 대한 이야기.
인형은 인간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거식증에 걸린 환자, 늙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자,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아빠, 오타쿠 청년. 인형이 바라본 인간들은 타인과 소통을 하지 않고,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호기심 어린 시각으로 바라보고, 다가간 인간들은 다가오기를 꺼려하며, 원하질 않는다. 그저 자신의 공간 속에 살아가길 원하며, 밖으로 나오길 원하지 않는다.
마음을 가지게 된 인형이 세상을 처음 보며 느낀 것은 아름답다는 생각. 그러나 이내 거짓말과 상처를 알게 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은 갇힌 공간 속에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의 성욕 해소를 위한 도구라는 존재적 이유도 알게 된다. 인형은 존재에 대한 더욱 본질적인 접근과 인간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으며,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한 남자에 대한 사람.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시각
타인과의 소통 없이 살아가는 현대 사람들의 공허함과 무력함을 도시 속 사람들의 모습들을 통해 그린 <공기인형>은 새로우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마음을 가졌던 공기인형 노조미, 그러나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정작 마음을 닫고 사는, 아니 없었던 사람들일지 모른다. 영화는 이런 모습을 통해 일본 사회의 단절된 소통의 문제를 다루었으며, 인간답게 사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세상은 타인과 만나는 공간이며, 서로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채워주며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하지만 영화는 인형이 자신을 만들어준 인형 제작자와의 만남 이후부터 새롭다기 보다는 진부하다는 느낌이 커졌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는, 스스로의 존재의 이유를 찾고자 떠난 인형의 모습에 감독은 너무나 많은 마침표를 찍어 버렸다. 이야기를 조금 더 열린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기 보다는, 정리를 위해 만든 이야기들이 도리어 이야기를 가두어버린 느낌이었다.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아주 평범하게 다룬 점을 높이 사고 싶다
<공기인형>의 가장 훌륭한 점은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아주 평범하게 다룬 점이다. 인형이 살아 움직인다는 설정에 집중하길 원하지 않으며, 인형이 바라보는 사회에 대해 집중하길 원하는 영화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마음을 닫고 사는 영화 속 존재가 아닌지 확인하길 원한다.
마음을 가졌던 인형 노조미. 영화에서 다룬 노조미의 모습은 사실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동화라면 <피노키오>에서 마음이란 걸 느슨하게 차용했을 수 있으며, 영화라면 <A.I>의 존재론적인 질문, <터미네이터>의 감성, <바이센테니얼맨>의 사랑과도 맥이 닿는다. 감독이라면 팀 버튼 식의 화법을 동양식으로 변형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어찌 보면 헐리우드에서 이미 써먹은 진부한 이야기를 다시 가져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러나 감독은 지극히 동양적인, 아니 일본적인 시각과 접근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런 점때문에 영화는 보는 이가 부담스러워 할 요소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섹스인형이라는 설정에서부터 부담감을 가질 관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기인형>은 배두나의 일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유명세 등의 배경을 접고, 그 소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인형을 통해 소통을 들여다보는 접근은 결코 가볍지도 않으며, 쉽지도 않았지만, 자칫 지나치게 난해하거나, 기괴해질 영화를 이 정도로 부드럽게 내놓은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비록 닫힌 마무리의 아쉬움은 들지라도, 이 점 때문에 <공기인형>은 괜찮은 영화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
*2010년4월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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