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화법과 시대코드로 무장한 일본 학원물
얼마 전 TV에서 <공부의 신>이란 드라마를 방영했다. 학원물이었던 이 작품은 조금 흥미로운 구석이 보였는데, 원작이 일본 코믹스에 이미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작품이란 점. 그렇다 보니 <공부의 신>은 상당한 면에서 일본 드라마 <드래곤사쿠라>와 비교가 되었다. 내가 <드래곤사쿠라>는 다 보았으나, <공부의 신>은 2화까지만 보았던 관계로 비교를 정확히 하긴 힘들지만, <공부의 신>은 <드래곤사쿠라>를 장르적으로 변형해서 한국풍으로 만든 드라마였다. 일본보다 화수가 늘어 드라마적인 내용을 강화한 면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식 화법과 한국식 화법은 그 차이가 제법 크다. 쉽게 풀면 과장화법의 차이라고 할까. 일본은 기본적으로 한국보다 과장된 상황과 행동을 많이 보여준다.
열혈 청춘들의 청춘 낙서이자, 자기보고서인 <우리들과 경찰아저씨의 700일 전쟁>은 과장화법과 시대코드로 무장한 일본 학원물이다. 거의 만화수준까지 전개를 옮긴 학원물을 가장한 코미디.
1979년 무더웠던 일본 시골마을의 여름에 펼쳐진 한판 전쟁
<우리들과 경찰아저씨의 700일 전쟁>은 1979년 여름, 평화로운 한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전쟁(?)을 다룬 영화다. 7명의 악동들이 경찰관의 과속단속에 불만을 품고 시작한 장난은 이들의 물러날 수 없는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로 발전하게 된다.
일본 블로그의 인기리에 연재된 체험적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우리들과 경찰아저씨의 700일 전쟁>은 국가권력과 대결한 열혈 청춘들의 유쾌한 청춘보고서다. 다양한 캐릭터적 성격을 가진 7명의 악동군단이 펼치는 기상천외한 작전은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보았을 장난을 과장된 화법으로 포장을 해서 영화 속에 나타냈으며, 이 모습은 영화라기 보다 애니메이션에 가까웠다. 이렇게 과장되어서 보여지는 모습의 배경에는 1979년 일본의 시대적 코드들이 녹아있다. 그 시절의 음악이 들리고, 광고가 보이며, 인베이더 게임도 나온다. 어쩌면 영화는 1979년 무더웠던 일본 시골마을의 여름으로 초대하는 티켓이었는지도 모른다.
과장된 화법과 시대적 코드가 녹아 든 이야기. 그 속에는 7명의 악동들과 경찰은 자존심을 건 대결이 담겨있다. 황당한 작전이 나오며,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터지지만,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왠지 웃음을 머금게 된다. 말도 안 되는 대결 속에 있는 악동들간에 우정과 의리, 그리고 경찰과 나누는 교감. 이 모습들 속에 순수함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일까.
일본식 과장화법이 너무나 큰 영화
조금 편하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서두에 밝힌 대로 <우리들과 경찰아저씨의 700일 전쟁>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그것은 코드가 맞아야 편한 감상이 이루어 진다는 점. 영화의 소재와 내용 등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이 포인트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본식 과장화법에 맞지 않는 사람이 영화를 본다면, 내용 전달을 떠나 짜증이 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들과 경찰아저씨의 700일 전쟁>은 다른 어떤 일본영화나 드라마보다 과장화법이 크다. 인물들의 행동과 말, 그리고 전개는 만화적 상상력에 가깝다. 이 점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하는데, 과장화법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이 본다면 적지 않은 즐거움을 가질 수도 있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본다면 쓰레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코드만 맞는다면 꽤 재미있는 영화다
사실 개인적으로 일본 상업영화를 평가한다면 그다지 높은 수준은 아니라 생각한다. 공포물이나 애니메이션은 좋은 수준이지만, 여타 상업영화들은 국제적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영화가 일본영화보다 상업적으로 더욱 높은 완성도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다만 일본영화에서 내가 인정해주고 싶은 점은 만화 같은 상상력을 태연하게 보여주는데 그것이 그럴싸하다는 점. <우리들과 경찰아저씨의 700일 전쟁> 역시 그렇다.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태연하다. 만화스럽게 오버하지만 이질감이 그다지 안 든다. 너무나 유치한 장난 속에는 이해와 사랑이 있고, 관심이 보인다. 그렇기에 보면서 미소를 띠게 하고, 에너지를 얻게 된다.
유쾌한 연출과 재미있는 연기를 보여준 영화 <우리들과 경찰아저씨의 700일 전쟁>. 극장에서 보면 유쾌한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하며 추천한다. 다만 코드가 맞아야한다의 전제조건을 잊지 말기 바란다. 코드가 안 맞으면, 악몽을 넘어선 재앙의 시간이 될 거라 미리 경고하는 바이다.
*한국에서 이런 류의 이야기를 만든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는데 1979년은 유신시절이다. 그 시절 국가공권력에 이런 장난 쳤다가는 잡혀서 고문 당하는 슬픈 이야기거나 빨갱이로 몰려 처벌 받는 이념 이야기가 되겠구나 생각하니, 상상의 나래가 바로 멈추어 버리고 말았다. 상상하면 안 되겠다.
★★☆
*2010년4월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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